한가위 앞에서
  • 이윤삼 편집국장 (yslee@sisapress.com)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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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다. 힘들고 고단한 터널을 지나는 게 우리들 대부분의 삶이지만, 그래도 가족을 만나면 늘 마음이 푸근해진다. 고향 앞에서 우리들의 경계심은 쉽게 무장 해제된다. 그래서 떠나는지 모른다. 자동차로 기차로 버스로 통통배로.

갓 태어난 손자 손녀의 총명한 눈망울과 재롱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즐겁게 할 것이다. 형제 자매의 건강과 안부 이야기가 술자리에 가득 피어오를 것이다. 먼 길을, 몇 시간씩 달려온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음식 한 가지라도 더 먹이기 위해 총총걸음을 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현실은 옆자리에 와 앉을지 모른다. 아파트값과 재테크 얘기가 첫 번째 화두일지 모른다. 아이들의 교육 얘기도 한몫 거들 것이다. 세금이 오르고, 기름값이 춤을 추고... 불황의 짙은 그늘이 얼굴에 묻어날 것이다. 정치가 신물이 난다고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연정’ 문제가 토론의 도마 위에 올라 답답함을 배가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난 뒤 헤어질 것이다. 자동차로 기차로 버스로 통통배로.

<시사저널>을 손에 쥔 독자들은 금방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한가위 합본호의 주제는 ‘삼성그룹’이다. 전면 기획은 <시사저널> 창간 16년 만에 처음이다. 가뜩이나 골치 아픈 세상, 그것도 민족의 명절을 지내는 독자들 앞에 무겁고 딱딱한 주제를 75쪽이나 내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론도 적지 않았다. 정치 경제 국제관계 사회 등 ‘하드 뉴스’에서 대중적인 흥미, 호기심 오락 가십 사생활 등 ‘소프트 뉴스’로 흐르는 언론의 추세에도 역행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발로 뛰어서, 정확히 현실을 취재하자고 했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은 누구이며, 우리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어느 정도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시사저널>이 공론장이 되기를 바랐다. 짧은 시간 안에 이처럼 방대한 문제를 다루는 게 한편으로는 무모해 보였다.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루지 못한 영역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열심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면서 기사를 쓰는 기자도 적지 않았다.

기자들이 부르고 싶었던 노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한국사회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대한 '끝 모를' 희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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