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왕족’ 홍씨 사람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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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씨, 1960년 이병철 회장과 첫 인연…자녀들도 삼성과 깊이 관련

 
X파일 파문으로 삼성그룹이 위기에 처해 있지만, 일차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중앙일보 홍석현 형제들이다. 비자금 전달책으로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지목되어 낙마했고, 홍석조 광주고검장은 검찰 내 ‘삼성 장학생’ 관리자로 지목되고 있다. 홍석조 본인은 결백을 주장하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지만, 검찰 내부에서 입지가 흔들린 것은 사실이다.

최근 이건희 가족 못지 않게 사돈 집안인 홍씨 일가가 주목되고 있다. 삼성과 관련한 추문이 터질 때마다 꼭 홍씨 일가의 흔적이 보인다. 공교롭게도 홍씨 집안의 6자매가 모두 삼성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삼성을 왕국으로 친다면 이건희 가족이 직계, 홍씨 일가는 ‘외척’ 쯤 되는 셈이다. 2대를 이어 반 세기 가까이 이어온 두 가문의 관계는 삼성 CF 문구처럼 ‘또 하나의 가족’으로 불릴 만하다. 

홍석현·석조 형제, X파일로 곤욕

삼성과 홍씨 가문과의 인연은 홍석현 현 중앙일보 오너의 부친인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시작된다. 홍진기씨는 식민지 시절 경성제대 법과를 졸업하고 1942년 경성지법 사법관시보, 1944년 전주지법 판사를 지냈다. 이런 전력으로 인해 그는 지난 8월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1차 예정자 명단에 올랐다.

 
1960년 3·15 부정 선거 당시 홍진기는 법무부장관이었는데, 이후 4월 마산 사변으로 내무부장관이 사퇴하자 후임 내무부장관 직을 맡았다. 그가 내무부장관으로 있었던 4월19일 경찰 발포로 서울에서만 100여명이 죽었는데, 홍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을 강력히 설득해 계엄령을 선포하게 했다. 4·19 혁명이 끝난 뒤 그는 구속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홍씨가 구속되어 있을 때 이병철 삼성 회장이 신현확 전 총리의 소개를 받아 그를 면회했다. 이병철 회장의 옥바라지는 홍씨를 감동시킨 듯하다. 어려울 때 도와준 은혜, 이것이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된 계기였다.

1963년 특사로 풀려난 홍씨는 1964년 삼성이 세운 서울중앙라디오방송 사장으로 취임해 언론 사업을 시작했다. 1966년에는 역시 삼성이 세운 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다. 이듬해인 1967년 홍라희와 이건희의 결혼으로 두 집안은 사돈이 되었다. 

고 이병철 회장은 홍진기씨를 존경하며 신뢰했다. 홍진기씨의 조언은 이병철 회장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형을 물리치고 삼성그룹을 이어받는 데도 홍진기씨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진기씨는 1986년 사망했다.

이건희 회장의 아내이자 후계자 이재용 상무의 어머니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60)은 홍씨 집안의  장녀다. 홍라희 여사는 삼성전자 주식 100만 주 등을 보유하고 있다. 시가총액 5천억원이 넘어 신세계 이명희 회장에 이어 여성 부호 2위에 올라 있다. 

X파일의 주인공 홍석현 전 주미대사(55)는 홍씨 집안의 장남이다. 19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해 10년간 중앙일보를 이끌었다. 홍석현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정부 시절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신직수씨다.

 
X파일에서 이름이 거명된 홍석조 광주고검장(52)은 차남이다. 2004년 1월 홍검사가 인천지검장으로 부임하기 이틀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돈인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수사가 ‘참고인 중지 결정’으로 중단되었다. 천정배 현 법무부장관은 당시 수사팀이 부실 수사를 했다고 비판했다. 홍검사는 지난 9월1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삼성 떡값을 돌리라는 명목으로 돈을 전달받은 적이 결코 없으며 검사들에게 떡값을 나눠준 사실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홍검사는 신고 재산이 2백74억원으로 공직자 재산 순위 1위다(<시사저널> 제828호 참조). 그는 보광그룹 계열사인 훼미리마트의 최대 주주이기도 한데, 2004년 12월30일 웬일인지 훼리미마트로부터 9% 이율로 10억원을 빌렸다가 2005년 1월19일 상환했다.

그들의 혼맥을 누가 앞서랴

삼성과 연관된 추문은 홍씨 형제들을 따라 다니는 것 같다. 삼남 홍석준은 2002년 1월부터 삼성 계열사인 삼성SDI 경영기획실장 겸 부사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올해 2월 삼성SDI는 노조원 불법 위치 추적 사건으로 노동계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기사 참조). 검찰은 위치 추적 의혹에 대해 수사에 한계가 있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사남 홍석규씨는 보광 대표이사 회장이다. 보광그룹은 삼성의 위성 그룹으로 1999년 4월 중앙일보가 분리될 때 같이 떨어져 나왔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계열 분리를 위해 중앙일보 소유 지분 20.3%을 보광에 넘기는 과정에서 탈세가 문제되기도 했다. 보광그룹은 스키장 휘닉스파크·광고기획사 피닉스커뮤니케이션·보광창업투자·피닉스PDE·훼리미마트·보광로지스 등을 계열사로 가지고 있다.

 
막내딸인  홍라영씨는 리움박물관 수석 부관장을 맡고 있다. 라영씨는 전 안기부장이자 국무총리였던 노신영씨의 아들 노철수씨와 결혼했다.  노신영씨는 재벌 일가 혼맥 의 ‘미니 허브’로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전 회장과 사돈이며, 유 진 풍산그룹 회장의 장인이다. 홍라영씨는 삼성문화재단 상무를 겸하고 있다.

홍씨 일가는 석 달 전만 하더라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완벽한 명문가였다. 자녀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외모가 수려했으며 6남매 중 5명이 서울대를 졸업했다. 만약 X파일 사건이 없었더라면 UN사무총장을 꿈꾸는 장남과 검찰총장을 꿈꾸는 차남을 필두로 홍씨 일가의 승승장구를 아무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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