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이 무서워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5.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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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음식정담]

 
훈련병은 늘 배가 고프다고 하는데, 적어도 내가 군에 입대했던 1980년대 초반 논산훈련소에서는 밥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일단 배식을 받아 빨리 먹으면 다시 줄을 서서 밥을 타 먹는 게 용인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언제나 허기가 지는 기분이었다. 사람의 위가 밥통만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일과가 없는 일요일 아침에는 라면을 주었다. 찐 라면 한 덩어리에 라면 스프(수프라고 하는 게 표기에는 맞지만 라면에서는 이렇게 쓴다)만 넣고 끓인 물, 날달걀이 나왔다. 찐 라면을 국물에 집어넣고 날달걀을 깨뜨려 넣으면 국물이 부옇게 흐려지곤 했다. 라면이 퍼질 리 없으니 뜯어먹다시피 하는 게 보통이었다. 

훈련병과 달리 기간병들은 그 라면을 거의 먹지 않았다. 식당 밖에 남은 음식을 버리는 통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기간병들이 먹지 않고 버린 라면들이 임자 잃은 나룻배처럼 떠다녔다. 당연히 그걸 주워 먹는 훈련병이 있었고, 못 주워 먹고 억울해 하는 훈련병도 있었으며 ‘두고 보자, 훈련소에서 나가기만 하면 제일 먼저 제대로 끓인 라면을 먹겠다’고 다짐하는 훈련병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 주방에 사역을 나갔다가 군대용 ‘덕용라면’이 쌓여 있는 곳에서 따로 나온 덕용 스프를 얻게 되었다. 그 스프를 작업복 상의 주머니에 비장해 다니면서 밥에 조금씩 쳐서 먹기도 하고 양배추된장국에 넣기도 하고 양배추김치에 넣기도 했으며, 건빵에도 뿌려 먹었다. 그때에 이르러 비로소 허기가 사라진 것 같았는데, 훈련병으로 관록이 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내 고향에서 해장국집으로 가장 알려진 곳은 옛 우시장거리에 있는 식당이다. 서부극에 나오는 바처럼 긴 나무 식탁이 직각으로 둘러쳐져 있고, 안쪽에는 시래기해장국이 끓고 주인이 일하고 있으며 바깥에는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가 식탁을 따라 놓여 있었다. 식탁에는 언제나 고춧가루와 소금, 간장 등속의 양념이 준비되어 있었다. 식성에 따라 넣어서 먹으라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이 해장국집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던 양념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게 바로 라면 스프였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가기 전과는 달리 나는 그 라면 스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고등학생이던 60년대에 절에 출가했던 적이 있는 어느 작가의 행자 시절 회고담에 이런 게 있었다. 노스님들이 공양을 할 때마다 어린 행자들 눈에 띄지 않게 돌아앉아 조금씩 밥에 뿌려 먹는 게 있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게 라면 스프라고 했다.

80년대에 서울 대로변 노점에서 파는 떡볶이·오뎅·김밥·만두를 나는 거의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 반면 집의 방향이 같아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내 친구는 노점을 그냥 지나쳐 가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가 노점에 들르면 나는 뒷전에 서서 그가 빨리 하루치의 ‘불량 식품’이자 간식을 먹고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그 친구가 노점 바로 앞에서 가방을 내게 맡기고 화장실에 가버렸다. 나말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노점 여주인은, 길에 멀뚱멀뚱 서 있는 나라는 인간이 자신의 음식과 관련될 만한 인상도 주제도 팔자도 아님을 단숨에 간파했는지 주저없이 해야 할 일을 실천에 옮겼다. 그 일이란 엉덩이 아래쪽에 있는 종이부대에 손을 집어넣어 모종삽을 꺼내고 모종삽으로 무엇인가를 퍼담아 물이 졸아든 오뎅 국물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반 삽 정도를 다시 퍼넣고 엉덩이 아래로 모종삽을 치운 뒤에 양동이에 떠놓은 물을 국물통에 들이부었다. 곧 친구가 왔고 나는 그가 여느 때처럼 오뎅 꼬치 두 개에 떡볶이 1인분, 삶은 달걀 하나, 군만두 다섯 개를 먹는 걸 지켜보며 서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먹을 때에 그가 어김없이 곁들인 것은 종이 잔에 국자로 따른 오뎅 국물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목격한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는 “그기 뭐 그리 대단하다꼬. 쭉해 라면 스프 같은 기지. 너는 온 세상의 쪼만한 일도 다 궁금나? 나는 한나도 안 궁금타” 하고는 민사소송법 교재를 꺼내 흥미진진하게 읽기 시작했다.

라면 스프에 들어있는 성분은 라면마다 조금씩 다르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기에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것은 정제염과 글루타민산나트륨(MSG)이다. 최근 라면에 나트륨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게 알려지기 시작해서 시민단체와 라면회사 사이에 공방이 있었다. 이를테면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1968mg 정도이고, 미국은 1500mg, 한국은 3500mg인데 라면 한 개에 들어 있는 나트륨이 평균 2075mg이라는 것이다. 나트륨도 문제지만 MSG의 해악은 이전부터 유명했다.

맛의 팔방미인, 라면 스프의 추억

1970년대에 미국에서 중국음식 붐이 일었는데 일부 중국음식점에서는 식탁에 MSG를 담은 통을 두고 손님 입맛에 따라 마음껏 요리에 넣어 먹게 했다. 이처럼 MSG를 대량으로 먹은 뒤에 마비와 가슴떨림, 두통, 복통 증상이 나타났고, 앨러지나 천식환자는 적은 양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태아나 갓난아기의 경우에는 글루타르산이 뇌에서 신경전달 물질로 기능해서 뇌로 가는 혈액을 차단해, 뇌와 신경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MSG는 유아식에 넣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고혈압·저혈압·알츠하이머·뇌졸중·당뇨병 환자에게도 MSG가 문제될 수 있다. 건강한 사람도 공복에 MSG 3g을 먹으면 MSG 관련 증상을 보이는데, 보통 우리의 한 끼니에 0.5g이 들어 있다고 한다.

MSG가 명찰을 달고 ‘나 들어가 삽니다’ 하고 인사 차린 뒤 들어가 있는 경우보다는 ‘맛소금’의 ‘맛’이나 ‘가수분해 식용 단백질’ 같은 어려운 이름으로 슬며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우리가 먹게 되는 MSG의 양은 생각보다 많다. 감자칩, 조미 땅콩, 사출 방식의 과자, 라면, 김치는 물론이고 값싸게 손님이 원하는 맛을 내야 하는 대부분의 식당 음식에 들어 있는 것이다.

10여년 전 어느 날, 여름이 시작되던 무렵 서울 인사동 초입에 있는 어느 골목 안 한식당에 나는 앉아 있었다. 술을 마시고 싶었고 색다른 안주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인 선배가 소주 한 병과 수육을 주문했다. 신기하게도 소주와 수육의 값이 일치했다. 소주는 물론 새 병에 들어 있었지만 수육은 여러 번 식탁에 나갔다 들어온 듯 검게 타 있었고 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바늘귀만한 흰 알갱이가 점점이 뿌려져 있었다. 그 수육을 우리 다음에 오는, 우리처럼 가난한 사내들이 또 먹게 할 수 없다는 의무감으로 힘껏 물어뜯는데 문득 비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옥이어서 그런지 양철 빗물관을 통해 떨어지는 물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 순간 앞니에 고깃조각을 하나씩 문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았고 포옹이라도 하듯 그 아름다움을 나누었다.

화학 조미료의 알갱이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빗소리와 수육, 공감의 행복이. 안 보이는데도 들어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무섭다. MSG의 맛을 ‘감칠맛’이라고 하고 일본말로는 ‘우마미(旨味)’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나는 ‘무서운 맛’이라고 부르고 싶다. 글루타르산이 사람의 미각을 본능적으로 잡아끌기 때문에 그 맛에 길든 사람은 몸에 좋은 다른 식품을 멀리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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