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훈련 끝에 천국 오르다
  • 이종달 (iMBCsports 편집 겸 총괄국장) ()
  • 승인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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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 선수, PGA 투어 ‘3승의 비밀’/시즌 중 ‘샷 교정’ 도박 대성공

 
“최경주는 아시아 최고 골퍼다.”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 톱프로인 마루야마 시게키(36)의 말이다. 지난 10월4일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투어 크라이슬러 클래식(총상금 4백60만 달러)에서 최경주가 22언더파 266타로 우승한 직후 이렇게 말했다. 마루야마는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최경주에게 2타 뒤져 2위에 오른 선수. 일본의 스포츠 신문 <닛칸 스포츠>도 ‘형님, 최(경주)와의 아시아 대결에서 2타 못 미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호형호제하는 최경주와 마루야마의 활약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최경주 선수는 3년 만에 PGA 투어에서 다시 우승하며 통산 3승을 기록했다. 누가 뭐라 해도 세계적인 선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최경주의 진가는 이미 오래 전 미국 유수의 골프 잡지인 <골프 다이제스트>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행 부수(1백55만부)를 자랑하는 <골프 다이제스트>는 최경주를 ‘한국 골프를 개척한 선수’라고 소개했다. 이 잡지는 최경주가 한국인 첫 PGA 투어 전대회 참가권 획득, 한국인 첫 PGA 투어 우승, 한국인 첫 유러피언(EPGA) 투어 우승 등을 이루었다고 집중 부각했다.

최경주는 지난 5월 SK텔레콤오픈에 출전하러 방한해 “샷 교정이 끝나는 연말쯤에는 우승 소식을 전할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약속을 지켰다.
올 시즌 최경주는 부진했다. 새로 바꾼 클럽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 올해 초 샷 교정에 나섰기 때문.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톱10 진입은 단 두 차례에 그쳤다. 반면 다섯 차례나 예선에서 탈락했다. 특히 지난 6월에 열린 바클레이 클래식 예선 탈락를 시작으로 3개월 동안 3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다.

하지만 최경주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거듭되는 부진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샷 교정이었다. 최경주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샷 교정에 ‘올인’했다. 최경주의 뚝심은 결국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발휘되어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을 훌훌 털어버렸다.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최경주는 드라이브샷 페어웨이 적중률(83.9%)과 홀당 퍼트 수(1.618개)에서 1위를 차지했고, 그린 적중률 역시 70%를 웃도는 ‘퍼펙트 플레이’로 우리 곁에 왔다. 샷 교정에 성공함으로써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열린 것이다.

골프 용품 연간 5천2백만원어치 사용

시즌 기간에 샷을 교정한다는 것은 ‘도박’이다. 하지만 최경주는 이 도박에서 승리했다. 최경주는 시즌 중에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휴식 기간에도 하루에 평균 8시간 훈련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훈련의 연속이다.

최경주는 개인 코치인 필 리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리츤은 체력 강화와 쇼트게임 향상에 중점을 두는 교수법으로 유명하다. 2004년 겨울 훈련을 마친 다음 리츤은 “다시 한번 돌풍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리츤을 친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도 최경주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에서 날아온 ‘생짜’ 최경주를 보고 웬만한 코치였으면 만나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수를 보는 안목이 있었다. 보는 순간 잘 다듬으면 ‘물건’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조건 없이 최경주의 스윙을 봐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막상 최경주의 스윙은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쇼트게임 능력은 아무리 가르쳐도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인연이 닿으려고 했는지 최경주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최경주의 연간 골프용품 사용량은 엄청나다. 웬만한 기업체 부장 연봉과 비슷하다. 연간 용품사용액은 5천1백86만원 정도다. 우선 골프공. 최경주는 보통 두 홀에 한 개씩 새 공으로 바꾼다(국내 프로들은 서너 홀에 한 번씩 공을 바꾼다). 라운드당 교체하는 공은 평균 9개. 토너먼트당 54개에 이른다. 연간 사용량은 1천6백20개(1백35상자)로 1천80만원이나 된다. 모자도 토너먼트당 4개나 쓴다. 연간 1백20개로 2백40만원이다. 티셔츠는 토너먼트당 일곱 장으로 연간 2백10장(2천100만원)이나 입는다.

아이언 세트는 해마다 한 차례씩 바꾸고, 드라이버는 평균 2개를 교체한다. 장갑도 라운드당 한 개씩 연간 1백80개(5백40만원)이다. 골프화는 10켤레, 물도 라운드당 6병(0.5ℓ 기준)으로 연간 1천80병(64만8천원어치)이나 마신다. 이밖에 비옷·우산 등 소소한 것까지 합치면 최경주의 연간 골프용품 사용량은 더 늘어난다.

최경주는 미국 그린만 밟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는 생고생의 시작이었다. 최경주는 1999년 ‘바늘 구멍’인 PGA 투어 퀄리파잉(Q)스쿨에서 35위를 차지해, 턱걸이로 조건부 PGA 출전권을 획득했다. 말 그대로 전경기 출전 선수들 가운데 누군가가 출전을 포기하면 그 자리에 들어가는 ‘땜질용’ 대기 선수 자격이었다. 2000년 최경주는 상금 랭킹 134위로 다시 Q스쿨로 떨어졌다. 2001년에는 다시 31위로 조건부 출전권을 받았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은’ 대기 선수이다 보니 휴대전화가 생명줄이었다. 대회조직위로부터 언제 참가 통보가 올지 몰랐다. 참가한다는 보장도 없이 대회장 가까이에서 대기하는 처량한 신세였다.

가까스로 대회에 참가한다고 해도 상위 입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1억여원이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호주머니가 달랑달랑하자 마음만 앞섰다. 입에 안 맞는 햄버거가 ‘별식’일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가난 앞에 장사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최경주는 가진 것 없고 믿을 곳 없어도 ‘배포’만은 자신 있었으나, 프로 골퍼의 ‘인격’이 성적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경운기 타고 연습장 가던 ‘촌놈’

최경주는 학창 시절 역도 선수였다. 까까머리 고1 시절 갑자기 바벨이 싫어졌다. 말이 좋아서 역도지 시도 때도 없이 받아야 되는 얼차려 때문에 정이 떨어졌다. 바로 이때 기회가 왔다. 체육 선생님이 교무실로 최경주를 부르더니 생전 보도 듣도 못한 골프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최경주는 체육 선생님이 얻어온 골프클럽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는 시작했으나 변변한 연습장 하나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연습하기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연습장에 가기 위해서는 멀리 군청 소재지까지 가야 했다. 그때 교통 수단은 아버지가 모는 경운기뿐이었다. 그래서 최경주의 연습장은 바닷가 모래밭이었다. 틈만 나면 클럽페이스에 녹이 난 골프클럽을 둘러메고 모래밭으로 향했다. 미국 프로 선수 가운데서 최경주가 벙커샷을 최고로 잘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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