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몰고온 ‘그녀의 두 남자’
  • 이종달 (iMBCsports 편집 겸 총괄국장) ()
  • 승인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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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투어 한희원 선수, 아버지·남편의 ‘지독한 외조’ 덕에 4승 일궈

 
‘미시 골퍼’ 한희원(27·휠라코리아)이 해냈다. 한희원은 지난 10월4일(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 인근 랜초 팔로스 버디스의 트럼프내셔널CC(파71·6017야드)에서 끝난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오피스디포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한국은 이 날 한희원의 우승으로 미국 LPGA 투어와 프로골프협회(PGA) 투어를 동시에 석권했다. 한국 남녀 선수가 PGA와 LPGA 투어를 한 주에 동시에 제패한 것은 처음이었다. 바로 전날 최경주가 크라이슬러 클래식에서 우승한 덕분이다.

한희원은 지난해 9월 LPGA 투어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우승한 이후 1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2001년 LPGA 투어 데뷔 후 네 번째 우승이다. 한희원의 우승으로 올 시즌 LPGA에서 한국 선수의 우승 횟수는 6승이 되었다. 1998년 박세리가 4승을 올린 이후 한국의 ‘미국 정복’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강지민·김주연·이미나·장 정·강수연 등 지난해까지 우승이 없었던 선수들이 우승자 대열에 합류하며 한국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희원은 2003년 2승, 2004년 1승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1승을 추가하며 꾸준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슬럼프를 모르고 LPGA 투어를 뛰고 있는 것. 특히 결혼한 뒤 벌써 2승을 올려 롱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프로 야구 선수 출신인 남편 손 혁(32)의 외조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결혼하기 전 한희원의 그림자였던 아버지 한영관씨(56)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한영관씨는 “운동 선수 출신인 사위가 희원이의 체력 훈련을 돕고 정신적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희원이에게는 100점짜리 남편이다”라고 자랑했다.

지난해 9월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우승했을 때도 남편 손 혁씨의 외조가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당시 한영관씨는 “결혼을 했다지만 서로 떨어져 지내다 보니 심리적인 안정감도 떨어지고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는데 7월부터 함께 지낸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결혼 후 한희원은 ‘무늬만 기혼자’였다. 혼자 투어를 해야 했고 성적도 내리막을 탔다. 이를 보다 못한 손 혁이 지난해 7월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날아가 한희원과 함께 투어를 다니면서 한희원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기량을 회복했다. 드라이버샷 비거리가 평균 10야드 이상 늘어나면서 장기인 아이언샷이 한층 정확해졌다. 특히 늘 짧기만 하던 퍼팅이 과감해졌다.

‘여자 선수 결혼=성적 부진’ 징크스 깨뜨려

한희원은 “오빠(손 혁)가 옆에 있어 주니까 마음이 편하고 연습 때나 경기 때나 정신 집중이 잘 된다”라고 털어놓았다. 딸의 그림자 노릇을 했던 한영관씨가 사위에게 딸의 뒷바라지를 맡기고 국내로 돌아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손 혁은 지난해 4월 은퇴한 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어학연수 중이다. 이번 대회는 샌디에이고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린 데다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희원의 어머니와 함께 응원을 했다. 남편의 외조를 잘 알고 있는 한희원은 우승 후 시아버지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로 이를 보답했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한희원은 “멀리 떨어져 있어 뵙지 못하지만 시아버지의 생신(10월5일) 선물로 우승 트로피를 드릴 수 있어 더 기쁘다”라고 말했다.

주부 골퍼 한희원은 골프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한국에서 여자 선수의 결혼은 ‘퇴출’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희원은 기혼자로서 LPGA 투어 2승을 챙기며 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한희원은 오피스디포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결혼=성적 부진=은퇴’라는 한국 여성 스포츠의 오랜 ‘관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골프 여제’ 소렌스탐도 이혼은 했지만 기혼자였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LPGA 투어 ‘올해의 선수’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줄리 잉스터 등 기혼자와 ‘애엄마’들이 정상급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희원의 진짜 선수 생활은 지금부터 시작인 셈이다.

한희원의 오피스디포 챔피언십 우승으로 한국은 LPGA 투어에서 통산 50승을 거두었다. 1988년 구옥희(49)가 스탠더드레지스터에서 처음 우승한 이후 17년 만이다. LPGA의 본고장 미국을 제외하면 아니카 소렌스탐(63승)이 이끄는 스웨덴(91승)과 카리 웹(30승)의 호주(62승) 다음으로 우승컵을 많이 따냈다. 이는 우리보다 골프 역사가 오래된 영국(31승)과 일본(30승)보다도 20승 가량 많은 것이다.

한국은 15명이 50승을 합작해, 각각 8명이 승수를 보탠 스웨덴과 호주를 우승자 수에서 크게 앞서고 있다. 올 시즌 전대회 참가권을 갖고 LPGA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는 모두 26명. 해마다 출전 선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한영관씨, 마음 고생 탓에 심장 나빠져

한영관씨와 손 혁. 한희원의 ‘두 남자’다. 한희원의 아버지 한영관씨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다. 오늘의 한희원을 만든 사람이다. 한희원이 자기보다 큰 드라이버를 갖고 골프 연습을 하던 때부터 한영관씨는 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딸이 중학생 시절 코리아헤럴드국제골프대회에서 입상하고, 일본 문부대신배학생대회에서도 입상하자 한영관씨가 딸에게 쏟는 정성은 더욱 깊어졌다. 한영관씨는 고려대 야구 선수 출신. 대학 졸업 후 한일은행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한영관씨의 고생은 한희원이 LPGA 투어에 데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한희원과 함께 줄곧 대회를 따라 다니며 딸을 돌보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배를 굶지는 않았으나 마음 고생은 선수보다 더 컸다. 한영관씨는 이때 받은 스트레스와 과음으로 결국 2년 전 심장 수술을 받았다. 지금이야 사위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아직도 마음은 늘 한희원이 경기하는 골프장에 가 있다.

지난 10월3일 늦은 밤. 한영관씨는 밤 12시가 넘어 급히 전화를 걸었다. 바로 호형호제하는 프로 야구팀 한화의 김인식 감독(58)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통화 내용은 ‘희원이가 오늘 새벽 우승할지도 모르니까 텔레비전을 보라는 것’. 김감독은 프로 야구 준플레이오프로 심신이 파김치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김감독은 그 날 인천에서 대전으로 이동한 뒤 12시 넘어 한영관씨의 전화를 받고 한희원이 경기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았다. 한희원이 오피스디포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직후 김감독은 한영관씨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했다. 한영관씨와 김감독의 인연은 깊다. 한희원이 휠라코리아와 후원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주선한 사람도 김감독이었다.

이제 한영관씨의 빈자리는 프로 야구 LG 트윈스 선발 투수로서 1998·1999년 연속 10승을 따낸 사위 손 혁이 메우고 있다. 손 혁과 7년여 열애한 끝에 결혼한 한희원은 아버지 한영관씨가 곁에 없어도 오빠(손 혁)가 있어 든든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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