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폭탄급’ 핵전략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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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문서, 지역 분쟁에까지 ‘선제 공격 가능’ 언급

 
“북한에 핵폭탄 한 개만 떨어뜨려도 최소 43만명에서 최대 55만명이 몰살하고, 방사능 낙진이 한반도 전체는 물론 심지어 일본까지 뒤덮을 수 있다.” 지난 4월 미국의 핵 전문가 한스 크리스텐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했던 경고다. 이처럼 가공할 경고가 핵 전문가들 사이에서 잇따르는데도, 한반도 유사 상황까지 포함한 핵 사용, 그것도 ‘선제 사용’을 염두에 둔 미국의 핵 전략은 착착 구체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핵무기 사용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또 다른 선제 공격 계획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폭로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아래 딸린기사 참조).

미국이 냉전시대 때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옛 소련 등 세계 패권 경쟁국이 아닌 중동의 이라크, 동북아의 북한 등 ‘작은 나라들’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선제 핵공격을 가할 수 있음을 공식화한 때는 2001년 12월이다. 미국 행정부가 핵태세보고서(NPR)를 미국 의회에 제출하면서였다. 

당시 보고서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사 사태(contingencies)'를 세 가지로 분류하고, 북한·이란·이라크·시리아·리비아를 유사 사태 발생 가능 국가로 지목했다. 당시 보고서가 분류한 유사 사태의 세 유형은 ‘즉각적 유사 사태’ ‘잠재적 유사 사태’ ‘돌발적 유사 사태’였으며, 북한과 이라크는 이 보고서에서 ‘만성적인 군사적 우려 대상’으로 ‘특별히’ 지목된 바 있다.
 
여기서 선제 핵공격과 관련해 특히 유의할 대목은 잠재적 유사 사태이다. 이는 유사 사태가 잠재적인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길을 터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는 또 이들 나라에 대해 ‘비핵 공격을 견뎌낼 수 있는 목표물, 예컨대 지하 깊숙이 있는 벙커나 생물학 무기 시설을 공격할 때 핵무기를 쓸 수 있다’고 명시했다. 북한이 미국의 핵 위협에 대비해 군사 시설을 상당 부분 지하화했다는 사실은 국제 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은 보고서가 나올 당시 북한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서 큰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같은 계획은 그 뒤 단순한 엄포용이나 원칙 천명 차원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난 3월 이후 미국 국방부의 공식 인터넷 사이트에 올랐다가 지난 9월 사라진 또 하나의 관련 문건은 이같은 논란 많은 미국의 선제 핵 전략의 세부 내용이 최종 완성 단계에 와있음을 보여준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며, 핵무기를 사용할 때는 어떤 계통을 밟아야 하는지 단계와 절차를 한층 더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합동 핵 작전 원칙(Doctrine for Joint Nuclear Operations)>’이라는 이 문건은 미국 국방부가 한때 공식 웹 사이트에 올렸다가 삭제하는 등 곡절을 겪은 것이다. 지난 3월15일자로 작성된 이 문건은 지난 9월까지 몇달간 미국 국방부 공식 웹사이트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문건 전문(약 60쪽)이 국제적으로 나돌면서 문제가 되자 미국 국방부는 ‘기밀은 아니지만 인터넷에 나돌기를 원치 않는 종류의 문건’이라는 이유를 대고 삭제해 버렸다. 물론 이같은 조처만으로는 미국 국방부의 두통거리가 제거된 것은 아니다. 이후로도 국제적인 반핵·평화 단체인 그린피스 등이 내려받아 두었던 문건 전문을 인터넷 사이트를 올려 보란 듯이 ‘무료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북한 등 작은 나라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누가 그것을 제안하고, 재가하는가. 문건에 따르면, 가장 윗선은 일단 미 합중국 대통령이다. 이 문건은 핵무기 채용(employment)과 종결(termination)의 최종 권한은 대통령이 보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다음, 누가 세부 작전 계획을 조절하는가. 문건에 따르면 미국의 대통령·국무장관·합참의장이 작전 지침을 내린다.

사용 요청은 사령관이, 최종 명령은 대통령이

문건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반도의 유사 사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역(戰役) 핵 작전’ 대목이다. 전역에서 상황이 벌어지면, 미국은 어떤 핵무기를 동원하는가. 이 문건에 따르면, 한마디로 모든 핵병기를 동원할 수 있다. 문건은 미국의 핵병기로 중력탄·순항 미사일·토마호크·잠수함 발사 핵 미사일·잠수함발사 탄도 미사일·대륙간탄도탄(ICBM)을 언급해놓았다. 대통령과 미국의 각 지역군 전투 사령관(geographic combatant commander·예컨대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중부사령관, 한반도를 관할하는 태평양사령관 등)은 군사적·정치적 목표에 맞추어, 어떤 핵병기든 적재적소에 골라 쓸 수 있다.

 
핵을 사용하는 최종 권한이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면, 이를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역 핵 작전’ 범위에서 핵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은 각 지역군 사령관에게 주어져 있다. 핵 작전 문건에 따르면, 이 때 지역군 사령관은 군사 상황을 판정하고 첩보 내용을 평가해 내린 결론을, 각종 정보와 함께 상부에 보고할 의무를 지닌다. 구체적인 공격 목표(targets)는 부사령관이 정해 지역군 사령관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전역 차원의,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에서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 이 문건은 우선 8개 항목의 조건을 규정해 놓았다. 첫째는, 적국이 미국 또는 다국적군·동맹국 군대나 민간인에게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할 의도가 있을 때이다. 둘째는, 핵무기를 동원해야만 완전하게 파괴할 수 있는 적의 생물학 무기 공격이 임박했을 때이다.

그러나 미국은 적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만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핵 사용 조건은 대단히 광범위하게 규정되어 있다. 문건은 핵무기 사용의 또 다른 조건으로 △적의 재래식 전력이 (병력 집중 등으로) 장차 압도적이게 될 때 △미국이 유리한 위치에서 전쟁을 신속하게 종결하려 할 때, 심지어 △적국이 다른 국가에 미국이나 미국의 다른 동맹국을 공격할 대량살상무기를 제공해 실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을 때에조차,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물론 문건 내에 함부로 핵무기를 쓸 수 없도록 한 견제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 사용 결정은 그 자체가 엄청난 파괴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문건은 핵 전략을 운용할 때 반드시 점검해야 할 ‘기본 고려 사항’ 중 하나로, ‘국제적인 반응’을 정해놓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문건은 국제적 비난이 예상된다고 해서 무력 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며, 국제법상 핵무기 사용의 합법성을 아울러 강조했다.

미국은 도대체 어떤 논리로 핵 사용 가능성을 정당화하는가. 2001년에 나온 핵태세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국방부의 최근 문건은 핵 전력이 미국의 4대 국방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4대 국방 목표란, △동맹국·우방국에 대해 미국의 안보 공약 보장 △잠재 적국의 도전 기도 무력화 △잠재 적국의 공격 억지 △(실제 전쟁 때) 압도적 군사력을 통해 적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과거 냉전 시절 때의 핵 운용 원칙과 별반 차이가 없다. 2001년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핵 사용 대상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선제 공격까지를 포함해 핵 태세가 훨씬 더 ‘공격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핵 정책 전문가 한스 크리스텐슨은 최근 인터넷 사이트 ‘무기 통제(Arms Control.org)'를 통해 이번 문건에 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 때의 강조점 역시 선제 공격을 특징으로 하는 한층 강화된 ’미국 핵 태세의 공격적 성격‘에 두어졌으며, 크리스텐슨은 새롭게 추가된 ’전역 핵 작전‘ 장(章)이 그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냉전 시대 종말과 옛 소련 붕괴 이후 안보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하고 새 핵전략을 수립했다. 즉 대량살상무기 기술이 확산되면서 테러 집단이나 불량 국가까지 핵 무기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예전의 핵 태세는 새롭게 대두한 잠재 적대 세력을 억지하는 데 부적절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격적인 핵 전략을 새로 짠 것이다.

 미국 부시 정부는 새 안보 상황에 대처하는 목표 달성 방법으로 ‘신 3대 전략각(New triad)'을 천명했다. 냉전시대 미국 핵 관련 ’3대 전략각‘은 대륙간탄도탄(ICBM)·잠수함 발사 탄도탄(SLBM)·전략폭격기 등 주로 무기 운용 기술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반면 2001년 핵태세 보고서를 통해 공식화하고, 현재까지 세부 사항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신 3대 전략각’은 △비핵 전력(대표적으로 정밀 무기)을 혼합한 핵 공격 능력 강화(기존 3대 전략각은 이 안에 포함) △적극 방위 및 소극 방위 전략 개발 △방위 능력 향상을 위한 인프라 구축(MD 포함) 등 훨씬 더 복합적이며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 “국제 안보 상황 불안하게 하는 전략”

미국은 이번 문건말고도 2001년 핵태세 보고서를 뒷받침할 각종 계획을 ‘지침’ ‘명령’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수립 또는 작성해 왔다. 특히 이번 문건은 실전 상황에서 어떻게 핵 작전을 구현할지 상세히 규정하고 있어 그간 진행한 작업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성격을 갖는다. 이 문건은 올해 안에 또 한번 수정을 거쳐 미국 합참의장이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의 핵 선제공격 전략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론이 분분하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범지구적인 영향을 주는 핵무기 사용의 주무대가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이 아니라 지역 ‘분쟁’ 차원으로 낮추어진 점을 들어, 미국의 새 핵 전략이 세계에 평화와 안전을 가다져주기는커녕, 오히려 국제 안보 상황을 불안하게 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선제 핵공격을 천명하면서도 실제 상황에서 핵을 쓸지에 대해서는 결코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모호성’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 또한 미국 핵전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는 있을지언정, 전체 비확산 노력에는 역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만사가 불여튼튼’이라고, 미국의 핵 선제공격에 노출되었다고 판단하는 나라들은, 최후의 수단으로라도 핵 개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지난 10월10일 국회 국정 감사장에서 폭로한 ‘전략 기획 지침’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국방부가 ‘2급 비밀’ 문건이 유출된 경위를 알아보겠다며, 권의원에게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해 달라는 소환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권의원실이 입수한 문건의 정확한 이름은 ‘한미연합사의 작전 기획을 위한 대한민국 국방장관과 미합중국 국방장관의 군사위원회에 대한 전략 기획 지침’(지침)이다. 권의원실 설명에 따르면, 이 지침은 2002년 12월5일 제34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때 작성된 것이다.

주요 내용은 이른바 ‘작계(오플란) 50 시리즈’라고 부르는 일련의 공동 군사작전 계획을 수정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지침을 담은 것이며, 원본에는 양국 국방장관의 서명이 들어 있다. 이보다 한 달 앞선 2002년 11월에는 더글러스 페이스 미국 국방 차관이 한국을 방문해, 새 작전계획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의원이 이 지침에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한·미 합동작전의 근간을 이루는 ‘작계 5027’의 수정 방향을 언급한 대목이다. 이 지침 4항은 ‘북한군을 격멸하고, 북한 정권을 제거하며, 한반도 통일 요건을 조성하는’ 쪽으로, 작계 5027의 수정 방향에 지침을 내리고 있다. 권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이를 두고 ‘대북 선제공격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던 것이다. 당시 피감사 대상으로 출석했던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소관 사항이 아니어서 답변하기 부적절하다’며 권의원의 질의를 피해갔다.

국방부 “북한 도발에 따른 방어용”

논란의 대상이 된 작계 5027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한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으로, 2년에 한번씩 수정·보완되며, 수정된 연도에 따라 ‘작계 5027-02’(2002년) ‘작계 5027-04’(2004년) 등의 이름이 붙는다. 권의원이 ‘대북 선제공격용’이라고 주장한 것은 바로 위 지침에 따라 2003년 12월 작성된 작계 5027-04를 지칭하는 것이다.

작계 5027 수정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는 그동안 ‘소문’이 분분했다. 이미 2001년부터 미국의 전략이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선제공격으로 크게 선회함에 따라, 작계 5027의 방향도 이를 반영하여 바뀔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군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세부 내용을 비밀에 부친 채 ‘작계 5027은 어디까지나 북한 도발에 따른 방어용’이라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결국 권의원이 폭로한 ‘지침’은 최신판 수정 내용이 당초 추측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작계 5027의 수정 방향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문건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권의원의 폭로에 국방부측 반응은 민감했다. 권의원이 질의한 날 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선제공격과 관련된 어떤 계획도 없다’고 밝힌 것이나, 곧이어 국군 기무사 명의로 권의원실에 ‘참고인 출석 요구서’를 보낸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방부가 ‘참고인 출석’, 즉 사실상의 소환을 요구한 이유는, ‘전략 지침이 2급 비밀로 분류되어 있어 유출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의원측은 이같은 국방부 소환에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국회 회기에 입법 기관인 국회의원에게 출석을 요구한 행위는 국회 의원의 정당한 의정 활동을 부정하는 중대한 사태이며,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알 권리를 부정하는 태도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회기 중에 국회의원 출석 요구, 국가 기밀 공개 범위, 그리고 한반도 안보 문제에 직결된 작계 5027 문제 등이 한데 맞물려, 권의원의 폭로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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