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북송되면 죽어요”
  • 박성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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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단독 취재] 탈북 여성 8명, ‘칭다오 한국학교 진입→한·중 협상→한국총영사관행’ 전모

 
지난 10월11일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에 위치한 국제학교인 청도이화한국학교. 2백여 학생들이 1교시 수업을 막 마칠 무렵인 오전 9시50분, 만 18세의 앳된 소녀부터 51세 중년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1950년대 출생 1명, 1960년대 출생 2명, 1970년대 출생 4명, 1980년대 출생 1명)의 여성 8명이 갑자기 학교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의 눈을 피해 보따리 하나 없이 맨몸으로 학교 담을 넘어 들어간 이들은 모두 탈북자. 중국 당국이 산둥성 옌타이(煙臺)시 국제학교로 피신한 탈북자 7명을 강제 북송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강제 북송이냐 한국행이냐를 놓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3시간 반 동안 이들의 긴박했던 상황을 기록했다.

“한국으로 가려고 왔어요. 살려주세요!”
10월11일 오전 청도이화한국학교의 담을 넘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간 탈북자 8명은 곧바로 1층 교장실로 들어갔다. 이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면서도 정정식 교장(51)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거듭 애원했다.

곧이어 소식을 듣고 칭다오 주재 한국영사관 직원 2명이 급히 학교를 찾았다. 간발의 차이를 두고 중국 공안들도 학교로 들어왔다. 한국 영사관 직원들이 도착하기 전 중국 공안이 먼저 들이닥쳤더라면, 탈북자 일행은 고스란히 연행될 수도 있었을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이들이 교장실 옆 회의실에서 협상을 벌이는 동안, 탈북자들은 교장실 한켠에 있는 작은 방에서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채 떨고 있었다.
 
공포감에 경기 일으키고 대성통곡

그 때 갑자기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젖뜨리는 소리가 났다. 또 다른 공안이었다. 만 18세로 8명 중 가장 막내인 리 아무개 양(함경북도 회령시)이 엉겁결에 창문을 넘어 도망가려고 했다. 한쪽 다리를 걸치고 창턱을 넘는 순간 다른 탈북자들이 다리를 붙잡아 끌어내렸다. 이대로 넘어가면 오히려 잡혀갈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것이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리양은 다시 방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한 탈북자의 손이 유리에 긁혀 피가 흘렀다(후에 다른 사람들은 리양에게 “혼자만 그렇게 가서 살려고 했나. 우리가 너를 살린 거다”라고 말했다).

밖에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되던 사이 방안에서는 심한 공포감에 소파 뒤 구석으로 들어가 떨고 있는 사람, 경기를 일으키고 방바닥에 쓰러지는 사람,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 등이 한데 섞여 수라장이 되었다.
 
탈북자들은 한국 영사나 중국 공안, 학교 행정실 직원 등을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번으로 세 번째 탈북을 시도했다는 김 아무개씨(43·함경남도 북천군)는 이번에 북송되면 100% 죽는다는 두려움에 그 누구보다도 서럽게 울었다.

“첫 번째 두 번째 탈북까지는 강제노동 수용소에 보내고 살려주기도 해요. 그것도 중국에 와서 살다가 잡혔을 때의 얘기지 국경을 넘다가 잡히면 경우가 다릅니다. 세 번째는 안돼요.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어요.”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탈북자 여덟 사람. 이들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부근 한 민박집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북한을 넘어 중국에 온 지는 길게는 9개월, 짧게는 2주 된 사람도 있었다.
  
“서로 눈치만 보면 알잖아요. 남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한두 명이 가면 무서우니까 모여서 같이 오게 됐어요.”

고향집에는 일자리를 찾으러 가겠다고 말하고 중국으로 온 터였다. 그 중 가장 먼저 중국 땅에 첫발을 디딘 배아무개씨(30·함경북도 청진시)는 헤이룽장성 닝안(寧安)시에서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 신혼 생활을 하던 중 한국행을 결정했다.

“살고 싶어서 목숨 걸고 탈북”

“중국에서 신분을 속이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고…. 결혼을 하고 살아도 어차피 발각되면 북송됩니다. 남편도 그걸 알아요. 제가 살아있다는 소식만큼은 꼭 알리고 싶은데….”

김 아무개씨(37·함경북도 청진시)와 리 아무개씨(51·함경북도 청진시)는 국경을 넘다가 함께 오던 동료를 잃기도 했다.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할 만큼 절박했던 사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서슬 퍼런 중국 공안의 질문에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살기 위해서요. 살고 싶어서요. 나중에는 악밖에 남지 않았어요.” 대답은 이것이 전부였다.

한 시간이 넘도록 울다 지친 상태에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던 탈북자들은 주변 상황이 자신들에게 긍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자 그제서야 안도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경찰 아저씨. 경찰도 집에 가면 각시랑 자식들이랑 사랑해줍니까?”

중국 공안과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약간은 경계가 풀린 한 탈북자가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고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공안도 이같은 질문을 듣자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웃음을 지었다.
   
“경찰이 총살하고 때리는 것만 봐서 경찰들도 과연 집에 가면 사랑을 하고 사는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귀고리와 목걸이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여성의 본능일까.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남쪽 여자들, 정말 일부러 살 뺍니까?”

  “귀고리는 중국에 와서 처음 했어요. 중국 여자들이 귀고리를 많이 한다고 해서 중국 여자처럼 보이려고요. 귀를 잘못 뚫었는지 지금도 고름이 나요.”

 
어느덧 12시 반. 학생들이 한창 학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을 무렵 탈북자들이 있던 교장실에도 똑같은 급식이 배달되었다. 밥과 된장국, 달걀말이, 어묵볶음 등 평범한 반찬이었지만 “이 반찬들이 전부 학생들이 먹는 것이냐”라며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이들은 그러나 대부분 음식을 앞에 두고도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북한에서 지병으로 가슴을 모두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고 지금도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최고 연장자 리 아무개씨는 물도 없이 연신 알약으로 된 안정제를 한 움큼씩 들이키기만 했다.

 “남쪽에서는 정말 여자들이 일부러 살을 뺍니까? 북조선에서는 통통할수록 미인이에요.”

급식을 배달한 학교 관계자가 “밥을 먹지 않으면 내보내주지 않겠다. 혹시 일부러 살을 빼는 거 아니냐”라고 농담을 건네자 의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 칭다오 주재 한국총영사관행이 결정된 것은 이들이 억지로 밥 한술을 뜨던 그 시각이었다. 운동장에서 뛰놀던 학생들이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를 기다려 마침내 1시20분께 승합차 한대에 영사와 탈북자들이 올라탔다. 그제서야 살았다는 안도감에 모두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전날 한국 위성TV 뉴스를 보고 옌타이에서의 탈북자 강제 북송 소식을 알고 왔던 터라 “하늘이 도왔다”는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한국에 가면요. 무엇을 하고 살까 하는 생각은 사실 한번도 안해봤어요. 살고 죽는 문제가 달렸는데 그런 것까지 어떻게 생각해요. 희망이요? 그런 것 없어요. 희망도 살아있어야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총영사관으로 간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주 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옮겨진 탈북자 8명은 수주에 걸친 엄격한 신원 조사를 받게 된다. 탈북자가 맞는지를 우선 확인하고 구체적인 탈북 이유도 조사한다. 총영사관에는 여러 명이 머무를 만한 숙소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일반 사무실에서 지내며 기본적인 식사와 생필품만 제공받게 된다.
 
조사가 끝나면 한국 외교통상부, 중국 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희망하는 곳으로 이송된다. 이들이 모두 한국행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한국으로 이송되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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