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의 문화학
  • 이욱연(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
  • 승인 2005.10.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비평]

 
중국에 짜장면이 있어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원래는 중국 음식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사라지고 한국에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자장몐은 ‘페킹 덕’이라고 불리는 베이징 오리 요리와 더불어 베이징을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베이징 오리가 고급 식당 요리라면 자장몐은 베이징 서민 요리이다.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베이징 사람들이 집안에서 가장 싼값에, 가장 쉽게 만들어 먹던 요리이다. 그래서 베이징 토박이들, 특히 나이 든 베이징 사람들에게는 자장몐을 즐겨 먹던 추억이 각별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베이징에는 빠른 현대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예전 가난하던 시절 먹었던 옛날 음식을 다시 찾는 것이 유행이다. 이 유행 덕분에 베이징의 옛날 유명한 자장몐집들이 다시 호황을 맞고 있다.

베이징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베이징 거리를 지나다가 옛날식 북경 자장몐이라거나, 정통 베이징 자장몐이라고 선전하는 식당에서 진짜 베이징 자장몐을 먹어 보는 것도 훌륭한 문화 체험이 될 것이다. 몇 년 전, 학술회의 때문에 베이징에 간 몇 사람을 안내하다가 식당에 갔다. 메뉴에 자장몐이 있다고 하자 다들 안색이 달라졌다. 느끼한 중국 음식을 사흘이나 먹어 질려 있던 차여서 자장몐이 구세주였던 것이다. 말리고 싶었지만 이것도 경험이 되겠구나 싶어서 주문했다. 오이채가 덮인 자장몐은 보기에 그럴듯했다. 하지만 절반을 비운 사람이 없었다. 짠맛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짜기만 하지 아무 맛도 없고 내용물도 부실하다고 불만이었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장면은 역시 한국 짜장면이 최고야.”

베이징 전통 자장 ‘짠맛의 추억’

짠 자장 된장에 오이채나 무채만 얹혀 있는 베이징 자장몐에 비하면 한국 짜장면은 훨씬 달고, 고기·감자·호박 등 갖가지 채소가 많이 들어가서 영양도 더 풍부하다. 음식 맛이라는 것이 원래 습관과 관계된 것이어서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건대, 서민 음식이라는 기본 개념을 보존하면서도 맛과 영양을 보강한 우리 짜장면이 베이징 자장몐·산둥 자장몐보다 훨씬 낫다.

올해로 짜장면이 우리 나라에 선보인 지 100년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식 짜장면을 맨 처음 개발했다는 인천 차이나타운에서는 짜장면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는 짜장면 축제도 열렸다. 100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짜장면은 이제 한국인과 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있으면 김치와 더불어 가장 그리운 것이 짜장면 아닌가. 짜장면은 이제 한국 음식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한국인이 애용하는 김치와 짜장면은 순수한 토종 음식이 아니라 외국 것과 섞인 잡종 음식이다. 외국에서 고추가 수입되기 이전인 조선 중기까지 김치는 오늘날처럼 맵지 않은 하얀 김치였을 것이다. 그런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을 생각을 누가 했을까. 짜고 단순한 중국 자장몐을 한국 사람 입맛에 꼭 들어맞게 한국식 짜장면으로 바꾸려고 거듭 연구하고 실험한 사람은 또 누구였을까.

글로벌 시대, 외국 문화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대한민국 문화 공간이 달라지고 있다. 문화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면서 여러 문화가 혼재하는 다문화적 공간이 열리고 있다. 문화가 뒤섞이는 것이 우리 시대 문명의 대세라고 할 때, 이제 지상에 순수한 토종 문화는 존재할 수 없다. 잡종의 시대다.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잡종의 시대다. 이 문화적 잡종의 시대에 어떻게 어떤 잡종을 만들어내어 대한민국 대표 토종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대한민국 대표 잡종을 만들 것인가. 문화적 잡종 시대를 어떻게 헤쳐 갈 것인가. 우리 시대 문화적 화두다. 이 화두를 풀기 위한 고투와 지혜를 짜장면에서 배운다. 중국으로 상징되는 전통적 대륙 문화와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 해양 문화가 한반도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는 우리 시대, 백 살 먹은 짜장면을 먹으면서 외래 문화와 우리 삶을 절묘하게 결합하는 잡종의 문화적 상상력을 생각한다. 글로벌 시대 한국 문화의 생존 전략을 생각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