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복분자주의 ‘음미 미학’
  • 벵자맹 주와노 (음식 칼럼니스트) ()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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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749년에 출간된, 한국에 관해 쓰인 <여행에 대한 일반적 역사>라는, 스물네 권으로 된 책 불어 원본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에 관해 불어로 출판된 가장 오래된 서적의 하나일 것이다. 책의 내용 중 특히 ‘한국인들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아주 검소하다’라는 구절이 감동적이었다.

이 여행의 첫 만남으로부터 그동안 한국은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을까. 2005년 현재 한국에 있는 외국인이라면 아마 이 책의 저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 마신 후 때로는 길가에서 혼수상태로 뒹굴게 만드는 소주와 원샷·폭탄주를 빼놓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밤거리 풍경이다. 최근에 생겨난, 이런 술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한국의 밤문화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한국의 지성인들은 좀더 세련된 음주 문화를 위해 술 마시는 방식을 개선하고자 한다. 유럽식으로 말이다. 그들은 우아하고 천천히 술을 마시는 ‘주도’를 주창하는데 그 선례를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에게서 가져왔다. 와인은 소주나 보드카 같은 강한 술처럼 샷으로 마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와인은 세련되면서 여유 있는 즐거움과 분리될 수 없으며, 와인을 마실 때는 음미하고 감상하면서 마시는 것이 요구된다.

 
그렇지만 와인의 병마개를 하나씩 따서 마시는 이러한 방식이 프랑스에서조차 최근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을까? 예전에는 단지 와인만을 마시지 않았다. 고대에는 아이스 와인, 포르토, 소테르느 백포도주 등과 같이 아주 달면서 알코올이 섞인 와인을 선호했었다. 그래서 단지(흙을 구워 만든 용기) 안에 저장되어 거의 리큐르가 된 강한 와인을 물에 섞어 마셨다.

에귀에르라고 불렀던 그릇 안에서 와인과 물을 혼합했고, 거기에 꿀이나 향료를 첨가하기도 했다. 이는 와인 통이 아직 확산되지 않았던 결과였으며, 당시에는 와인을 오래 보관하거나 숙성 시키는 법을 알지 못했다. 골루아 족은 로마 제국에 다른 것들과 더불어 참나무나 밤나무 통을 가져다 주었지만 포도주를 마시는 방식에 변화를 주지는 못했다.

루이 14세보다 우아한 오늘날의 와인 마시기

루이 14세는 17세기에도 여전히 포도주를 물에 타서 마셨다. 왕의 식탁을 준비하는 여섯 사람 중에는 음료수를 담당하는 내관이 있었다. 식탁에는 병도 잔도 없었다(당시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왕이 음료수를 요구하면 음료담당 내관은 “왕을 위해 마실 것”이라고 외치면서 용기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모든 이들 앞에서 그가 마실 와인과 물의 혼합음료를 도금한 잔에 부었다.

그리고 나서 내관은 왕 자신이 음료를 채워서 내관에게 돌려주기 전에 단숨에 마시도록 빈 잔을 왕에게 올렸다. 19세기 이전에는 그 어느 계층에서도 테이블 위에 잔을 올려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왕처럼 식사할 때 두세 잔을 마시곤 했지만 현대의 와인 연구가들처럼 조금씩 핥으면서 입 안에 오래 담고서 맛을 보거나 음미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와인을 마시는 방식은 19세기에 와서야 요리에 대한 사고의 변화와 함께 생겨난 것이다. 와인 저장과 성숙, 그랑 크뤼(특주)를 가능하게 한 것은 코르크 마개와 유리병이 발달한 덕분이다. 루이 14세가 와인을 그렇게 원샷으로 마셨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루이 14세보다 우아한 방식으로 와인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인들은 복분자주를 즐겨 마신다. 모두가 알다시피 복분자주는 단순히 미각을 돋울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조금 달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복분자주는 천천히 반주로 마시기에 안성맞춤이다. 건강에 좋은 술을 분위기에 맞추어 천천히 마시는 새로운 음주 문화가 이제 한국에서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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