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삼성·이건희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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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압도적 1위…벤처 CEO 몰락하고 관료 떠올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거센 외풍에도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2005년에도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위에 올라 대통령 다음의 권력자임을 인정받았다. 순위 변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목률도 조금 상승했다(38.6%→39.4%).

 10위권에 든 한국의 대표 인물 가운데 유일한 재벌 총수이니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경제관료 포함)으로 꼽힌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2위는 지난해와 같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차지했다. 1998년 말 현대그룹에서 자동차 부문을 계열 분리할 때 정회장은 오너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으로서 평가받겠다고 공언했다. 경영 능력을 보이겠다는 그의 의지는 꽤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년간 현대자동차의 사세가 눈부시게 커졌고 인수한 기아자동차의 경영 정상화도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2005 경제인 영향력 조사에서 이변에 속하는 것은 벤처기업가 ‘축출’과 경제 관료 약진 현상이다. 지난해 각각 6위와 9위에 올랐던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과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이 10위권에서 밀려났다. 지난해 전임 이헌재 부총리가 8.0% 지목률(4위)에 그쳤던 것에 비해 한덕수 부총리는 20.0%를 얻었다. 지난해에는 없던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이 10위권에 들었으며, 관료는 아니지만 박 승 한국은행 총재가 단번에 5위를 차지한 것도 이채롭다.

 
 이런 반사 영향 때문인지 구본무 (주)LG 회장과 최태원 (주)SK 회장은 사세에 걸맞지 않게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파동에서의 소신 행동이 깊은 인상을 심어준 덕분인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새로 단번에 6위로 올라섰다. 이번에 새로 올라온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의 위상을 견줄 때 때늦은 감이 있다. 경제인인지 정치인인지 체육인인지 모호한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이 올해도 지목된 것이 눈길을 끈다.

경제 관료의 영향력이 커지고 새로 등장한 기업인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이건희 회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에 대한 지목률은 추격이 불가능한 성층권에 올라 있다. 이런 결과는 그가 삼성그룹의 대표 경영자이자 한국 최고의 뉴스 메이커라는 점에서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최근 수개월째 부정적인 삼성 이슈가 봇물 터지듯 불거진 것을 감안하면 이상 징후로도 읽힌다. 그의 영향력이 작아지기는커녕 커진 것은 ‘삼성 이슈 따로 이회장 따로’로 해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 이슈 따로 이건희 따로’ 반영

이런 엇갈림 혹은 분열 현상은 지난 두달간 <시사저널>과 KBS, <머니투데이> 등이 실시한 ‘삼성·이건희 회장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끌어대 설명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이회장의 역할과 삼성의 한국 경제 기여도를 매우 긍정하지만, 불법·변칙 시비에 휩싸인 이른바 ‘삼성 이슈’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삼성의 지나친 독주도 해롭지만, 삼성에 대한 과도한 견제 역시 이롭지 않다는 인식으로도 이어지는데, 누구보다 일반 국민들이 삼성과 이회장에 대해 고도의 균형 감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회장은 현재 한달 이상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9월4일 정밀 진단을 받기 위해 미국 휴스턴의 MD앤더슨 암센터로 떠났다는 이회장은 걱정스런 예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좋은 소식이 들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일까. 2005년만큼 그에게 시련과 고뇌의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제왕처럼 군림한다는 경영 행태를 비판받고 있으며, 아들에게 경영권을 대물림하는 과정, 그리고 지배 구조에서 비롯한 금융관련법 위반 시비에 휩싸여 있는 등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물론 전에도 그를 비판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지금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과거가 일부 운동가의 국지전이었다면 이제는 입법부와 사법부라는 국가 기관마저 가세한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 정당성을 되뇌었던 삼성 수뇌부의 대응 방식도 정면 도전받을지 모른다. 국감에서 그의 ‘대리인들’은 기업을 도덕적으로 질타하는 ‘국민정서법’으로 공격하지 말라고 외쳤지만, 그들이 자신했던 합법성의 울타리가 붕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10월4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 1심에서 법원이 업무상 배임 등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한 축이 무너지는 징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검찰에 이어 삼성도 항소). 

결국 이회장은 ‘민의와 진정으로 소통해 결자해지 차원에서 삼성 이슈를 풀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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