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민의 알 권리? 됐거든!”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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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의 ‘의원실별 정책개발비 지출 액수·내역 공개’ 청구 거부
 
지난 추석 즈음에 때아닌 ‘떡값’ 논란이 일었다. 추석 직전인 9월15일에 국회 사무처가 입법·정책개발비 명목으로 각 의원들에게 일률적으로 6백만원을 지급한 것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사용 후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 돈은 김원기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에 필요하다며 정부로부터 배정받은 예산 100억원 가운데 일부였다. 100억원 가운데 80억원은 1인당 한도를 2천12만원으로 하여 10월 말까지 집행하고, 나머지 20억원은 인센티브 개념으로 상임위 별로 우수 의원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20억원을 미리 당겨 일괄적으로 지급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책 개발을 위해 올해 처음으로 책정한 정책개발비는 어떻게 쓰였을까? <시사저널>의 의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시사저널>은 지난 9월12일 취재 기자 명의로 ‘9월 현재까지 각 의원실별 정책개발비 지출 액수 및  지출 내역(정책내용 포함)’에 대해 국회 사무처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고등학생 이상이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정보 공개 청구가 가능하다). 이미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집행 세부내역’(6월~7월)을 정보 공개를 통해 받은 터였다. <시사저널>이 정보 공개를 청구한 이후 우연치 않게 ‘떡값 논란’이 터져 나왔다. 국회 사무처는 당초 9월26일까지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공개 여부를 결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공개 여부 결정기한을 10월11일로 연장했다(9월28일 국회 사무처 국정감사가 있었다).

기간이 연장된 후 국회 사무처는 결국 ‘비공개’를 결정했다. ‘원칙적으로 공개 대상이지만,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집행 과정에 있는 사항이어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현시점에서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였다. 정책개발비를 쓴 의원도 있고 안 쓴 의원도 있는데, 이를 다 쓰기 전에 공개하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의적인 비공개 결정 제재할 길 없어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장인 이광수 변호사는 이번 비공개 결정이 현행 정보공개 청구법의 문제점이 드러난 전형적 사례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심의회에서는 공개·비공개를 결정할 뿐, 해석할 권리가 없는데도 조항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광수 변호사는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 5호(감사·감독·검사·시험·규제·입찰계약·기술개발·인사관리·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 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의 취지를 비공개 사유로 들고 있으나, 이 경우 비공개 사유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아무리 자의적 판단으로 비공개 결정을 내려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욱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9월28일 열린 국회 사무처 국정감사에서도  ‘추석 떡값’ 문제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남궁석 국회 사무총장은 국감에서 “지난해 예산을 편성할 때 의원 후원회도 활성화돼 있지 않고 의원들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해 책정했다”라고 답변했다. 의원들조차도 ‘떡값 논란’으로 국회가 불신을 샀다고 질타했다.

현재까지 각 의원들이 정책개발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추석 때 정책개발비 6백만원을 일률적으로 지급하기 전까지 정책개발비를 한푼도 사용하지 않은 의원 수가 72명에 이른다는 정도만 밝혀졌을 뿐이다(임태희 의원실 자료). 의원 4명 가운데 1명꼴이다. 후원회 집회 등이 금지되어 의정 활동에 지장이 있다던 의원들의 하소연이 무색할 지경이다. 각 의원실별 정책개발비 사용 내역에 대해 왜 비공개 결정을 내렸는지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예산감시운동을 활발하게 벌이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최인욱 국장은 “정보 공개 청구 제도가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국회 사무처뿐만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보 공개 건으로 이 단체가 행정심판을 청구했던 대표적인 기관이 강남구청이다.

2005년 3월1일 함께하는시민행동은 2003년부터 3년 동안 사회단체에 배분한 보조금 내역을 공개하도록 서울시 25개 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각 지자체마다 새마을운동협의회·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한국자유총연맹 등 몇몇 단체에 몰아주기 지원을 한다는 의혹이 있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공개한 정보를 올해는 공개 안해

그런데 25개 구청 가운데 유일하게 강남구청만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동일한 정보 내용인데도 행정기관에 따라 공개·비공개 결정이 다르게 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내용은 2004년 강남구청이 정보 공개를 거부하다가 행정자치부의 유권 해석에 따라 공개했던 것이었다. 이미 공개했던 정보인데도 한 해가 지나자 또다시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함께하는시민행동측은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지난 6월 말에 정보 공개 결정을 받았다.

 
최인욱 국장은 “이미 공개했던 동일한 자료에 대해서 비공개 결정을 내려도 이의 신청을 하거나 행정 소송을 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유사한 사례에 대해 정보 공개를 해야 한다는 판례가 있어도 일선 공공기관이 비공개를 결정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의 경우는 행정 심판 선에서 금세 해결한 경우에 속한다.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의 분석에 따르면, 정보 공개 소송을 제기하고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평균 33개월(2년 9개월)이 소요되었다. 참여연대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대법원에 접수된 정보 공개 소송 44건을 분석한 결과이다. 3건은 확정 판결까지 무려 5년이 넘게 재판이 진행되었다.

실제로 고건 전 서울시장과 당시 서울시 구청장들의 판공비 내역은 이들의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야 법원의 공개 결정이 확정되었다. 15대 국회의 ‘예비금 및 위원회 활동비’ 집행 내역은 17대 국회가 들어서고 나서야 공개 판결이 확정되었다. DJ 정부 고위 관료들의 ‘재산등록 고지 거부자 명단 및 사유’ 역시 이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2심 판결이 참여정부 중반기를 지난 최근에야 선고되었다. 참여연대 홍석인 간사는 “정보의 생명은 시의성인데, 공개가 늦어지다 보니 정보의 가치가  떨어진다. 15대 국회의원에 관한 정보를 17대 국회 때 받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정보 공개 소송에 대해 선거법 재판처럼 신속한 재판 원칙을 도입하고, 대통령 소속 정보공개위원회에 행정 심판 기능을 부여해 소송에 따른 시간과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등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을 취지에 맞도록 개선하도록 촉구하고 나섰다. 이 법 1조에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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