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저울, 오른쪽으로 기우나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5.10.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새 대법관에 보수 인사 지명…진보파 “사회 주도권 잃을라” 대반격

 
요즘 미국은 강정구 교수의 발언 파문으로 이념 대결에 빠진 한국 못지 않게 보수와 진보 세력 간에 한치 양보 없는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이번 싸움은 부시 대통령이 최근 지명한 해리엇 마이어스 연방 대법원 판사 후보(00쪽 상자 기사 참조)를 둘러싼 것이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을 살펴보면, 부시와 공화당 등 보수 진영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보수계 판사를 앉힘으로써 연방 대법원의 세력 판도를 완전히 보수 쪽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고,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진보 세력은 이를 결사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연방 대법관 한 사람을 놓고 미국 사회가 요즘처럼 보수와 진보가 사생결단 식의 싸움을 벌인 적도 별로 없었다. 왜 그럴까. 대법원 판사 구조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현재 대법관 9명으로 이루어진 대법원은 얼마 전 타계한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 후임으로 이 달 초 취임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해 4명이 보수파이고, 존 폴 스티븐스를 위시한 4명이 진보파 판사, 그리고 중도 성향 판사 1명으로 분류된다. 즉 보수와 진보가 각각 4명씩 포진하며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미국 대법원은 연방 헌법의 최종 해석자로서 미국인의 일상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낙태, 총기 소유, 정·교 분리, 사형 제도, 흑백 차별 등 중대한 현안에 대해 확정적인 판결을 내려왔다. 이같은 팽팽한 보·혁 구도에서 미국 사회가 그런대로 균형을 유지하며 버텨온 데는 1981년 취임한 이래 보수와 진보 양측을 오가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온 중도 성향의 오코너 대법관 덕이었다. 

그런데 올해 75세인 오코너 판사가 지난 7월 은퇴를 선언하자 미국의 보수와 진보 세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보수 진영은 오코너의 후임으로 확실한 보수 판사를 임명함으로써 낙태 허용을 비롯해 과거 보수파에게 타격을 안겨준 판결을 재심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동성애 결혼 등 중요 사회 현안과 관련해 보수쪽 견해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판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진보 진영은 비록 공화당 정부에 의해 지명되긴 했어도 그간 이념적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판결을 통해 소신껏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온 오코너 같은 사람을 후보로 지명해야 한다며 부시를 압박했다.

 
그러나 막상 부시는 보수와 진보 어느 쪽도 흔쾌히 만족시킬 수 없는 마이어스 카드를 내밀었다. 이를 두고 정치 분석가들은 부시가 자칫 보수 색채가 너무 뚜렷한 후보를 내세웠다가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지연 전술에 휘말려 영영 후보 인준이 안되는 상황이 재연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무명’인 마이어스 카드를 내민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종신직인 대법관은 공석이 생길 때마다 사회적으로 누가 후임이 될지 지대한 관심이 쏠려왔다. 그만큼 대법원 판결이 미국인 개인의 삶은 물론이요 개인과 사회, 개인과 정부, 나아가 주 정부와 연방 정부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며 미국 사회의 조류를 바꾸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연방 대법관은 헌법의 최종 해석자로서 모든 분쟁의 최종적 해결사다. 대법원 판결이 나면 그것으로 완전히 끝이다.

한  예로 2000년 대선에서 당시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플로리다 주에서 투·개표 시비가 일자 최종 승자를 가린 것은 대법원이었다. 당시 대법원이 대선과 같은 정치적 사건에 개입한 것은 미국 건국 이후 처음이다.
 
정치적 사건은 예외로 접어두더라도 미국 사회의 조류를 바꾼 역사적 대법원 판결은 수두룩하다. 우선 예나 지금이나 미국 사회 최대 쟁점인 낙태 문제부터 살펴보자. 1973년 미국 텍사스 주민인 노마 맥코비는 임신했으나 낙태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낙태를 ‘살인 행위’로 간주한 텍사스 주의 주법이 그녀의 낙태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그녀는 텍사스 주법이 개인 사생활을 보장하는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5 대 4라는 아슬아슬한 찬반 판결로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늘날 미국 50개 주에서 낙태가 합법으로 인정된 것은 순전히 이 때의 판결 덕분이다. 현재 미국에서 낙태 건수는 꾸준히 줄고 있지만, 한 통계에 따르면, 지금도 한 해 약 80만 건씩 낙태가 시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사회의 영원한 숙제인 흑백 인종 차별. 그 벽을 허문 1954년의 대법원 판결도 미국 민권사에 길이 남을 명판결로 꼽힌다. 당시 린다 브라운이라는 한 흑인 여학생은 길 건너편에 백인이 다니는 공립 학교가 있는데도 매일 8km를 걸어 흑인이 다니는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러자 그녀를 대신해 전미흑인협회측이 ‘모든 시민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미국 수정 헌법14조를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당시 얼 워렌 대법원 판사는 “법의 눈으로 볼 때 정의는 피부색을 구별하지 못한다”라면서 연방 정부에 대해 흑백 차별 제도를 철폐하라고 판시했다. 미국 전역의 공립 학교가 흑백 구별 없이 학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오늘날 미국에서 명문 대학을 포함해 많은 대학이 흑인들을 포함해 소수 인종 학생들을 많이 입학시키는 것도 실은 소수민족 우대법 때문이다. 그런데 1976년에는 이를 부분적으로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미국 대학가에 충격을 안겼다. 당시 앨런 바케라는 한 백인 학생이 의과대학원 여러 군데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런데 그중 한 곳인 캘리포니아 대학이 성적에 상관없이 흑인 학생 17명을 입학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내곤, 실력이 월등한 자신이 떨어진 것은 ‘역차별’ 탓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마이어스 임명되면 낙태 합헌 판결 뒤집힐 수도

대법원은 그의 역차별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대학측에 소수 인종 특례 입학 절차를 좀더 엄격히 시행하라고 명령했다. 이 법은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가 2003년 대법원에서 5 대 4라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합헌 판결을 받아 살아 남았다. 

 
낙태 문제만큼이나 보수와 진보 세력 간에 뜨거운 쟁점인 공립 학교에서의 기도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 대법원은 1985년 분명한 선을 그었다. 당시 앨라배마 주에 사는 한 부모가 자신들의 세 자녀가 매일 학교에서 1분간 기도하도록 의무화한 주법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대법원은 ‘정부는 어느 종교에 대해서도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하며, 특정 종교를 지지해서는 안된다’며 앨라배마 주법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그밖에도 언론 자유와 관련해 미국 대법원은 1971년 국가 안보를 이유로 뉴욕 타임스의 베트남전쟁 보도를 금지하려 한 연방 정부의 소송에 대해 ‘국가 안보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제기되지 않는 한 정보를 제한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또한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에는 이 사건에 연루된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대해, 특별검사가 요청한 전화 통화 기록 제출을 명령해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문제는 이처럼 미국 사회 전반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쳐온 대법원이 로버트슨 신임 대법원장 시대 개막과 함께 앞으로 더욱 보수화할 것인지이다. 특히 보수 진영의 최대 관심사는 1973년 내려진 낙태 합헌 판결을 과연 뒤집을 수 있을지이다. 실제로 대법원 재심을 기다리고 있는 낙태 소송이 6건이나 된다. 만일 낙태반대론자로 알려진 마이어스 지명자가 상원 인준을 받아 대법원에 합류할 경우 보수 대 진보 판사 비율은 6 대 4로서 기존 낙태 허용 판결이 약 32년 만에 뒤집힐 수 있다.

또한 1997년 위헌 판결이 내려진 환자 자신의 생명 박탈권 문제도 보수 진영의 희망대로 재심이 이루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뿐 아니다. 미국에서 보수와 진보 세력간 최대의 쟁점은 총기 소유 문제다. 헌법에 보장된 총기소유권과 관련해 미국 대법원은 1930년대 이후 최근까지 이 문제는 주 정부 소관이라며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하지만 로버츠 대법원장은 관련 소송이 대법원에 오면 과감히 다루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특히 매년 80여건에 불과한 대법원 소송 계류 건수를 앞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밝혀 내년부터는 판결 결과에 따라 미국 사회 여러 분야에서 파장이 크게 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럴 경우 현재 매사추세츠 주처럼 일부 주가 합법화한 동성애 결혼 문제도 머지 않아 연방 대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럴 경우 동성애 결혼에 관한 한 보수파의 반대 결의가 워낙 강하다는 점에서 보수파 대법원의 판결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임 로버츠 대법원장이 최근 상원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 이미 확립된 판결을 존중하겠으며, 특정 사안에 대해 예단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당시 마이어스는 텍사스 주 주복권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은퇴를 선언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마이어스를 발탁한 배경으로, 그녀의 판단력과 ‘투철한 헌법주의’를 꼽으면서 “지난 10년 이상 알고 지내온 사람으로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이어스가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대법관 자리에 임명된 배경에는 1993년 이후 지속되어온 부시와의 돈독한 인연, 나아가 부시에 대한 그녀의 지극한 ‘충성도’가 결정적이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마이어스가 상원 인준 청문회를 앞두고 우군이라 할 보수 진영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보수파의 관심사는 대법관 지명자의 실력이나 명망이 아니다. 이들의 최우선 관심사요 필수 요건은 낙태와 동성애자 결혼 등 핵심적 사회 쟁점에 대해 ‘보수파’로서 분명한 소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보수파들이 마이어스가 대법관에 지명된 것에 한결같이 흥분하는 까닭은, 판사 출신이 아닌 마이어스가 이런 쟁점에 관해 논지를 편 바 없어 ‘사상 검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보수계의 영향력 있는 논객인 윌리엄 크리스톨은 “공개적으로 검증된 수많은 보수적 헌법주의자들을 제쳐놓고 마이어스를 지명한 것은 보수 진영의 사기를 꺾는 일이다”라며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또 다른 보수 논객들은 마이어스가 하버드나 예일 같은 명문 법대 출신이 아니며 판사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을 들어 ‘자질론’을 들먹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에서 대법관을 지낸 1백9명 가운데 41명이 비법관 출신인 데다, 비명문 출신도 허다해 이런 자질론은 미국 사회에서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마이어스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며 오늘에 이른 것은 오로지 그녀의 근면과 일벌레 근성 때문이라며 대법관감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난한 집안의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마이어스는 한때 교사가 될 꿈을 가졌지만, 아버지가 빚에 쪼들려 집안이 어려워지자 스스로 학비를 벌어 법대를 졸업했다. 마이어스는 한때 텍사스 주 로펌에서 근무했고, 여성 최초로 텍사스변호사회 회장을 지냈으며, 부시와는 한 투자업자의 소개로 1993년부터 알게 되었다.

마이어스는 부시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기독교 교인인데, 바로 이런 종교적 요인이 부시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마이어스의 근성을 인정하는 사람 중에도 그녀가 과연 오코너 대법관 같은 균형추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