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먹은 벙어리가 하지 못한 말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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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 어느 산 아래 집을 지은 분이 있다. 근래 집을 비운 동안 이층 천장에 말벌이 집을 지었다. 독사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벌에게 부인이 두 번인가 쏘여 병원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소방서에 신고를 하고 출동을 기다리다 아랫집 공사장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인부들이 해결해 주겠다고 나섰다. 인부들은 뿌리는 살충제를 벌집 입구에 몇 번 뿌리더니 벌집을 확 뜯어내어 들고 가버렸다. 알고 보니 말벌의 벌집이 장식용으로 상당한 값에 팔리는 모양이었다.

말벌 가운데 가장 크고 독성이 강하며 공격적인 종류는 장수말벌이다. 장수말벌은 집을 땅속에 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벌초를 하다가 바위 틈이나 땅을 잘못 건드려 말벌에 쏘이는 경우 장수말벌이기 쉽다. 장수말벌에게 쏘이면 혼수 상태에 빠지거나 심지어 죽는 경우도 있다. 독이 강한 동물을 술로 담가 먹으면 정력에 좋다는 대한 한국 사내들의 선입관, 아니 집단 무의식, 아니 생활의 지혜에 따른 것인지는 몰라도 말벌주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몇 년 전에 내 작업실이 있는 동네에 갔더니 땅을 파다가 말벌집이 나왔다며 마을 앞 구멍가게 앞이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술을 담가 먹는 건 성충 - 날아다니는 벌-이고 동네 사내들이 축제 분위기에 젖은 것은 벌집의 애벌레 때문이었다. 한 방에 한 마리씩 들어 있는 애벌레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설왕설래하는가 싶더니 결정이 되자마자 댓바람에 어느 사람이 휴대용 가스렌지와 식용유, 프라이팬을 가져왔다. 그러더니 애벌레 수백 마리를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볶는 것이었다. 기름 냄새와 고기 냄새가 고소하게 나고 지상 최고의 별미라는 설명과 함께 성의 있게 권해오는데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강원도 산골에서 벌을 치는 사람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텔레비전에서 본 이후 말벌은 몇 십 마리만 작당해도 꿀벌 수만 마리를 전멸시키는 악독한 종자로 알고 있었던 터라 불쌍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말벌은 벌이지만 꿀을 먹지 않고 꿀을 만들거나 모으지도 않는다. 장수말벌은 곤충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다른 말벌이나 벌, 나방, 나비, 애벌레를 사냥하고 심지어 왕사마귀도 밥으로 안다.

감언이설에 끌려 덜컥 사고 만 설악산 목청

알고 보면 말벌 역시 생명을 지속해야 한다는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것뿐이다. 말벌이 다른 벌집을 공격해서 벌을 전멸시키고 애벌레를 제 집단의 애벌레의 먹이로 삼긴 하지만 말벌이 직접 고기를 먹는 건 아니다. 말벌의 먹이는 애벌레의 몸에 들어 있다. 일벌이 잡아온 고기를 씹어서 경단 모양으로 만들어서 애벌레에게 먹인 뒤 애벌레의 배를 긁으면 애벌레는 몸에 들어 있는 액즙을 토해내는데 그게 일벌의 식량이다. 그 외에도 말벌은 참나무 수액을 아주 좋아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애벌레의 배를 긁기보다는 수액을 먹어서 영양을 섭취한다. 말벌주나 애벌레 요리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 길어졌다. 결국 참나무가 나왔으니 원래 하려고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꿀 중에 목청(木淸)이라는 게 있다. 석청(石淸)은 ‘산속의 나무나 돌 사이에 석벌이 모아 놓은, 질이 좋은 꿀. 석밀(石蜜)’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지만 목청은 사전에 없다. 당연히 목벌도 없다. 벌의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나무 속에서 나는 꿀이 목청이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 강원도 인제의 필례약수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토산물을 파는 안경 쓴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그는 나와 동행인 J선배가 설악산 특산이라는 병풍취를 곁들인 산채백반을 먹고 나서 선반에 있는 꿀단지에 관심을 보이자 차숟가락 하나만큼의 목청을 먹게 해주었다. 그러고서 밥숟가락으로 보통 꿀을, 물론 그것도 설악산의 토종꿀이지만, 퍼주었다. J선배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나는 목청을 먹고 뒷골이 약간 띵해지는 것 같았고 토종꿀을 먹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남자는 그게 예민한 사람들이 보이는 ‘명현현상’이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목청으로 담근 술을 두어 잔만 마시고도 뒷방에 뻗어서 열 시간, 스무 시간씩 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나보고 목청이 잘 받는 사람 같다고 1.5리터짜리 병 하나에 20만 원 한다는 그걸 사라고 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내가 노가리, 아니 황태, 아니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인 줄 어떻게 알았는지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설악산 대청봉에 첫눈이 오기 전쯤에, 그러니까 늦가을이 다 돼서 꽃도 없어지고 찬바람이 살살 불기 시작할 때쯤에, 진한 설탕물을 접시에 타가지고 저 넓은 공터에 두 손으로 접시를 떠받들고 서 있는다(앉아 있으면 안 되느냐, 접시를 가슴 아래로 내리면 안 되느냐, 땅바닥에 내려놓으면 안 되느냐 하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그러면 지나가던 벌이 한 마리 와서 접시에 내려앉는데 그 벌이 설탕물을 먹고 돌아가는 방향으로 몇십 미터 더 전진해서 역시 접시를 쳐들고 서 있는다. 집에 돌아간 벌이 제 동료를 데리고 오는 시간은 집이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서 좀 다른데 오래 걸리면 삼십 분도 걸리고 빨리 오면 오 분 안에도 온다. 벌들이 설탕물을 먹고 돌아가면 그 방향으로 더 가서 마찬가지로 서 있는다. 이런 식으로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벌집을 찾아가면 대개 큰 참나무 고목이 나오게 되어 있다. 잘 살펴보다 보면 벌 한두 마리가 기어다니는 곳에 벌 크기만한  자그마한 구멍이 있다. 그러면 가지고 간 톱으로(전기톱인지 흥부가 박을 탈 때 쓰는 톱 같은 건지, 언제부터 어느 손으로 들고 갔는지 묻지도 않았다) 나무 한쪽을 네모나게 잘라낸다. 나무 안쪽에 고층 아파트 같은 벌집이 붙어 있는데 운이 좋으면 오년 십 년짜리 벌집을 만나기도 하고 그러면 목청을 몇 말씩, 드럼으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드럼통을 굴리면서 산에서 내려온다.”

그는 목청이 특히 중풍 환자에게 좋은데, 보통 사람의 뒷골이 콱 당길 정도로 막강한 에너지가 마비된 조직과 신체를 풀어주고 피를 쌩쌩 돌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나는 그걸 사고 말았다. 돈이 없어서 한 병은 다 못 사고 반 병만 사서 어느 분께 드시라고 드렸다.

근자에 나는 히말라야 산중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석청에 식물성 독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 먹을 때 주의하라던가, 먹지 말라던가 하는 기사가 나온 걸 언뜻 보고 뒤통수에서 에밀레종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화를 드렸더니 목소리로는 아무 낌새도 챌 수 없었다. 그날 점심 때 만나서 조심스럽게 그때 그 목청 다 드셨느냐고 했더니 그랬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모든 꿀은 식물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식물들은 각기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인데 그 중 하나가 독이며, 그 독을 모아서 사람이 먹게 될 경우, 상당한 양이 되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보통 꿀보다 더 좋다는 목청, 그 목청보다 더 좋다는 석청, 그것도 강원도 산보다 훨씬 높은 히말라야 산맥의 고산에서 나오는 그 석청에 식물성 독이 들어 있어서 먹은 사람이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그 분이 사준 월남국수를 조금 맛없게 먹었을 뿐이었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석청에 들어 있는 식물성 독이 히말라야 고산지역 특산으로 일부 석청에만 문제가 있을 뿐 국내산 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말을 그분께 전하지도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날 점심에는 내가 직접 국수를 만들어 먹었는데 나 혼자 국수 끓이고 국물 만들고 나 혼자 먹었지만 참 맛있었다.

올해 대청봉에는 언제 첫눈이 오려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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