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원짜리 그림이 가짜라니…
  • 조명계(중앙대 교수, 아트 어드바이저) ()
  • 승인 200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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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위작 미술품 제작·유통 사건 현장 중계/한국인도 주요 타깃

 
2005년 새해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에서 미술품 도난과 사기 사건을 전담하는 도널드 리크 형사가 로스앤젤레스 시내 뉴오타니호텔 로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두 한국인이 호텔로 들어와 체크인하는 것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나이 든 한국인은 사업가로 보였는데 영어를 전혀 못하는 듯했고, 젊은이는 통역 역할을 하는 듯했다. 젊은 한국인은 현금을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큼지막한 가방을 들고 있었다. 곧 이어 리크형사는 그들이 한 나이 든 의사를 만나는 것을 보았다. 그 의사는 전직 하버드 의대 교수임이 후에 밝혀졌는데, 매우 비싼 그림들을 팔고자 호텔에 나타난 것이었다.

한국인 사업가 일행이 그림 매입을 시도했던 지난해 말은 1990년대 초반 이후 14년 간이나 지속되던 미술 시장 불황기가 끝나던 시점이었다. 그림값이 뛰고 매출 규모가 전년에 비해 25%나 늘어나서 수익을 노리는 이들은 누구나 미술 시장에서 머니게임을 시도하던 때였다. 이들 한국인들은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 브로커를 통해 작품 매입을 시도하던 참이었다.

앞서 언급한 나이 든 의사의 이름은 빌라스 리카이트다. 66세인 그 역시 비서와 함께 뉴오타니호텔에 도착했다. 레이 스미스라는 비서는 미술에 관하여는 아무런 지식이 없는 듯이 보이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39세인 이 필리핀인은 리카이트의 집 근처에 사는 이웃일 뿐이었고 리카이트로부터 어떠한 급료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4만9천 달러를 리카이트에게 투자한 피해자였을 뿐이었다. 그는 20여 점의 작품과 검은색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휴대하고 있었다. 가지고 온 작품 중에는, 우아하게 장식된 액자에 검은 머리의 여자 초상화를 그린 대표적인 미국 인상파 화가 메리 카사트의 작품이 있었다. 또한 드 쿠닝·한스 호프만·재스퍼 존스의 작품도 들어 있었다. 그는 무거워서 들고 오지 못했다면서 중국 서부지역에서 발굴된 옥불상 사진도 두 한국인에게 보여주었다.

리카이트, 가짜 명작 10억 달러어치 보유?

 
한국인 사업가 일행에게 한 시간 넘게 그림을 설명하던 리카이트는 그림 4점을 3천만 달러에 사라고 제안했다. 몇 차례 흥정 끝에 한국인들은 메리 카사트의 초상화만을 80만 달러에 사겠다고 역제안했고, 리카이트도 동의했다. 그리고 리카이트가 대금 수수를 위한 절차로 미리 준비된 현금보관증을 꺼내는 순간 옆 방문이 열리고 리크 형사가 들이닥쳤다. 현장에서 리카이트는 체포되었다. 두 한국인은 홍씨와 변씨 성을 가진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의 한국인 형사들이었다.

리크 형사에 따르면, 리카이트는 대단히 점잖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답게 행동했으며 무척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리카이트는 법정에서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인도가 독립하기 전 마하라자 왕의 비서로 일했으며, 자기는 11세 때 미국으로 이민 와 루이지애나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의대를 나온 후 하버드 의대 교수를 지냈다고 말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마하라자로부터 받은 하사 미술품 때문에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모든 미술품을 상속해 이제껏 지켜왔노라고 했다. 그의 진술은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의 의사 시절 동료 나르델이 등장한다. 그는 리카이트에게서 샤갈의 작품 한 점을 샀는데, 얼마 후 리카이트가 미술 시장에서 생소한 인물이라는 점에 의심을 품게 되었고, 곧이어 샤갈 작품을 하버드 대학 포그미술관에 가져가 그곳에서 진품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강하게 항의하자 리카이트는 바로 환불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르델은 리카이트가 에드가 드가·피에르 보나르 등의 그림을 판매한 사실을 알았으므로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에 신고했다.

샤갈 그림 위조품, 경매에서 45만 달러에 팔려

1970년대 하버드 의대 조교수를 지낸 리카이트는 두 환자에게 마약을 주사한 이유로 의사 면허가 취소되어 학교를 떠난 후부터 전문적으로 위작들을 제작해 팔아왔고, 수 차례 법적 제재를 받기도 했다. 당시 매사추세츠 법원이 크게 실수한 것은 위작을 판매하다가 적발된 그에게 매사추세츠 주 내에서만 3년 간 그림을 팔지 못하게 선고했을 뿐 위작을 폐기 처분하지 않은 데 있었다. 따라서 그는 후에 그림을 캘리포니아로 옮겨 다시 판매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다음은 리카이트가 체포되게 된 과정이다. 리카이트와 친분이 있던 조지 골딩은 2002년 보스턴을 여행하다가 보스턴 케임브리지의 리카이트 저택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몇 개와 미술품 수백 점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당시 리카이트는 이 미술품들의 총액이 약 10억 달러가 된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그 해 가을 리카이트는 골딩에게 전화를 걸어 작품 몇 개를 팔고 싶다고 말했다. 골딩 씨는 친구로서 도움을 주고자 베벌리힐스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리카이트를 소개했다. 이즈음에 리카이트는 한국인 컬렉터를 물색할 브로커 한 명을 고용했는데, 이 브로커가 들고 온 리카이트의 소장품을 본 화랑 주인이 리크 형사에게 신고하면서 그간 행적이 드러난 것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리카이트가 갖고 있는 카사트의 작품이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전문가가 나타나기도 했다. 리카이트 재판은 현재까지 진행 중인데, 리카이트는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 변호사를 고용하여 대항하고 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리카이트로부터 미술품을 구매한 사람들의 신고를 기다리고 있는데,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운영자 스티브 윈이 그에게서 드 쿠닝의 작품을 3천만 달러에 거의 살 뻔했다고 진술한 것을 빼면 별다른 신고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위작에 관한 사건은 미술 애호 국가들과 미술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에서라면 거의 매년 일어난다. 올해 2월 미국 연방수사국은 엘리 사카이라는 뉴욕의 화상에게 위작을 구매한 주민들로부터 제보를 기다린다는 고지를 연방수사국 홈페이지에 올렸다. 엘리 사카는 그의 화랑에서 샤갈·르누아르·모딜리아니·폴 클리의 위작을 판매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가 제작한 위작들은 대부분 아시아 국가로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매에서 팔린 자코메티 작품 대부분 가짜”

그가 위작을 제작한 방법은 이랬다. 그는 우선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매에서 진품을 매입했다. 이후 고용된 위작 전문가들로 하여금 똑같이 여러 점을 그리게 한 후, 심지어 오래된 것으로 보이도록 작품의 뒷면 액자를 코팅 조작한 후 경매품 도록에 실린 사진과 비교하게 하는 것은 물론 작품보증서까지도 위조해 함께 팔아넘겼다.

1993년 샤갈의 위작 한 점이 도쿄의 한 컬렉터에게 작품보증서와 함께 팔렸다. 타이완의 한 화랑도 사카이에게서 1994~1996년에 르누아르·로란신·샤갈의 위작을 사들였다. 사카이는 이 때 시티뱅크의 편지지까지 위조하여 모딜리아니 작품을 팔았다. 황당한 것은 타이완의 화랑이 샀던 샤갈의 위작이 1998년 크리스티 로스앤젤레스에서 45만 달러에 매각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밝혀지면서 당시 미술 시장은 엄청난 파장에 휩싸였다.

 
위작과 관련한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1994년은 싱가포르에서 경매 제도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해다. 그 때 중국화가 리만퐁의 유화가 경매 시작 10분 전에 위작으로 판정되어 철수된 소동이 있었는데, 얼마 후 싱가포르 예술위원회에 의해 다시 진품으로 판정되는 소동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전문가들조차 대책이 안서는 위작 문제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 후 싱가포르 미술 시장에서 중국 회화는 ‘5년간 보증’ 품목에서 제외된 채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1992년 파리에서는 쟈코메티 위작 소동이 미술 시장을 시끄럽게 했다. 1986년 이후 경매에서 팔린 쟈코메티의 작품 중 65~85%가 위작이었다고 폭로되었고, 뉴욕·댈라스·제네바를 넘나드는 파리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관련 인물들이 체포되었다.

또 다른 최근의 소동은 미국 애리조나에서 일어났다. 인상파 최고의 작가로 불리는 르누아르의 정식 이름은 피에르 어거스트 르누아르다. 그의 증손인 장 에마뉴엘 르누아르가 증조부의 이름을 팔아넘겨 미술 시장 역사상 최대의 사기 사건에 휘말릴 뻔했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단돈 100만 달러에 르누아르의 이름을 무기한 사용할 권리를 스캇데일 화랑에 매각하고, 그림 판매가의 10%를 받는 대신 개별 작품마다 보증서를 발행해 주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만약 발각되지 않았으면 10억 달러에 해당하는 복제품이 진품으로 둔갑하여 미국 시장에 퍼질 뻔한 사건이었다.

서울 한 대학 박물관 소장품 95%가 가짜

르누아르는 말년에 평소에 즐겨 그리던 유화에서 벗어나 조각을 제작했는데, 1919년 작고하기까지 6년간 류머티즘 때문에 조각 제작을 그의 조수 리처드 기노에게 맡겼다. 이 때 작품은 단 2점을 제외하고 24점이 기노의 도움으로 제작되었는데, 1973년 프랑스 법정은 기노가 사망한 후 기노 유족이 소송을 내자 24점 저작권에 대한 공동 소유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즉 르누아르의 유족에게는 에디션 제작 권한과 판매권을, 기노의 유족에게는 저작권 관리, 복제품 제작 권리 및 플라스터 캐스트 보유 권리를 주는 이상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 후 양측 상속인들이 르누아르 조각품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위작 판결에 따른 억울한 경우도 있다. 바로 일본 야스다가 갖고 있는 고흐의 <해바라기>로, 이 작품은 수년 간의 논쟁 끝에 진본으로 결론이 났다.

 
작가의 사후 새로 발견되는 ‘유작’이 문제인 경우도 많다. 반 고흐가 사망하자 시장에 나온 작품 수는 고흐가 생전에 그린 그림 수를 훌쩍 넘었다. 앤디 워홀도 사후 신고된 엄청난 숫자의 위작 때문에 진본이 피해를 본 사례로 꼽힌다. 억만장자 토머스 크라운이 심심풀이로 미술관에 걸린 모네의 그림을 훔치는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모순된 영화 스토리일 뿐이지만, 이 영화는 컬렉터 마니아나 애호가들일지라도 일정시간이 흐르면 자신도 모르게 보유 작품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위작 허용과 유통을 수용할 수 있다는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얼마 전 서울의 한 대학 박물관에 가서 소장품 일체를 평가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소장 작품 가운데 5% 미만만 진본이고 나머지가 가품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위작의 실상을 우리는 바로 곁에 두고 있다. 가품을 갖고 있는 컬렉터는 소장품을 매일 곁에 두고 보며 쓰다듬다 보면 얼마의 시일이 흐른 후 본인도 모르게 진품으로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부가 가치가 높기 때문에 위작을 유통시킨다고만 볼 수는 없다. 위작을 수용하는 부류도 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범죄이다.

판화를 제외한 모든 예술품은 단 한 점만 존재한다. 그런데 애호가가 예술품을 갖고 싶은 욕구는 일반인보다 매우 강하다. 미술 시장은 자본주의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통제되지 못하는 시장이며, 이 시장의 흐름은 경제 이론으로 명쾌히 설명되지 못한다. 보편성의 사회 분배 원칙이 적용되지 못하는 곳도 미술 시장이다. 결국 위작 유통이 범죄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혼란에 빠져들기 쉬운 곳이 미술 시장이다. 무슨 대안이 필요할까.

 
최근 이중섭·박수근 위작 수사 발표를 보면서 지난 8월 파리에서 벌어졌던 일을 언급하고자 한다. 미하일 케미아킨이라는 러시아 태생 미국인 조각가는 그가 전속된 화랑이 작가의 허락과 채색 도움 없이 제작한 조각 14점을 기자·변호사·전문가 들이 보는 앞에서 플라스터까지 폐기했다.

최근 문제가 된 이중섭·박수근 그림도 위작이 분명하다면 당연히 공개 폐기되어야 한다. 이를 아깝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스스로 범죄 성향이 있다고 느껴야 할 것이다. 폐기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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