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권하는 계절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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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장밋빛 인생> 영화 <너는 내 운명> 등 신파물 ‘대박’

날씨가 추워지면서 브라운관 기상도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 전반적으로 웃음 전선이 약해지고 울음 전선이 강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개그 콘서트><웃찾사>와 같은 개그 프로그램이 전성기의 절반 정도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는 반면, <굳세어라 금순아>와 <장밋빛 인생>처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에 이어 <장밋빛 인생>이 시청률 40% 이상의 고공 플레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스크린에서도 신파가 각광받고 있다. 에이즈에 걸린 아내를 끝까지 지키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너는 내 운명>이 멜로 영화 사상 최대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3백만 고지를 바라보는 가운데, 역시 신파 코드로 무장한 <새드무비>까지 개봉되었다. 

시청자들의 웃음보는 작아지고 울음보는 커진 까닭

 
왜 시청자들의 웃음보가 작아지고 울음보가 커진 것일까? 주목할 부분은 눈물의 주인공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주로 각광받은 눈물은 ‘캔디렐라’들의 눈물이었다. 평범한 여주인공이 재벌 2세인 남자와 맺어지는 과정에서 흘리는 눈물이 신파의 주요 코드였다. 이  때의 눈물은 여성의 욕망을 반영했다.

하지만 지금의 신파는 다르다. <장밋빛 인생>의 눈물은 평범한 주부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고, <너는 내 운명>은 평범한 남자가 에이즈에 걸린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재벌 2세 한 명 잡아서 ‘인생 로또’를 터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렵게 일군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흘리는 눈물이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 시청자들이 흘리는 눈물은 단순히 경기가 나빠져서 아니라 오히려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고 흘리는 회환의 눈물에 가깝다. 사실 경기가 나빠지면 울게 만드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웃게 만드는 드라마나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에 코미디 영화가 줄줄이 대박을 터뜨리고 <개그 콘서트>나 <웃찾사> 같은 개그 프로그램이 시청률 수위를 기록한 것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중 문화 콘텐츠에서 웃음은 울음보다 시효가 짧다. 반복될수록 낙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웃기는 방식이 익숙해질수록 시청자들은 덜 웃는다. 반면 울음은 반복되어도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형식에 익숙해질수록 무조건 반사적인 슬픔에 빠져들기도 한다. 웃음은 단순한 포장술이지만 울음은 깊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 문화의 큰 힘은 웃음이 아니라 울음에서 나온다. 부활한 신파 코드가 우리 대중 문화가 성숙할 계기가 되어줄지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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