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잡고, 체제도 지키고
  •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 ()
  • 승인 2005.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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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식량배급제 재개 내막/경제 개혁 후퇴로 이어지지는 않을 듯

 
 북한이 10월부터 배급제를 정상화하고  식량 거래를 금지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몇몇 국내외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이 공식으로 이를 보도하거나 확인한 바는 없지만, 이 같은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필자가 마침 대북 식량 지원차 지난 10월9~16일 청진을 방문했을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배급제가 재개되었다고 하던데 사실이냐”라고 필자가 묻자 북측 인수단의 ㅎ씨는 “평양에서 실시되고 있는 것을 보고 왔는데 여기 와서 확인해보니 청진에서도 실시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천마산여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도 10월3일에 1인당 700g씩 계산해서 한 달치 전량(18kg)을 받았다고 말했다. 10월14일 제출된 세계식량계획(WFP) 보고서도 하루 식량 배급량이 250g에서 최대 500g으로 2배 늘어났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여러 소식통들을 통해 확인해 볼 때, 식량 배급제 정상화가 아직 북한 전지역에서 일률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북한 당국은 지난 8월께 이미 10월1일부터 배급제를 정상화한다는 취지의 학습 자료를 각 시ㆍ도에 내려보냈고, 자체적으로 시행하라고 했다. 그러나 자체 식량 조달이 어려운 시ㆍ도에서는 정상 배급량인 1인당 하루 700g에 못 미치게 배급하거나 10월1일이 아닌 10월 중순께부터 시행하기도 했다. 어떤 곳에서는 쌀·옥수수 등 곡물 대신 감자를 배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청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전 기관ㆍ기업소 근로자뿐 아니라 장마당에서 부업으로 장사하고 있는 가정주부들까지 배급 대상이라는 것이 당국의 방침이라고 들었다고 전해주었다.

북한 당국이 지금 이 시점에 배급제 정상화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올해 예상 식량 수요량은 6백45만 t으로서 작년 생산량 4백31만 t과 비교할 때 2백14만 t이 부족하다. 9월 말 현재 지금까지 북한에 들어간 외부 지원이나 자체 수입량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약 100만t 정도가 부족하다. 10월26일자 흑룡강 신문에 따르면  올해 북한이 최대 풍작을 이루어  작년보다 50만t 증산된 4백80만t 정도를 수확하리라고 예측되지만, 내년도 전체 필요량에서 여전히 1백65만t 정도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앞으로도 계속 식량이 부족하고, 아직 배급제를 정상화할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이런 여건인데도 배급제 정상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첫째, 2002년 7·1조처 이후 급격하게 상승해온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북한은 7·1조처를 통해 식량을 비롯한 모든 재화 가격을 현실화한 이후 심각한 물가상승에 시달려 왔다. 예컨대 쌀1kg의 시장가격이 7·1조처 당시 45?50원에서 2003년 상반기 1백80원, 2004년 상반기 5백?6백원, 2005년 상반기 1천원으로까지 상승했던 것이다. 옥수수 가격도 계속 올라 올 상반기 7백원대까지 상승함으로써 쌀과 옥수수 가격 간 4 대 1 비율관계가 파괴되어, 1.5 대 1 내지 2 대 1로 전환되기까지 했다. 식량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여타 물가도 동반 상승해 북한 경제는 ‘인플레 경제’로 바뀌었다.

지난 3년여 북한의 식량 공급량은 남한의 비료 지원에 힘입어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 추세였을 뿐 아니라, 남한으로부터의 지원 및 중국으로부터의 도입량 증대로 1990년대 이후 가장 안정적인 추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것은 분배 체계 왜곡과 일부 상인들의 매점매석이 주요 요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해 왔다. 실제로 배급제 정상화 이후 쌀값이 신속하게 내려가고 여타 물가도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을 볼 때 이러한 분석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둘째, 7·1조처 이후 북한 사회에 확산된 시장화ㆍ화폐화 현상에 따른 사회 기강의 해이를 바로잡고 7·1조처를 정상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7·1조처 이후 그동안 생계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주민들의 장사 활동이 자본 추구형으로 바뀌는 부작용이 초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터민(탈북자)들에 의하면,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식량 배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국영기업소 노동자 대부분이 장사에 나서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경제 정상화를 위한 노동력 동원 및 당 조직 및 생활 체계에 위협을 가하고 부정부패를 확산시켜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더 방치했다가는 체제를 위협할지 모른다고 판단하게 한 것 같다.

북한 당국 ‘2005년은 체제 정상화 원년’

북한 당국은 7·1조처 발표 당시 배급제는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식량 부족, 식량 공급선 다변화(국가 수매망 외에 유엔 기구를 통한 원조, 개인 밭 생산물 유통, 식량 전용에 의한 밀거래·밀수입) 등으로 시행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번에 세계식량계획기구(WFP)를 통한 긴급 구호 방식의 식량 지원 거부와 더불어 배급제 정상화 조처를 취함으로써 7·1조처 이후의 경제 개혁을 ‘관리가 가능한 경제 개혁’으로 바꾸어 가려고 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북한 당국은 그동안 당 창건 60주년이 되는 2005년을 ‘먹는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고 ‘고난의 행군’으로 흐트러졌던 체제를 완전 정상화하는 해로 삼고 준비해왔다. 북한의 한 고위 관료는 남북 경협을 위해 방북한 우리 기업가에게 7·1조처 이후 3년 간은 과도기이고, 그 이후부터 정상화해 나아갈 것이라고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은 올 신년 사설에서 농업 부문을 경제 건설의 ‘주공 전선’으로 설정하고 전기관 일꾼 및 주민 들이 이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주문했다. 모내기 철인 지난 4?6월에는 평양 시내가 텅텅 비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지방 도시는 말할 것 없고 평양 시민들조차 농사 지원에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또한 이미 작년 연말부터 세계식량계획 관계자들에게 앞으로 긴급 구호 방식에서 개발 지원 방식으로 지원 방식을 바꾸어 달라는 의사를 표명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주체 100주년이 되는 2012년까지 북한 경제를 완전히 정상화하겠다는 목표로 2005년을 체제 정상화의 원년으로 삼아온 것이다.

이러한 배경들을 놓고 볼 때 북한의 배급제 정상화를 7·1조처 이후의 경제 개혁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평가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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