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불안’도 다시 보는 일본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10.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격한 ‘농림규격’ 갖추고, 수입 식품 현지 조사…‘영농일지’까지 요구

 
‘수입 농산물(식품) 검역’이라는 낱말에는 크게 세 분야가 겹친다. 첫째, 대상물을 ‘수입’(또는 수출)하기 때문에 통상 문제가 발생한다. 둘째, ‘농산물(식품)’은 한 나라의 농업 문제와 직결된다. 셋째, 농산물(식품)은 대개 사람이나 동물이 먹는 것이므로, 수입한 농산물을 ‘검역’하는 행위는 곧 사람이나 동물의 위생·식품 안전을 확보하는 일과 관계된다.

연이은 중국산 김치 소동은 정부 당국이 ‘수입 농산물(식품) 검역’과 관련된 위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채 식품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만 가중시켰다. 땅이 좁으니 해외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검역 과정이 허술해 번번이 뚫렸고, 그러다 보니 중국의 경우는 자기네 것만 때려잡는다고 ‘보복’을 들먹여 기생충 알 김치 소동은 결국 한·중 통상 문제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농림성 직원 파견해 토양·수질도 확인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가. 농산물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농업(농산물 생산)과 식품 안전(검역)이 빠르게 통합하고 있는 국제 추세와 달리, 두 가지 문제가 여전히 ‘따로 국밥’인 행정 당국의 낙후한 인식을 문제의 핵심으로 꼽았다. 선진 외국의 경우는 ‘농장으로부터 식탁까지’라는 구호가 대변하듯이, 생산 단계에서부터 최종 밥상에 오를 때까지 모든 먹거리 문제에 농업과 식품 안전 개념이 동시에 개입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농업(생산) 따로, 식품 안전 따로’라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한국 못지 않게 많은 농산물을 한국·중국 등에서 수입하지만 한국처럼 시끄럽지 않다. 왜 그런가. 한국에서는 수입 식품 문제가 터질 때마다 예산 부족·검역 인력 부족 타령을 늘어놓지만 일본이 조용한 진짜 이유는 돈 많고 인력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숨은 비결은 잘 정비된 제도와 그 제도를 엄격히 집행하는 데 있다.

한국산 유기농 김치 생산자로는 일본의 관련 당국으로부터 거의 유일하게 유기농 김치 품질 인증을 받았던 석종욱씨(한국인증농산물생산자협회 부산·울산·경남지부 회장/전 강민자연농원 부사장)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석씨는 강민자연농원 부사장 시절인 2001년 12월, 약 3~4년간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끝에 한국 김치 업체로는 거의 유일하게 일본 정부(농림성)으로부터 ‘유기농 김치’ 인증을 받았다.

시험 과정은 호되고 깐깐했다. 일본 농림성 직원들은 철마다 한국을 찾아 경남 밀양·하동에 있는 김치밭을 샅샅이 조사했다. 토양·수질은 물론 김치 생산지의 입지 조건·대기 오염 수준도 당연히 조사 항목에 포함되었다.

 
젓갈·소금·고춧가루 등 ‘부재료’에 대한 조사도 철저했다. 일부 부재료가 기준에 미달하면, 조사 나온 일본측은 자기네가 인정하는 어느 것을 쓰라는 식으로 지시까지 했다. 김치를 절이고 버무리는 공장 자체는 물론 김치 가공 전반에 투입되는 자재도 전부 분석했다. 그것도 모자라 일본은 석씨측에 3년치 ‘영농 일지’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일본이 무슨 근거로 한국 업자에게 이처럼 횡포에 가까운 엄격한 조사를 벌일 수 있었을까. 그들의 뒤에는 ‘일본농림규격’(JAS)이라는 것이 버티고 있었다.

일본농림규격은 일본 국내법인 ‘농업물질 규격화 및 품질 표시 적정화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개정해 강화된 이 법의 핵심은 ‘(일본에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모든 신선 식품·수산 식품·가공 식품·수입 식품에 대해’ 품질 표시를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일본농림규격은 이에 따라 만들어진 각 농산물(식품)에 대한 세부 규격이다.

일본농림규격의 최고 수혜자는 자국 소비자이다. 하지만 일본농림규격 적용 대상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수입 이전 단계부터 ‘조사’에 들어가 수입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뒤늦게 식품 안전이나 위생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당 농산물 수출국으로부터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역공을 당할 일도 없다. 석씨네 김치밭과 공장을 샅샅이 조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일본농림규격 덕분이다. 일본은 이렇게 인증을 내주고서도 ‘품질 관리’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김치 공장을 찾았다.

규정 위반하면 범칙금 약 10억원

일본농림규격 운영에서 한 가지 두드러진 측면은 이 규격을 운영하는 주체가 일본 농림성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식품 안전’ 하면 소비자들은 먼저 식품의약품안전청을 떠올리지만, 일본에서는 농산물이나 신선 식품에 관한 한 농림부가 나서서 식품 안전을 관리·감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보건 관련 정부 기구도 이에 대해 ‘간섭’이니 ‘고유 영역 침해’니 시비를 걸지 않는다. 따라서 식품 안전 문제와 농업 정책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그렇다면 수입 농산물에 대한 이같은 엄격한 기준은 유기농 식품과 같은 특별한 식품에만 적용되는가. 일본농림규격은 유기농산물뿐만 아니라 일반 농산물에도 적용되며, 각각 별도의 기준을 두고 있다.

이뿐 아니다. 송기호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식품위생법도 계속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잔류 농약 검사에서 연이어 적발되는 식품은 별도 수입 검사 없이 해당 품목 전체에 대해 수입 금지 조처를 내릴 수 있게 했다. 가령 김치가 계속 말썽이 나면, 김치 수입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관련 규정을 위반할 때의 처벌 수위 또한 높다. 석종욱씨는 일본의 식품 감독 담당자로부터 식품 관련 규정을 한번 위반할 때 내는 범칙금이 ‘1억원’이 아닌 ‘1억 엔’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을 아직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한국의 식품 안전 관리 관행은 축구로 치면, 강한 압박을 통해 상대방의 공격을 하프 라인에서 차단하지 못하고 그저 골문 지키기 급급한 수비 전법에 비유할 수 있다. 상대방 골이 문전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수비수와 고된 몸동작이 필요하다. 일본은 적어도 식품 안전에 관한 한 ‘선진 축구’를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