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역액 급감 엎친 데 덮친 경제
  • 남유철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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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31% 죽어 심각… “책임자 사형” 소문도

북한의 경제 사정이 계속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원이 최근 집계한 북한의 94년도 대외 무역 잠정 평가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대외 무역량은 상당히 줄었다. 94년 실적은 18억3천만달러로 93년의 26억4천만달러에 비해 약 31% 감소했다고 통일원은 밝혔다. 이는 78년 이후 가장 부진한 실적이다.
 이같은 무역량 급감은 지난 4년간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온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통일원은 평가했다. 특히 원유와 곡물 등 북한 경제를 떠받치는 필수품과 전략 물자 수입이 현격히 감소해 ‘경제난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정부는 분석했다.

 무역기구 · 체제 일제히 정비
 통일원 당국자는 “작년도 북한의 수입액은 37%나 감소했다. 이는 대부분 북한 경제를 떠받치는 전략 물자들이어서 북한 산업 전반에 치명적 타격을 준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올해 안으로 획기적인 경제 회복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옛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 경제가 무너지자 90년대 들어 북한의 대외 무역량은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여 왔다. ‘자력갱생’을 고집해온 북한의 대외무역 의존도는 93년 13% 정도로,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는 매우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무역량이 아무리 많이 줄었어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선임연구원은 “우리는 아직도 북한의 경제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외무역 의존도가 크지 않으므로 무역 통계만을 가지고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외 무역량 감소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산업 활동이 부진하고, 외환 사정이 악화하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해 온 원유 공급이 현격히 줄어들면서 북한의 산업 전반에 큰 충격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역량 감소로 경제난을 겪어온 북한은 지난해 ‘무역제일주의’를 선포했다. 무역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무역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정책 의지를 대내외에 공식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작년 무역은 예상 밖으로 부진했다.
 국내의 한 북한 소식통은 지난 2월 무역 관련 당 간부들과 주요 무역상사 사장들이 모두 평양으로 소집돼 책임을 추궁당했다는 첩보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진한 무역 실적 때문에 북한의 무역 기구들과 체제가 최근 일제히 정비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이고, “일부 당 간부가 숙청되거나 사형당했다는 말까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수출은 전년 대비 120.6%, 수입은 37%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주요 교역국 가운데 중국·러시아와의 교역량은 격감했고, 일본은 현상 유지에 그쳤다. 통일원 당국자는 설명했다. 특히 북한의 3개 주요 무역 상대국(중국·러시아·일본 가운데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의 무역량 감소가 지난해 크게 두드러졌다(지난해 중국·일본에 이은 북한의 무역 상대국 3위는 한국이었다).
 북한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무역은 91년 이래 해마다상 상승 추세를 보여 왔다. 그러다 지난 해 처음으로 무역 규모가 6억4천만 달러에 그쳐 전년보다 28.4% 감소했다. 중국과 북한과의 무역량 감소는 중국의 경기 침체로 북한으로부터의 건설 자재 수입이 크게 감소한 데다 그동안 활발했던 변경 무역이 매우 위축된 데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94년 들어 북한과의 변경 무역에 대한 관세 혜택을 50%나 줄였으며, 최근에는 무역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북한 상사들 채무가 늘면서 중국측이 거래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동용승씨는 “미국과 북한이 가까워지면서 넣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북한과 일본과의 무역 거래는 2.1% 가량 증가해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일본 수출은 20% 늘었으나, 수입은 18% 정도 줄었다. 북한과 일본의 교역은 18%년대 후반부터 정체 상태를 보이다가 91년 이후부터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여 왔다. 93년 일본이 밝힌 북한과의 교역액은 수출이 2백 30억엔, 수입이 2백42억엔이었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주로 기계류나 전기 제품 같은 공업 제품을 수입하고, 농수산물이나 광산물 같은 1차 산품을 수출해 왔다. 일본에서 북한과 교역하는 회사들은 대개 총련계 회사로 알려졌다.
 90년 이후 무역 규모가 꾸준히 감소해온 러시아와의 무역량은 작년 1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교역량은 전년 대비 약 77%나 줄었다. 90년 이전까지 옛 소련은 북한의 제1 교역 대상국이었으나, 91년 옛 소련이 무너지고 결제 방식이 경화로 바뀐 뒤 무역량은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지난해 대한무역진흥공사가 밝힌 통계에 따르면, 93년 북한의 러시아 교역은 22.4% 감소했다. 
 북한의 주요 3개 교역국을 제외한 기타 국가와의 무역 실적은 지난해 전년 대비 32.6% 감소한 6억 2천만달러로 추정된다. 통일원 당국자는 “최근 북한이 동남아와 중동국가를 상대로 교역을 시도했으나, 생산력 저하와 국제 신용이 없어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남북 물밑 경제교류 활발
 주요 교역국과의 무역량이 급감하는 반면, 한국과의 교역량은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94년 남북교역승인 규모는 반·출입 총액이 2억2천7백91만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승인 실적 과 실제 교역 실적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수 있으며, 주로 제3국을통해이루어지는 남북 교역의 실제 교역 양을 추정하기는 어렵다).
 통일원 발표에 따르면, 반입은 93년 대비 77% 늘고, 반출은 1백 43.2% 증가하여 전체 교역량은 14.6% 늘었다. 남북한 정치 관계는 대치 국면이 지속되고 있으나, 물밑 경제교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한국 정부와의 당국자간 교류는 거부하면 서도 제3국을 통한 한국 기업과의 경제 교류는 적극 수용한다는 ‘이중 전략’ 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남북 교역 증가에는 한국 정부의 남북 경협에 대한 규제 완화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한국 정부는 핵과 경협을 분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정부는 남북 경협 활성화 조처를 발표했고, 이 결과 남북 교역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작년 하반기 이후 위탁가공 교역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위탁가공 교역 승인 실적은 완제품 반입 승인 기준으로 1백7건에 달했다. 액수로는 1천6백 37만달러나 돼 전년 대비 증가율로 볼 때 무려 3.7배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위탁가공 교역이 급증한 것은, 북한이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한국 기업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할 수 있어 북한 당국이 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또한 정치적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위탁가공 교역을 통해 북한의 시장 여건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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