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조급’, 민주당은 ‘느긋’
  • 고제규 · 차형석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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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의원 21명 ‘통합 찬반’ 설문 조사/‘동상이몽·이상동몽’ 드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민주당 의원들은 느긋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조급하다. 양당 합당에 관해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만나, ‘계승자’ ‘전통적 지지세력 복원’ 등 이례적인 발언을 한 직후, <시사저널>은 긴급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11월9~10일 진행한 이번 조사는 광주·전남에 지역구를 둔 열린우리당 의원(12명)과 민주당 의원(7명), 그리고 민주당 소속 비례 대표(4명) 등 모두 23명을 대상으로 했다(정동채 장관은 현직 각료여서 조사에서 제외했다).

23명 가운데 응답자는 열린우리당 12명, 민주당 9명으로 모두 21명이었다. 민주당 이정일 의원(전남 해남·진도)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같은 당 김홍일 의원(비례대표)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특수관계를 들어 응답하지 않았다.

이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데는, DJ의 정치적 기반이자 영향력이 확고한 지역의 의원들이고, 지역 민심의 풍향계로서, 합당을 한다면 선봉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약속이나 한 듯 양당 소속 의원들은 입장이 갈렸다. 먼저 DJ가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설문에 응한 열린우리당 의원 7명은 ‘합당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나머지 2명은 ‘모르겠다’고 했고, 다른 3명은 ‘개혁적인 민주화 세력의 지지를 회복하라는 의미이지, 합당 주문은 아니다’라고 풀이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격려사로 받아들였다. 응답자 9명 가운데 8명이 단순한 격려사라고 보았고, 1명만 합당 메시지로 보았다. 민주당 최인기 의원(전남 나주·화순)은 “우리한테도 늘 하는 이야기를 열린우리당이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있다. 형식적인 덕담이다”라고 평가했다.

DJ 발언에 대한 시각차는 합당 찬반을 묻는 항목에서도 이어졌다. 설문에 응한 열린우리당 의원 가운데 2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당에 찬성했다. 합당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한 의원은 “선거용 합당은 명분이 약하다. 우리 당을 ‘도로 민주당’으로 만드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견해는, 민주당과 호남지역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유시민 의원이 속한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와 비슷하다.

찬성하는 의원들(10명) 가운데 6명은 내년 지방 선거 전에 합당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열린우리당 전남도당 위원장을 역임한 주승용 의원(전남 여수 을)은 “오죽 답답했으면 DJ가 그런 말씀까지 했겠느냐. 같은 뿌리인 양당은 합쳐야 한다. 합당한다면 무조건 내년 지방 선거 전에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의원은 지금 상태로 지방 선거를 치르면 패배하고, 패배는 열린우리당의 공중 분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합당 시점까지 못 박았다.

합당은 찬성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으로 지방 선거 전에는 어렵다고 답한 열린우리당 의원도 4명이나 되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1명을 빼놓고는 모두 합당에 반대했다. 민주당 안팎에서 상대적으로 합당에 호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의원들조차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은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 인기가 바닥인데, 우리가 침몰하는 배에 올라탈 이유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역구 민심 때문에 합당을 원해도 선뜻 속내를 내비치지 못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양당 의원들에게 합당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주관식으로 물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주로 당리당략과 한화갑 대표 등 민주당내 합당 반대파를 걸림돌로 꼽았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분당 원죄론’을 가장 많이 꼽았다.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은 “분당에 대한 사과 표명이 있어야 하고, 지금도 민주당을 ‘난닝구’니, ‘반개혁적’으로 보는 열린우리당 안의 음해 세력이 정리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합당 안되면 여당에서 ‘2차 봉기’ 일어난다”

흥미로운 점은, 설문에 답한 열린우리당 의원 가운데 일부도 이런 지적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당내에서 합당 반대 쪽에 기운 참정연을 두고서는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을 양분하는 최대 계파인 정동영계(DY)나 김근태계(GT)는 합당에 찬성하는 분위기이다.

정동영 장관과 가까운 염동연 의원은 대표적인 합당파이고, GT계로 분류되는 임종석 의원은 최근 민주 평화 세력 통합론을 주장하며 합당론에 힘을 실었다. 지난 11월11일자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1백12명)을 상대로 한 경향신문 조사에서도 합당 찬성(55.4%)이 반대(16.1%)보다 높게 나왔다.

그러나 지분은 약하지만 목소리가 큰 참정연은 명분론을 내세우고 있다. ‘명분 없는 합당은 도로 민주당’이라며 무원칙한 합당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참정연에 대해, 이 지역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벼르고 있다. 한 의원은 참정연이 계속 어깃장을 놓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2차 봉기’를 암시했다. 이 의원은 지난 6월 염동연 의원의 상임중앙위원 사퇴를 ‘1차 봉기’라고 설명했다. “그때 뜻을 같이하는 호남 의원들이 사퇴 회견문에 유시민 의원의 이름을 박고, 동반 사퇴하라고 했다. 회견문에는 그런 내용이 쏙 빠지고 나중에 말로 하니까 약발이 안 먹혔다”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합당론이 대세를 이루었는데도 승복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갈라서는 한이 있어도 끝장을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광주·전남 지역구 의원들은 정서적인 공감대가 두텁다. 당적과 관계없이 지역구 의원 20명 가운데 6명(30%)이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일 정도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양쪽 의원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합당에 반대하고는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복잡한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다.

최근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을 비롯한 이 지역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을 물밑 접촉하며 ‘끝장 토론’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저쪽(열린우리당)에서 성의를 보인다면 합당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라며 여운을 남겼다.

‘계기’와 관련해서 연초에 있을 개각을 정치권 일각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이때 만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입각하는 ‘소연정’이 이루어진다면, 합당이 급물살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 의원들이 입각하는 소연정에 대해서 의원들에게 물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찬성(9명)이 많았다. 3명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연정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며 반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반대(6명)가 높았다.  판단을 유보한 의원이 2명이었고, 양당 합당에 유일하게 찬성했던 한 의원은 소연정도 찬성했다. 판단을 유보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변수가 많아, 지금 당장 입장 표명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다.” DJ가 현역 때 즐겨 썼던 말처럼, 양당 합당 문제는 지금 살아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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