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이 되어버린 ‘최고’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11.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봉정사 극락전, 해체·수리 후 옛 모습 잃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인사동에서 골동업을 하는 최 아무개씨는 최근 경북 안동 봉정사를 방문하고 온 뒤 깜짝 놀랐다. 고려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극락전의 모습이 1957년 한 출판사가 펴낸 <국보 도록>에서 본 1950년대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1958년 문교부가 발행한 <국보 도록>에도 봉정사 극락전 모습이 실려 있다. 전면이 삼분합문(三分閤門)형태를 띠고 있어서 지금 봉정사 대웅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당시만 해도 마루가 있고 새로 칠하지 않아 고풍스런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극락전은 완전히 달려졌다. 전면에 문을 하나 냈고 양쪽에 광창(빛이 들어오도록 한 창)을 2개 냈다. 형태도 형태지만 칠을 새로 했고, 정문과 광창에 사용한 목재들이 마치 어제 제재소에서 나온 것처럼 각이 살아 있어 보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준다. 지난 7일 현장에 가보니 겉모습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엄과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는 극락전 내부와도 대비되었다.

“안내판에라도 관련 내용 기록해야”

봉정사 극락전은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천등산 봉정사>(지식산업사)를 쓴 이효걸 교수(안동대·국사학과)는 “1972년 보수 공사를 하면서 원형으로 복원한답시고 지금 형태로 바꾸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건물 일부가 변형되었어도 그 나름으로 역사성이 있는 것인데 명확한 근거도 없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뜯어고친 것은 잘못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교수는 “그렇다고 30년이 넘었는데 지금 다시 과거 형태로 돌릴 수 있겠냐”라고 덧붙였다.

1972년 당시 보수 공사를 담당했던 김동현 문화재위원(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은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법당 밑바닥에서 문짝이 달린 신당목이 나오는 등 옛 모습이 밝혀졌기 때문에 애초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당시 문화재전문가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한 것을 나는 집행만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인 김봉건 문화재위원은 “원형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현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철학의 문제다. 어떤 것이 옳다는 것보다는 이 문제 또한 시대 상황에 따라 패션처럼 변한다”라고 말했다.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해체·수리한 지 20년이 지난 1992년에야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고려 시대 목조 건물은 일제 시대에 대부분 수리되었으나,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 시대 건물로는 처음으로 우리 기술로 완벽하게 해체·수리했다’며 큰 의미를 두었다.

김동현 위원은 “복원 과정을 모르는 일반인들로서는 극락전의 현재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하다. 안내판에 이와 관련한 내용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