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동산’에 한 발짝 들여놓다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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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저 탐사대가 심해 화산 2개를 확인하고 심해 생물이 살았음을 입증하는 암석을 발굴했다. 시험 항해에서 ‘대박’을 터뜨린 탐사대의 놀라운 활약상.

 
해양 연구자들에게 1977년 2월17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다윈이 진화론을 굳힌 갈라파고스 해역에서 심해 화산이 뿜어내는 뜨거운 물(열수) 분출구를 찾는 공동 프로젝트(FAMOUS)를 진행하던 미국과 프랑스의 과학자들이 그 때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인 잠수정에 장착되어 있던 첨단 카메라가 전송해온 사진 10만장 속에는  2천5백m 바다 밑 열수구 근처에서 누구도 본 적이 없었던 수많은 생명체가 번성해 군집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도 끼어 있었다.

연구팀은 부랴부랴 유인 잠수정을 내려보냈는데, 잠수정에 탑승한 과학자들은 열수구 근처 생태계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바다 밑에는 위에서 죽어 가라앉는 물고기 시체만 먹고 사는 아주 작은 생명체만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다. 오죽했으면 탐사팀에 생물학자가 한 명도 끼어 있지 않았을까. 탐사선에 생체를 보존할 약품을 싣고 가지 않아 잠수정이 채취한 진귀한 표본들을 파나마에서 사간 러시아산 보드카에 담가놓아야 할 지경이었다. 과학자들은 갈라파고스 해역에서 발견한 이 우아한 심해 생태계에 ‘에덴 동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미국과 프랑스 공동연구팀이 심해의 생태계를 발견한 지 28년 만에 한국 과학자들도 에덴동산에 한 발짝 들어섰다. 지난 11월1일 새벽 한국해양연구원 전동철 박사팀은 1500t급 탐사선 온누리호를 타고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동쪽 비스마르크 해역에 있었다. 그 근처 해역 마누스 분지에는 프랑스 탐사팀이 예전에 발견한 유명한 열수 분출구 3개가 있다. 전박사팀은 심해 생태계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와 연구에 앞서 시험 항해에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이 날 온누리호에는 첫 항해에서 어쩌면 대어를 낚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해저 생물 연구에 큰 획 긋다

전박사팀은 모두 16명.  7명은 10월19일 해양연구원 거제도 작목기지에서부터 출발했고, 9명은 현지에서 합류했다. 해양연구원과 서울대에서 각 3명씩, 그리고 일본 규슈 대학의 열수화학자 준이치로 이시바시, 파푸아뉴기니 대학 지구물리학자 시오니, 파푸아뉴기니 지질연구소장 존 블레커 씨가 참여했다. 탐사팀은 전날 멀티멈 수심측정기로 맵핑(지도화)을 해 이미 새로운 심해 화산을 2개 찾아내 사기가 드높은 상태였다. 존 블레커 소장으로부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화산이라고 확인받은 뒤 탐사팀은 이름을 공모해 이 화산에 리틀코마와 빅코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코리아와 파푸아뉴기니 마당 항의 첫 글자를 딴 것이었다. 미국 지구물리학회가 발표하면 이 이름은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게 된다.

 
탐사팀은 지리산의 절반만한 리틀코마와 빅코마 해역의 어디에 박스코어를 내려보낼까 고심했다. 박스코어란 해저에 자유 낙하시켜 바닥에 박히게 만들어 암석을 채취하는 기구이다. 염분·수심·수온·밀도·탁도를 측정하는 기구인 CTD를 통해 열수 플룸(plume, 화산 분출구에서 나오는 검은 그을음)의 존재를 거의 확신하고 있는 지역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작업은 새벽부터 오후까지 계속되었는데 어느 순간 탐사팀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코어박스로 끌어올린 암석에서 대표적인 심해 생명체 중 하나인 관 벌레가 살았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대수롭게 보이지 않는 돌덩어리였지만 연구자들은 감격했다. 프랑스와 미국 공동연구팀이 심해 생물을 발견한 것은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 지 5년이나 지나서였다. 1960년대부터 과학자들이 심해 열수 분출구의 존재를 확신하고 찾아나섰으므로 심해 열수 분출구 발견에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셈이다. 따라서 한국 탐사팀이 시험 항해에서 새로운 화산 2개의 존재를 확인하고 심해 생물이 살았던 흔적이 새겨진 암석을 발굴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더군다나 갈라파고스 열수 분출구의 수심이 2500m나 된 데 비해 탐사대가 암석을 파낸 지역의 수심은 700m였다. 이것은 앞으로 탐사를 하기가 매우 쉬우리라는 것을 뜻한다. 보통 2000m 이하 수심에서 온누리호 정도의 탐사선이 운 좋게 열수 분출구를 찾아낸다 해도 나중에 다시 와서 똑같은 지점을 탐사하기란 불가능하다. 배를 고정할 수가 없어 암석을 파낸 지점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온누리호는 수심 700m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바로 똑같은 지점에 실험 기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우리 나라의 해저 생물 연구는 미국·프랑스·일본과 같은 선발 주자들에 비해 30년 정도 뒤져 있다. 이번 시험 항해의 성과는 앞으로 15년 안에 이들 선발 주자를 따라 잡아 이 분야의 선두에 서겠다는 한국 탐사대의 다소 무모해 보이는 야심에 서광이 비친 일대 사건이었다.

과학자들이 왜 이토록 심해 생명체에 열광하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해 생명체를 발견하기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사람들은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당연히 태양 에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구 내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화학 합성을 통해 번성하는 심해 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된 뒤부터는 그같은 믿음은 깨져버렸다. 심해 생명체 발견은, 도대체 생명은 어디에서 왔으며, 바닷물은 왜 짠가와 같은 오래된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든다. 과학자들은 심해 생명체가 어쩌면 이같은 본질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지구 최초 생명체, 열수 분출구에서 탄생”

지구의 판과 판이 맞부딪치는 심해의 약한 곳을 마그마가 뚫고 나와 산소가 풍부한 차가운 바닷물을 때리면 마그마에 용해되어 있던 금속이 응결해 바다 속에서 굴뚝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과학자들이 고질라라는 이름을 붙여준 인도양 열수 분출구의 한 굴뚝은 높이가 무려 30m에 가까운데, 이 굴뚝이 심해 생명체의 보금자리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찾아낸 심해 유기체는 모두 5백여 종. 이들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했다. 박테리아들은 산소를 호흡하는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는 유황과 메탄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 과학자들이 ‘ancient ones'라는 별명을 붙여준 아르카에아란 박테리아는 완벽하게 독립된 생명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10℃가 넘는 물에서도 살 수 있는 초호열성인 이 박테리아가 가장 오래된 생명의 원시 형태가 아닌지 과학자들은 연구하고 있다.

 
키가 2m 넘게 자라나는 관 벌레(tube worm)는 입도 장(腸)도 없다. 박테리아에게 자기 몸을 내주어 키운 뒤 다시 그 박테리아를 잡아먹고 에너지를 얻는 매우 특이한 방식의 공생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서양에서 발견된 열수 분출구 근처에서는 빛을 감지할 수 있는 눈이 달린 새우가 떼 지어 살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 최초의 생명체는 열수 분출구 안에서 탄생했고, 빛을 감지할 수 있는 일부 생명체가 얕은 바다로 이동해 광합성 생물로 진화한 덕분에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겨나게 되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심해 생물의 상업적 가치도 무궁무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열과 독성에 강한 심해 박테리아를 활용해 산업 폐수를 처리하는 방안이나, 심해 생명체로부터 신약 성분을 얻어내는 연구도 활발하다. 일본의 해양과학기술센터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심해 생물을 육상 실험실에서 자연 상태 그대로 배양하는 기술을 축적해왔다. 일본의 사가미 만에서 서식하는 관벌레의 경우는 수온 4~5℃의 냉장실에서 기르는데 배양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심해 생물 중에서는 게 종류가 비교적 기르기 쉽다. 국토가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는 일본이 심해 생물 연구에 가장 열심이고 투자도 많이 하는 편이다. 바다 밑 8000m 까지 유인 잠수정을 보낼 수 있는 일본은 해저 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수 분출구 주변은 지구 광물체 원석의 보고이기도 하다. 황·철·니켈·코발트·아연·금 따위가 주변 암석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 각국이 금을 추출하려고 기를 쓴다. 한국 탐험대가 발굴한 화산이 있는 해역의 옆에 있는  마누스 해역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회사가 금을 추출하려고 광구를 설정해 놓았다.

 
우리 나라는 1991년 경제장관회의에서 심해저광물자원개발을 국가 전략 사업으로 의결한 후 태평양 광구에서 망간 단괴를 캐는 작업에 10년 넘게 공을 들였다. 이 광구의 망간 단괴 매장량은 5억1천만t으로 추정되며, 이는 우리 나라가 매년 3백만t씩 100년간 채광할 수 있는 막대한 분량이다. 이번에 전동철 박사팀이 심해 생물체 탐사의 기치를 올렸으므로 우리 나라는 심해 개발의 양대 사업에 모두 뛰어든 셈이다.
하지만 심해 연구자들의 표정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이번 실험 항해 예산이 3억5천만원이었으나 온누리호 배삯으로 2억원을 지불하고 순수한 탐사에는 1억5천만원밖에 쓸 수 없었다. 온누리호의 운영비와 인건비는 정부가 지급하지 않고 탐사팀이 내놓는 사업 예산에서 조달하도록 되어 있다. 남극 세종기지에서 대원 1명이 장비가 열악해 참변을 당한 뒤 정부는 6000t급 쇄빙선 겸 탐사선을 짓기로 했으나 연구자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그 배도 온누리호처럼 사업 예산을 떼어내 운영해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해양연구원측은 그 배를 외국에 잠깐씩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아 부족한 운영비를 채우는 방안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를 더욱 진행하려면 어려운 점이 많기는 하겠지만 심해 생명체 탐사는 시작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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