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 수비크.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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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체결한 '방문군 협정' 탓에 필리핀 전역이 미군 기지화

 
“붕 붕~ 위이잉“ 해변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우주선처럼 튜브를 두른 호버크래프트(공기부양 수송정)가 백사장에서 기동을 시작하는 소리였다. 거센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수빅 만(灣) 쪽으로 방향을 바꾼 호버 크래프트는 이내 파도를 가르며 바다 저편으로 사라졌다. 해변에는 통신병으로 보이는 미군 5~6명이 남아 통신 지휘 차량에서 캠프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글이 걸쳐진 무선 통신 헬멧을 쓰고 티셔츠에 군용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지난 10월30일 오후 필리핀 휴양 도시 수빅에서 벌어진  ‘탤런 비전 육해합동훈련 06’의 한 장면이었다. 훈련 때문인지 관광객들은 호텔 앞에 있는 이 백사장을 즐기지 못하고 차로 30분 떨어진 다른 해변을 찾아가야 했다.

미군에게 수빅은 낯설지 않은 훈련 장소다. 1898년 미군이 필리핀을 강점한 이래 수빅은 미국 해군의 아시아 원정 전초 기지였다. 베트남 전쟁 때는 주요 병참 기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2년을 끝으로 미군은 필리핀에서 철수했다. 필리핀 주둔 미군이 철수한 것은 아시아 시민단체들이 쟁취한 몇 안 되는 ‘승리’ 사례였다.

그렇다면 대체 이 미군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패트릭’이라는 명찰을 단 미군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답해준다. “우리는 일본 사세보에서 배를 타고 왔다. 지금 우리가 하는 훈련은 필리핀 군인을 훈련시키고 테러를 막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 7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 사세보에서 필리핀 수빅까지의 거리는 무려 2241km에 달한다. 미군의 작전 반경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가늠케 한다. 이것이 미군이 필리핀에서 철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수빅 기지가 없어도 얼마든지 필리핀에 주둔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올해 ‘탤런 비전’ 상륙 훈련에는 미군 5천여명과 에섹스 등 함모 3척이 동원되었다. 패트릭은 “10월16일에 시작한 훈련이 이틀 뒤인 11월1일에 끝난다. 해군뿐만 아니라 해병대와 공군·필리핀군도 같이 참여한다”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미군 기지가 하나도 없는 필리핀에서 미군이 다시 활보할 수 있는 이유는 방문군협정(VFA, Visiting Forces Agreement) 때문이다. VFA에 따르면 미군은 필리핀 내 모든 항구와 공항을 이용할 수 있고, 군사 기지를 빌릴 수 있으며, 필리핀 어디서나 연료·식량을 보급하고 수리하며 휴식과 오락을 즐길 수 있다. 마닐라 소재 아시아NGO센터의 정법모 사무국장은 “미군이 철수하기 이전에 필리핀에 미군 기지라고는 수빅과 클라크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필리핀 전체가 미군 기지가 된 꼴이다”라고 평했다. 흔히 필리핀인들이 ‘아메리칸 시대’라고 부르는 1991년 이전의 문제들, 즉 미군에 의한 성폭행·환경 오염 문제가 1992년 이후 ‘VFA 시대‘에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11월1일 발생한 미군 집단 강간 사건이다.

집단 강간 사건으로 여론 들끓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1월1일 피해자 여성(22세)은 친척과 함께 수빅 관광특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밤 9시께 피해 여성은 바에서 미군 해병 6명을 만났다. 여느 성폭행 사건이 대개 그렇듯 처음에 피해자는 가해자와 친하게 어울렸다. 미군들이 다른 술집으로 옮기자고 제안하자 피해자는 순순히 따라나서 승합차(밴)에 올랐다. 차 안에서 해병들은 돌변했다. 피해자를 마구 때리며 집단 강간한 것이다. 몇 시간 뒤 으슥한 해변 도로에 정차한 밴 밖으로 그녀가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을 본 목격자가 있었다. 의식을 잃은 그녀를 응급 진료한 의사는 그녀가 심한 타박상을 입었으며 강간당한 흔적이 있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직후 필리핀 정국은 들끓었다.  아로요 대통령은 엄정한 수사를 약속했다. 11월1일은 미군 훈련이 끝나는 날이어서 해군·해병대가 일본으로 철수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 당국은 에섹스 항공모함의 출항을 연기시키면서까지 조사를 벌였다. 결국 미군은 용의자 5명을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VFA는 제2의 소파 협정

이후 수사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방문국협정 때문에 필리핀 검찰은 용의자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용의자들은 현재 미국대사관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구속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1차 재판권이 미군에게 있어서 과연 이들이 필리핀 법정에 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주한미군이 있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방문군협정은 제2의 주둔군지위협정(SOFA)이었던 것이다.

방문군협정(VFA)은 1999년 5월에 비준되었다. 1991년 9월16일 필리핀 상원이 미군 주둔 조약을 부결한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좌익 반군과 이슬람 게릴라를 소탕하고 필리핀군을 훈련시킨다는 것이 협정을 체결한 명분이었다. 이 협정에는 훈련을 위해 필리핀을 방문하는 미군의 규모나 체류 기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예를 들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처음에는 훈련을 한다며 방문했지만 몇년째 떠나지 않고 있다. 현재 얼마나 많은 미군이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문제가 된 ‘탤런 비전 06’ 훈련 때처럼 수시로 들락거리는 부대가 많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은 이 집단 강간 사건을 1996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열두 살 여자 어린이 강간 사건과 2002년 7월25일 필리핀 말리카탄 훈련 도중 주민이 총에 맞아 죽은 사건에 견주어 보도했다. 오키나와 사건 때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사과했다.

필리핀 현지 시민단체들은 11월4일부터 방문군협정 폐지를 요구하며 마닐라 시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 참조). 시위대는 ‘미군은 이 땅을 떠나라’는 14년 전의 그 구호를 다시 꺼냈다. 특히 미군이 훈련을 이유로 주둔 중인 민다나오 지역 단체들과 여성단체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필리핀지부와 같은 인권단체, 노동단체 들의 성명이 잇따랐다. 정치인들도 가세해 조커 아로요 상원의원은 용의자들을 ‘섹스 테러리스트’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난했다.

필리핀 여성단체인 ‘가브리엘라’에 따르면 1991년 9월 미군 주둔 조약 부결 이후 지금까지 성폭력 82건과 어린이 대상 폭력 15건이 미군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포스트 미군’ 시대에도 시민운동이 할 일이 많다.

필리핀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후의 사례는 우리가 참고해 볼 여지가 많다. 주한미군도 미국 국방부의 해외주둔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재편되고 있는데, 미군은 미군 전용 훈련장을 반환하는 대신, 한국군 훈련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포트루이스 기지의 스트라이커 부대가 방문해 훈련을 했다. 필리핀 사례는 주둔군뿐만이 아니라 방문군에 대해서도 지위 협정에 관한 감시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1942년 맥아더 장군은 일본군에 밀려 필리핀을 철수할 때 ‘다시 돌아오겠다(I shall return)’고 다짐했다. 맥아더는 2년 뒤 필리핀에 재진주함으로써 다짐을 지켰다. ‘미군은 언제나 돌아온다’는 이 유구한 전통은 필리핀 방문군협정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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