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향해 달리는 ‘검은 한국인’
  • 김홍식 (조이뉴스24 미국특파원) ()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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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FL 슈퍼스타 하인스 워드의 ‘도전, 성공 그리고 사모곡’
 
흑인은 흑인인데, 여느 흑인 친구들에 비해 얼굴색이 유난히 하얀 아이가 있었다.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어머니를 피해 숨기 바빴다. 어머니는 여기 저기 아들을 찾아 다녔고, 아들은 항상 친구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영문을 모르는 어머니는 그래도 아들을 만날 수 있음에 늘 행복했다.
미국 프로풋볼(NFL)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한국계 와이드리시버 하인스 워드(29)는 어린 시절 자신의 핏줄과 피부색을 감추고 싶었다. 방과 후 어머니가 자기를 데리러 올 때 얼른 숨은 것도 다른 친구들이 자기 어머니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알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워드는 자기 어머니와 몸 속에 흐르는 한국인 핏줄을 오히려 자랑과 긍지로 여긴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 <스포츠 위클리> 등 미국 전역에 깔리는 전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워드는 어머니 자랑과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빼놓지 않는다. 근육이 울퉁불퉁한 그의 오른 팔에는 자신의 이름 ‘하인스 워드’가 서툰 한글 문신으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그는 이 문신에 대해 “내가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새긴 것이며,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살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1998년 데뷔, NFL 최정상급의 와이드리시버로 자리를 굳힌 워드는 올 시즌 큰 의미가 담긴 기록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워드는 시즌 여덟 경기를 소화한 11월13일 현재 생애 통산 5백35개의 패스 리시빙을 기록해 존 스톨워스가 세운 팀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었다. 11월7일 그린베이 패커스전 전까지 1백11경기 연속 최소한 한 개의 패스 리시빙을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그가 세운 4년 연속 프로보울 출전 역시 팀 최장 기록이다. 올 시즌 햄스트링 부상으로 한 경기에 빠지고도 여전히 패스 리시빙 30회로 팀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터치다운도 5개를 기록해 6개인 히스 밀러에 이어 팀내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계약금을 포함해 4년에 2천5백80만 달러 규모의 연봉 계약을 해 NFL 최정상에 올라 있는 자신의 입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워드는 1976년 3월 서울에서 미국인 병사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 사이에 태어나 한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고, 워드는 법원 판결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머니 김영희씨가 영어도 못하는 데다 경제력까지 없어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워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기어코 자기 발로 어머니를 찾아간 이후 줄곧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어머니 김영희씨, 지금도 식당에서 일해

어머니 김영희씨는 공항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식료품 가게 종업원으로 일했다. 이른 아침부터 자정을 넘긴 새벽까지 하루 두세 가지 일을 하며 아들을 키웠다. 워드는 운동과 공부에서 모두 뛰어난 재질을 보이는 모범생으로 성장하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학 풋볼 명문인 네브라스카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하지만 워드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조지아 대학을 선택해 야구와 풋볼 두 종목에서 학교 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워드는 조지아 대학 시절 풋볼에서 쿼터백·러닝백·와이드리시버로 세 포지션을 섭렵하며 패스·러싱·리시빙에서 모두 1000 야드를 넘어서는 대기록을 세워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1998년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피츠버그에 지명되자 미국 언론은 워드를 집중 조명했다. 이미 그의 어머니와 워드의 애틋한 사연이 알려져 있던 덕분이었다. 워드는 NFL 선수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가 태어난 후 어머니가 옷을 사 입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게 예쁜 옷을 사드리고 어머니가 하고 싶다는 것은 다 해주고 싶다”라고 말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
현재 워드는 연고지 피츠버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다. 그가 재계약하며 받은 계약금 1천2백만 달러는 구단 역사상 최고액이고, 그의 등 번호 86번이 찍힌 스틸러스 유니폼 상의는 최고의 인기 상품이다. 또 지난 11월14일에는 펜실베이니아 주 워싱턴의 1일 명예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어렵게 아들을 슈퍼스타로 길러낸 김영희씨는 아들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워드는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에 가면 누구나 어머니가 가장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한다. 어머니의 그 같은 생활 자세가 내가 성공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NFL 데뷔 이후 최대 위기 맞아

워드는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와이드리시버답지 않은 희생 정신으로 팀의 기둥이 되었다. 자기에게 패스가 오지 않을 경우에는 몸을 사리지 않는 블로킹과 태클로 상대 수비를 차단하며 다른 선수에게 공격할 기회를 준다. 특히 상대 수비의 맥을 짚고 공격의 활로를 찾아주는 블로킹 능력은 NFL 와이드리시버 가운데 최고로 손꼽힌다. 
랜디 모스(오클랜드 레이더스), 터렐 오웬스(필라델피아 이글스) 등 NFL 정상급 와이드리시버들이 이기적인 성품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스는 미네소타 바이킹스 소속이던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외설스런 동작에 자기에게 패스가 오지 않는다고 경기 도중 그라운드를 떠난 적이 있다. 오웬스는 같은 팀 쿼터백 도노번 맥냅을 다른 쿼터백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자체 징계를 받는 등 말썽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단 한 번의 패스 리시빙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워드는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있다면 패스는 당연히 그 쪽으로 가야 한다”라며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워드가 데뷔 이후 가장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지난 10월17일 잭슨빌 재구아스와의 경기에 결장했다. 데뷔 이후 계속해온 1백16경기 연속 출장 기록에 마침표를 찍었다. 개인 기록도 예년에 비해 부진하다.
팀이 정확히 시즌의 절반인 여덟 경기를 마친 현재 워드는 30회 리시빙, 424야드 전진, 터치다운 5개를 기록 중이다.  이대로라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돌파한 리시빙 1천야드 이상 기록도 올해로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2001년부터 4년 연속 계속된 시즌 프로보울 출전 기록도 올해로 끝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주전 쿼터백 벤 로슬리스버거의 부상은 워드에게 더욱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일 그린베이 패커스와의 경기에서 피츠버그는 무릎 부상 중인 로슬리스버거 대신 후보 쿼터백 찰리 배치를 선발로 기용했다. 패싱에 자신이 없는 배치는 패싱보다는 러싱게임 위주로 경기를 펼쳐 와이드리시버들의 활용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 날 경기에서 피츠버그는 20-10으로 승리하기는 했다. 하지만 배치는 4쿼터 동안 패스 공격 고작 16회 시도했고, 그 중 9회만을 성공시켰다. 패스로 전진한 거리도 65야드뿐이다. 주전 쿼터백 로슬리스버거는 오른쪽 무릎 관절경 수술을 받아 몇 경기에 결장할 가능성이 높다. 워드로서는 2001년 화려하게 자신의 기량을 꽃피운 이후 최대의 위기다. 
하지만 그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과연 워드가 한국인 특유의 은근과 끈기로 고비를 넘길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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