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게 사는 데는 팍팍 썼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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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 상품으로 본 ‘2005 6대 소비 트렌드’/‘왕대박’ 제품 없는 1인10색 시대

 

‘당신은 올해 최고의 히트 상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받은 당신의 머리 속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몇 가지 상품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내 ‘이걸 올해의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일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연구위원은 연말이면 소비자 조사를 통해 그 해의 히트 상품을 발표한다. 그 해의 10대 히트 상품을 뽑고 한 해 소비 트렌드를 정리하는 것이 최연구위원의 연말 과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요즘 최연구위원은 고민에 빠졌다. 조사를 해보아야 알겠지만, 올해는 유난히 히트 상품으로 꼽을 만한 것이 선뜻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최순화 연구위원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메가 히트 상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이 올해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10인10색의 시대가 아니라 1인10색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사저널>이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이마트와 롯데마트, GS홈쇼핑과 CJ홈쇼핑,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 편의점 훼미리마트 등 주요 유통 업체들의 올해 베스트 셀러를 조사한 결과, 공통으로 많이 팔린 특정 제품을 찾기가 어려웠다. 유통 채널 별로 공통으로 많이 팔린 제품이 몇 가지 있을 뿐이다. 백화점에서는 새싹 채소를 비롯한 친환경 농축산물과 모터백, 할인마트에서는 녹차와 생수 그리고 PDP나 LCD 평판 TV가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많이 팔렸다. 홈쇼핑에서는 스팀청소기와 건강보조식품,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아웃도어 용품과 남성 화장품, 편의점에서는 전통적인 베스트 셀러 상품인 소주와 우유가 가장 많이 팔렸다.    

올해 모든 유통업체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팔린 메가 히트 상품은 없지만, 어느 유통 채널에서건 잘 팔린 상품들은 공통된 트렌드를 가지고 있다. 웰빙이나 메트로 섹슈얼, 감성 소비와 같은 최신 트렌드에 부합한 제품들이 경쟁 상품에 비해 잘 팔렸다. 제품은 달라도 각각의 제품을 고른 소비자들의 욕구가 만들어내는 트렌드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올해 최고의 화두, 웰빙

 
올해 잘 팔린 제품들에서 단박에 찾아낼 수 있는 공통적인 소비 트렌드는 역시 웰빙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한국 시장의 최대 화두도 웰빙이었다. 새싹 채소와 유기농 돼지고기, 클로렐라·글루코사민·홍삼 같은 건강보조식품은 온·오프 라인 매장 모두에서 베스트 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 상품들은 소비 침체 속에서도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두 배 이상 판매량이 늘었다. 특히 ‘납 김치’ ‘기생충 김치’ 등 먹거리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유기농과 친환경 농축산물이 어느 해보다 빛을 보았다.

또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 매출은 평균 5~10% 가량 떨어진 데 비해 생수와 녹차 같은 건강 음료의 매출은 10% 이상 늘었다. 특히 녹차 음료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40% 이상 늘었다. 브랜드38연구소 박문기 소장은 “전체 음료 시장의 매출이 5% 이상 떨어졌는데도 녹차 음료가 40% 이상 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었고,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트렌드가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분석했다.  

‘바른 먹거리’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식품업체 풀무원의 성적표에서도 웰빙 트렌드의 큰 힘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풀무원은 올 3/4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배 이상 증가했다. 풀무원 홍보실 설호정 상무는 “어느 해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두부 시장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해 판촉비용을 꽤 지출했는데도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트렌드가 확대되면서 매출이 늘고 순익도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꼭 써야 할 곳엔 팍팍 쓰는 작은 사치

 
올해 선전했던 상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공통 트렌드는 ‘작은 사치’다. 지난해의 화두는 ‘소비 양극화’였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사는 물건이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 나타난 소비 트렌드에서는 소득 규모에 따른 소비 패턴의 차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LG경제연구원 김재문 연구위원은 “요즘은 부자라고 해서 백화점에서 명품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시장의 싸구려 물건만 고르지 않는다.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사람도 자기가 꼭 원하는 특정 제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작은 사치’를 하는 경향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헤어핀이나 가방 같은 잡화류 매출이 다른 제품에 비해 월등하게 높고, 고가의 아웃도어 용품이 잘 팔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에서 올해 가장 두드러지게 팔린 상품 가운데 하나는 ‘모터백’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들고 다녀 유명해진 모터백은 주로 명품 브랜드들이 출시했다. 그런데도 모터백은 다른 가방에 비해 평균 20% 이상 많이 팔렸다.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신혼 부부조차도 대형 평판 텔레비전을 사는 것도 ‘작은 사치’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전자전문점 하이마트에서 올해 가장 큰 폭으로 매출이 늘어난 제품군은 PDP·LCD 평판 TV다.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PDP TV는 3배, LCD TV는 10배 이상 늘었다. 이들의 가격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에 비해 3~4배 비싸다. 하이마트 양동철 대리는 “평판 TV는 지난해에 비해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브라운관 TV에 비하면 여전히 비싸다. 그런데도 혼수를 마련하러 오는 사람들 대다수가 브라운관 텔레비전보다는 평판을 고른다. 다른 것은 몰라도 텔레비전만큼은 좋은 걸로 사겠다는 심리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치장하는 남자, 메트로 섹슈얼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남자들의 지갑이 활짝 열린 해이기도 하다. 남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한 트렌드는 메트로 섹슈얼. 패션과 외모에 관심이 많은 메트로 섹슈얼족이 늘면서 남성을 겨냥한 패션 제품과 남성용 화장품이 히트를 쳤다.

올해 패션업계의 최고 히트작 가운데 하나가 남성 벨벳 재킷이다. 현대백화점 홍보실 이원룡씨는 “벨벳 소재의 옷은 화려하고 튀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주로 여성이 찾았는데, 올해는 메트로 섹슈얼 영향을 받아 벨벳 재킷을 구입하는 남성이 크게 늘어 다른 남성 의류보다 두 배 이상 많이 팔렸다”라고 말했다.

메트로 섹슈얼의 영향으로 화장품 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옥션에서는 남성 화장품 판매량이 여성 화장품 판매량을 앞질렀고, 전체 화장품 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추세에서도 남성 화장품 시장은 10% 이상 성장했다. 태평양 홍보실 이상욱 부장은 “남성의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메트로 섹슈얼족이 늘어나면서 남성 화장품 시장이 화장품업계의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화장품을 사는 남성이 늘면서 제품 라인도 다양해졌다. 스킨·로션에 한정되었던 남성용 화장품은 에센스나 마스크, 눈가 전용 제품 등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부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퓨전 시대

‘적립식 펀드’를 올해 최고의 히트 금융 상품으로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디지털 제품은 본래의 기능에 ‘+알파’를 더해 가고 있다. 휴대전화 기능에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더한 제품, 전자 사전에 MP3플레이어 기능을 더한 제품이 아니면 시장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적립식 펀드나 디지털 융합 제품의 공통된 특징은 공부하지 않고서는 소비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데 있다. 자칫 마이너스 수익률을 낼 수도 있는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면서 주가나 경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주로 주가나 경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은행 예금보다는 적립식 펀드를 선택한다. 디지털 융합 제품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를 전화기 용도로만 사용하는 사람은 제품을 자주 갈아치우지 않는다. 그러나 휴대전화를 게임기·MP3플레이어·디지털 카메라 용도로 쓰는 사람일수록 새 제품이 나오면 기꺼이 구매에 나서고, 새 기능을 익히고 응용하는 데 앞장선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홍성민 책임연구원은 “과거에는 사용하기 복잡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 소비자들은 공부하고 연구해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응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관여한다. 올해 적립식 펀드나 기능이 복잡한 디지털 기기들이 히트한 데는 퓨전 시대에 걸맞게 공부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트렌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감성 소비-디자인이 최고야

 
올해 히트 상품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감성 소비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품의 성능이나 기능이 엇비슷해졌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나 디자인이 차별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표준협회컨설팅과 연세대학교가 지난 가을 발표한 ‘2005 소비자 웰빙 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은 소비자들은(30%) 생활용품 선택에서, 주관적인 만족감을 나타내는 충족성을 최우선 고려 사항으로 꼽았다. 건강성(25.5%)과 안전성(17.4%)보다 주관적인 만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감성적 소비가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성적 소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디자인이다. 올해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히트한 슬림 카메라나 가전 시장의 히트 상품들은 모두 화려한 컬러를 도입한 고급스런 디자인 제품들이다. 손가락 두께만큼 얇아진 슬림형 디지털 카메라, 보기에도 탐스러운 빨간 색깔의 전자 사전이 대표적인 경우다. LG경제연구원 김상일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성공한 제품들은 브랜드 이미지, 디자인 등 감성적으로도 빼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기청정기나 비데 같은 웰빙 가전에서도 기능 측면 못지 않게 세련된 미관이 구매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예가 많다”라고 말했다.

주5일제로 인한 여가

 
올해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 또 하나의 트렌드는 주5일제로 인한 여가 생활에 대한 관심이다. 가장 신바람이 났던 곳은 아웃도어 용품 시장가 네비게이션 시장이다. 현대백화점·GS홈쇼핑·CJ홈쇼핑 등의 올해 베스트 셀러 상위권은 등산용품이나 골프 의류 같은 스포츠 의류와 네비게이션이 차지했다. GS홈쇼핑 관계자는 “주5일제가 본격화하면서 주말 여가 활동 시간이 늘었고, 네비게이션처럼 주말 여가에 필요한 용품들은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40% 이상 늘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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