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먹는 즐거움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5.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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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건대 미각은 오직 쓰고 달고 시고 짠맛을 구분할 뿐, 음식의 수많은 맛은 혀의 표면이 아니라
비강의 윗부분에서 판별한다고 한다. 지혜롭도다, 향을 먹는 사람들이여.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1990년대 초 서울 을지로 1가에 있는 어느 아케이드 입구에 들어서면 단 한 가지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카레 냄새였다. 정확하게는 커리(curry), 더 정확하게는 인도 향신료 냄새였다.

아케이드에는 인도 음식점이 있었다. 인도 음식점은 물론 하나뿐이었고, 아케이드에 나란히 있는 한식·일식·이탈리아식 음식점에 비하면 규모도 자그마했다. 그런데도 그 음식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는 다른 음식점 모두에서 나는 냄새를 제압했을 뿐 아니라 아케이드 전체를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점심시간에 그곳을 지나노라면 두 번에 한 번은 그 음식점으로 가게 되었다. 갈 수밖에 없었다. 말에 탄 김유신이라도 된 양 눈을 감고 가도 그곳이었다. 냄새는 목을 칠 수도 없었다.  

내가 처음 카레의 존재에 관해 알게 된 것은 ‘3분 카레’라는 레토르트 식품 때문이었다. 3분 카레 봉지에는 끓는 물에 넣고 데워 밥 위에 얹어 먹으라는 안내문이 인쇄되어 있는데, 내용물은 감자·양파·당근·돼지고기로 만드는 일본식 카레다. 카레와 밥이 결합하면 곧 카레라이스다. 그런데 카레라이스는 인도에 없다. 카레도 없다. ‘커리’를 ‘카레’로 발음을 바꾸고 자기네 좋아하는 덮밥으로 만든 사람들은 일본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므라이스(정식 명칭은 Omelet with rice)가 나왔고, 하이라이스(Hashed beef with rice)도 출현했다.

향신료의 나라이자 성지이며 본산인 인도

대학 1학년 때 경양식집에서 미팅할 때 손쉽게 선택하게 되는 것이 카레라이스·오므라이스였다. 아무리 ‘경’, 가벼운 양식이라고는 해도 정식이나 스테이크를 먹자면 수프를 먹을 때 훌쩍거리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고, 나이프며 포크를 어느 손에 드는지 알아야 하지만(별 상관없다는 걸 훨씬 뒤에 알았다), 라이스 돌림의 음식은 그런 부담이 없었다. 경양식이 제대로 된 양식이 아니었듯, 경양식집에서 먹은 카레라이스 역시 제대로 된 커리도, 라이스도 아니었다. 그것으로는 오묘하고 신비한 커리의 세계를 알 수가 없었다.

1994년 홍콩에 갔을 때 나는 다시 인도의 강렬한 향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는 돈이 없어(뭐 지금은 많은가?) 아주 낡고 허름한 건물 중간층에 있는 드래곤인이라는 싸구려 여관에 묵었다. 창문을 열면 맞은편 고층건물의 지저분한 뒷벽이 손이 닿을 듯 가까웠는데 그 건물 어딘가에 인도 음식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동네는 홍콩에 일자리를 찾으러 온 인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진짜배기 인도 음식 냄새는 근처의 건물뿐 아니라 일대의 뒷골목 공기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후텁지근한 바람에 머리를 다 아프게 하는 커리 냄새가 들어왔고, 닫으면 미치도록 더웠으며, 에어컨을 틀면 덜덜거리는 소리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었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에어컨을 틀었다 껐다 하다가 결국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냄새 때문에 잠을 못 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냄새를 가지고 각성제로 개발해볼까 싶을 정도였다. 

2년 전쯤 드디어 나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갔다온 인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인도 항공사 비행기로 갈아타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나는 을지로 아케이드와 홍콩 뒷골목의 냄새를 합치고 둘로 나눈 것 같은 냄새를 맡게 되었다. 인도의 전통 음식으로 만든 기내식에서 나는 냄새였다. 아니 그 기내식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여승무원의 몸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나는 그 기내식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뜻밖에도 입에 맞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본격적으로 인도의 향이, 아니 인도 그 자체가 덮쳐왔다.

마살라와 차파티나 난과 비리아니, 그리고 케밥

인도는 향신료의 나라이자 성지이며 본산이다. 인도의 향신료는 톡 쏘는 맛이 나는 자극적인 식물, 고유의 향을 지닌 식물에서 얻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향신료는 터메릭·클로브· 커민·카르다몸·샤프란이다. 그 외에도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부른 <스카보로 페어>의 가사처럼 파슬리·세이지·로즈마리·다임이 모두 향신료이고 후추·월계수 잎·박하·계피도 마찬가지다. 이 향신료를 총칭하는 게 마살라인데, 힌디어로는 양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외국인에게 ‘코를 찌르는 인도 식당 냄새’의 근원이 바로 이 마살라이다.

인도의 커리는 수십 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양고기·닭고기·생선을 기본 재료로 해서 양파·토마토·요구르트 등과 마살라를 넣고 걸쭉하게 끓여 만든다. 이것을 주식인 차파티나 난에 적셔 먹거나 찍어 먹는다. 또 비리아니(쌀에 닭고기나 양고기, 각종 향신료를 넣어 쪄서 만든 밥)에 비벼 먹기도 한다. 이때는 오른손으로 조물조물 비비고 손가락을 스푼 모양으로 만들어 비빈 밥을 입으로 운반한다.

인도에 닷새 가량 머무르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진짜 인도 음식을 먹을 일이 없었다. 대체로 음식은 호텔에서 먹거나 한식을 먹었다. 호텔 식당의 인도 음식은 서양인 입에 맞도록 어지간히 개량되어 있어서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캐한 흙냄새와 먼지가 떠도는 시장 바닥에서 인도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 오른손으로 비비고 오른손가락으로 날라다 먹을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함께 간 남정네 서너 명 사이에서는 인도 음식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남들이야 뭐라고 생각하건 인도에 와서 제대로 된 인도 음식을 못 먹고 갈지도 모른다는 내 불안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게 투정과 타령이 되어 인도 현지에 사는 지인의 귀를 웬만큼 괴롭혔던지, 출국을 하루 앞둔 날 우리는 호텔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도착한 곳 역시 호텔이었다. 그곳은 북부지방의 요리를 잘하는 유명한 식당이라고 했다.

인도의 전통 화덕 탄두르에 불이 활활 피어오르고 있었다. 먼저 양고기 케밥을 먹었다. 꼬치에 양고기를 꿰어 화덕 깊은 곳에 넣어 구운 케밥에서는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강한 불, 풍부한 향, 짙은 눈썹을 한 주방 젊은이의 팔뚝에서도 강렬한 느낌은 뿜어져 나왔다. 바로 이것이 인도다! 여기가 인도다! 콜럼버스처럼 나는 외쳤다. 정신없이 먹고 마시고 취해서 세세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맛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로부터 그 맛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후 한동안은 그 맛을 찾아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근래에 광화문에 있는 인도 전문 음식점에서 탄두리 치킨(탄두르에서 요리한 닭)을 먹으면서 나는 그 맛의 일부를 다시 찾아냈다. 짙은 향을 맡으며 허리에서 가슴 사이가 조여드는 것 같은, 조마조마한 느낌으로 치킨을 먹고 커리에 난을 찍어 먹었다. 그건 진짜였다. 옆에서 진짜를 먹는 사람들이 진짜로서 진짜처럼 진짜로 보였다.

듣건대 미각은 오직 쓰고 달고 시고 짠맛을 구분할 뿐, 음식의 수많은 맛은 혀의 표면이 아니라 비강의 윗부분에서 판별한다고 한다. 지혜롭도다, 향을 먹는 사람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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