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라더가 판치는 사회
  •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 ()
  • 승인 2005.1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보통신] 국민 프라이버시 침해상 수상자 쌔고 넘쳐

 
해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하루 전 ‘골든 래즈배리 시상식(Golden Raspberry Award)’이라는 또 다른 영화 행사가 어김없이 열린다. 최고의 영화를 뽑는 아카데미상과 반대로 골든 래즈배리 상은 그 해에 만들어진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불명예스러운 상이다. 국내에서도 한국판 골든 래즈배리 상이라 할 수 있는 ‘레디-스톱 상’(영화 촬영 시작을 알리는 ‘레디-고’의 패러디)이 2001~2003년까지 진행되어 최악의 한국 영화를 선정해 왔다. 또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정부의 예산 낭비 사례를 발굴해 시상하는 ‘밑 빠진 독 상’을 5년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최근 국내에 또 하나의 불명예스러운 상을 수여하는 시상식이 열렸다. 국민의 프라이버시에 가장 위협적인 사업과 기관 등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2005 빅브라더 상’이 그것이다.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인물로, 정보 독점과 통제를 통해 시민들을 지배하는 거대한 감시 권력이다. 정보화 진전과 함께 개인 정보 유출과 남용을 비롯하여 휴대전화나 RFID를 이용한 위치 추적 기술의 발전 그리고 지문·홍채와 같은 생체 정보 수집이 증가하는 등 현대 사회는 소설 속 빅브라더와 다름없는 전자 감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빅브라더 상은 이러한 전자 감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프라이버시 침해를 경계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이다.

빅브라더 상은 1998년 영국의 시민단체인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이 주관해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 전세계 20여 나라로 확산되어 매년 열려 왔는데, 국내에서는 올해 처음 마련되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진보네트워크·문화연대 등 7개 시민단체 공동주관으로 치러진 ‘2005 빅브라더 상’은 지난 10월 12일부터 인터넷 홈페이지(www.bigbrother.or.kr)를 통해 네티즌들에 의한 후보 공모를 시작으로 하여, 총 27개의 추천 후보에 대한 전문가 심사를 거쳐 시상식에 이르기까지 한 달여 동안 진행되었다.

영국에서 시작해 20개국으로 확산

11월22일 열린 시상식에서는 ‘가장 끔찍한 프로젝트 상’에 주민등록제도, ‘가장 가증스러운 정부 상’에 정보통신부, ‘가장 탐욕스러운 기업 상’에는 삼성SDI가 수상자로 발표되었다. 주민등록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평생 동안 변하지 않는 고유한 식별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로서, 특히 정보화 이후 개인 정보 유출 및 도용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이라는 점을 들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정보통신부의 경우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함으로써 익명의 개인이 갖는 권리를 말살하려 했다는 점과, 연구용 생체 정보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위해 법적 근거도 없이 3천6백명의 지문 정보와 2천여 명의 화상 정보를 수집하여 개인 정보에 대한 당사자들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점이 겹쳐 불명예스러운 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삼성SDI는 노조 탄압을 목적으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자행했다는 의혹이 수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밖에 X파일의 진원지인 국가정보원이 특별상인 ‘내 귀에 도청장치 상’을 받았으며,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네티즌 인기상’은 검찰과 경찰의 신원 확인 유전자 데이터 베이스 구축 사업에 돌아갔다.

탈락한 나머지 후보들도 면면을 살펴보면 어느 하나 수상자로서 손색이 없는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들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프라이버시 침해가 만연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폭넓게 확산되어 언젠가는 빅브라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없음”이라는 반가운 발표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