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죽을 날을 정해놓고 있었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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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 ‘친구와의 마지막 여로’ 지상 중계

 
국민의정부 시절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을 지낸 이수일 호남대 총장이 세 차례에 걸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도청사건 수사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뒤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유족도 지인들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가운데 사실상 자살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자살하리라고 눈치 채지 못했고 유서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를 두고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검찰의 강압 수사’ 의혹과 ‘2002년 대선 전 한나라당 도청 문건 제공설’이 그럴듯하게 유포되었다. 그러나 검찰은 두 주장 모두 사실과 다른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도청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수일 전 차장은 도청사건 수사에서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고, 한나라당에 도청 문건을 전달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미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역시 도청 문건의 출처가 이수일 전 차장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강압적인 검찰 수사가 그를 죽음으로 몰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자 대검찰청은 신속히 진상조사단을 꾸려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유족과 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가 자살한 원인은 ‘검찰의 전방위 압박식 도청 수사와 이 과정에서 상사를 지키지 못한 데 따른 죄책감’이라는 추정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건 전 원장측의 한 변호사는 “신씨가 구속되기 직전 이수일씨가 전화를 걸어와 울먹이며 ‘죄송하다’ ‘죽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수일씨의 미망인도 남편이 사망하기 1주일 전 부부가 함께한 등반길에서 ‘모시던 상사가 구속까지 되어 가슴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이씨는 11월11일 검찰에 소환되어 나갔다가 자신의 전임자였던 김은성 전 2차장을 만나 “왜 내가 2차장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배반자가 되는 것 같아 차라리 죽고 싶다”라고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면 이씨가 압박해 들어오는 검찰의 수사에 부담을 느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으리라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는다.

 고 이수일씨의 주변을 수소문한 결과 그와 가까이 지낸 인사들은 유서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세상을 등진 원인을 평소 그의 성품에서 찾고 있었다. 특히 이씨와 50년지기인 안 아무개씨(58)는 이씨가 자살하기 전날 마지막 여행을 떠났던 사람이다. 이씨가 자살하기 전날인 11월19일 두 사람은 하루 종일 함께 보냈다. 그 다음날 창졸지간에 오랜 친구를 잃은 안씨는 “그 친구가 달력에 표시해둔 ‘20일 서울 이사’가 자살을 결행하기로 며칠 전부터 잡아둔 날이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죽기 직전까지 아들 걱정

안씨가 이수일 전 차장으로부터 ‘친구, 별일 없으면 내일 바람이나 쐬러 가세’라는 전화를 받은 때는 자살하기 이틀 전인 11월18일 저녁 무렵. 평소 주말이면 두 사람이 자주 만나 등산을 즐겼던 터라 안씨는 곧바로 “그러세”라고 대답한 뒤 약속 시간을 잡았다. 안씨는 다음날 아침 자기 차를 몰고 집을 나서 9시30분께 이씨가 총장 관사로 쓰고 있던 쌍촌동의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에 오른 이씨가 “오늘은 바다가 보고 싶으니 바닷가로 가보세”라고 제안해 두 사람은 영광 가마미 해수욕장을 행선지로 잡았다.
 이들을 태운 차는 이씨가 총장으로 있는 호남대 앞을 지나 함평 불갑산과 영광 불갑저수지를 거쳐 가마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바닷가에서 바람을 쐰 두 사람은 이씨가 평소에 즐겨 먹던 닭죽집으로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친구는 영광 원자력발전소에 들르자 전남지방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있을 때 직원들과 이곳으로 야유회를 왔다며 즐거워했다. 염산면에 이르러서는 6·25 때 이곳이 양민 학살이 가장 많았던 가슴 아픈 장소라고 소개하면서 차에서 내려 추모의 시간을 갖자고 했다.”
 이수일 전 차장의 제안에 따라 추모를 마친 안씨는 다시 차에 올랐다. 이때까지도 안씨는 친구 이씨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가끔씩 요즘 심사가 뒤숭숭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검찰의 도청 사건 수사가 시작된 이래 두 사람이 만나면 늘 들어왔던 얘기여서 안씨는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차 안에서 48년 전 함께 다녔던 서울 중동고등학교 학창 시절 추억담이며 식구들의 근황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씨는 이때 “막내 아들이 장가를 가야 하는데 늦어져서 걱정이다. 우리 자랄 때는 부모님 의견에 무조건 순종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개성이 강하다”라며 여늬 가정에서나 있을 법한 부모자식 간의 세대 차이, 아들에 대한 부성애 등을 피력했다.

 그 날 오후 5시께 광주시 경계에 이른 두 사람은 호남대 앞을 지나 관사가 있는 쌍촌동으로 향했다. 이씨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호남대학 교정을 유심해 살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안씨는 그 이유를 눈치채지 못했다. 5시30분께 친구의 아파트 앞에 다다른 안씨는 차에서 내려 현관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이씨는 사양하면서 대신 슈퍼마켓 앞에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이렇게 친구와 헤어진 안씨는 이틀 뒤 이씨가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듣고 망연자실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두 사람이 마지막 헤어지던 슈퍼마켓에서 이수일 전 차장은 자기 목을 맬 8m짜리 빨랫줄을 산 사실이 드러났다. 또 이씨가 집에 있던 달력 11월20일자에 ‘서울 이사’라고 써두었다는 점도 발견되었다. 이 날은 이씨가 자살한 날이다. 서울로 이사한다는 말은 이씨의 유족에게도 금시초문일 만큼 실제 계획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안씨는 지금도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서울 이사’라는 표시가 자살을 결심한 날이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씨는 죽기 전 총장실과 관사는 물론 관용 차량 내부 소지품까지 깨끗하게 정돈해 두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안씨는 “50년을 사귄 친구여서 얼굴 표정만 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사이였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평소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친구의 고고한 성품으로 보아 아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살을 결심하고 찬찬히 주변을 정리해 나랑 마지막 여행을 하면서도 오히려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라며 울먹였다.

 이수일 전 차장의 자살은 본인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되고 있다. 민주당측은 “DJ 정부를 도덕적으로 흠집 내려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검찰이 이 전 차장에게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이 자살 원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라고 밝히고 지도부가 대거 이씨의 빈소를 찾았다. 열린우리당은 이 사건이 호남 민심 이반을 불러올까 전전긍긍하며 ‘안타까운 일’이라는 반응만 내놓았다.
 그러나 광주 주민들은 아직 이 사건을 그다지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분위기이다. 이씨가 자살한 이후 1주일 째 그의 사망 원인과 지역 민심을 좇아온 전남일보 박성원 기자는 “서울의 정치권이 이씨의 죽음을 놓고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광주 민심은 이수일씨의 갑작스런 죽음에 안타까워하긴 하지만 당장은 그가 현정권과 DJ 정권 사이의 희생양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기자도 DJ가 직접 나서서 신 건·임동원 전 원장 구속과 이씨의 자살을 연결해 박해라는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내년 지방 선거까지는 호남 민심에 언제든지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칠 뇌관으로 작용할 것 같다고 물밑 정서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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