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처럼 되고파 그처럼 입고파
  • 김정희 (삼성패션연구소 선임연구원) ()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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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아이콘으로 ‘우뚝’ ‘비 워너비’ 양산할 잠재력 커

 
‘비(Rain)‘는 패션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가슴을 풀어헤치고 조각 같은 근육을 보여주며 ’나쁜 남자‘로 데뷔하여 보잉 선글라스와 빈티지 룩으로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더니, 얼마 전 검은 바이크 장갑을 끼고 상반신을 거의 다 드러내면서 ’비‘가 온다고 부르짖으며 거친 호흡을 몰아쉬던 그 남자 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제 대중과 만난 지 3년하고도 6개월 남짓인 이 엔터테이너는 춤과 노래의 영역에서 드라마로,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권의 빅 스타로 그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패션 아이콘으로서 그의 위치는 어떠한가? 보편적인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비’처럼 입고 싶다는 열망이 번져가고 있는가? 그 열망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스프롤스는 패션을 일컬어 '사회 구성원들이 선택한 행동이 시기와 상황에 적절하다고 인지되어 집단의 상당한 구성원이 일시적으로 수용한 행동 양식'이라고 했다. 이런 패션의 영역에서 대중에게 교본이 되고 우상이 되는 존재가 바로 패션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말해서 세계 패션사는 패션 아이콘들의 역사였다. 1930년대 말 미국에서는 클라크 게이블이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 드레스 셔츠 속에 내의를 입지 않은 장면 때문에 속옷 업체가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는 믿지 못할 일화가 생겨나기도 했고, 심슨 부인과의 로맨스로 왕위까지 포기한 영국의 윈저공은 윈저 노트(Windsor Knot)라는 넥타이 매듭과 윈저 칼라(Windsor Collar)라는 셔츠 깃 모양에 자기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도 했다.

최근에도 세계적으로 패션 아이콘의 스타일 따라 하기가 각종 PPL 성행과 함께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의 이름을 빌리거나 더 나아가 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브랜드를 런칭하는 적극적인 비즈니스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패션 아이콘에 대한 소비자들의 모방 심리는 ‘∼가 되고 싶다’는 뜻의 ‘워너비(wannabe)’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1980년대 중반 마돈나의 패션을 따라 하는 팬들이 ‘마돈나 워너비’로 불리면서 생긴 이 워너비 현상이 최근 가장 부각된 사례는 실제 팬클럽보다도 스타일 따라잡기 카페 회원 수가 몇배 많다는 ‘이효리’를 들 수 있다.

패션 전문가로서 본 ‘비’의 스타일은 이제 곧 ‘비 워너비’를 양산할 잠재력을 가진 상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적절히 믹스 매치한 헐렁하고 자유로운 실루엣, 빈티지 스타일의 캐주얼이 멋지게 어울리는 스타임에는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고, 섹시한 가슴 선이 엿보이는 깊은 네크라인의 티셔츠 한 장만 입었을 때나, 보디라인을 따라 피트되는 검은색 수트를 입고 좁은 넥타이를 매었을 때도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약간의 노출과 함께 무대 위에서 다이내믹한 몸동작을 보이면서 땀방울을 흩뿌릴 때 여성 관객들은 순간적인 호흡곤란마저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잠재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패션 비즈니스 측면에서 그의 상품성이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대 위나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설정된 스타일 외에도 일상에서의 자연스럽지만 세련된 멋, 평범한 배경에서 비범하게 빛나는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면, ‘비’가 직접 골라 입었다는 목소리를 더 높이고 ‘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의 영역을 넓힌다면,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그의 가치는 지금의 몇 배로 커질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스타일이 최근 뜨고 있다는 강한 듯 부드럽고 세련미가 묻어나는 남성을 지칭하는 ‘위버섹슈얼(Ubersexual)'의 교본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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