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귀족의 염치없는 파업
  • 정진홍(중앙일보 논설위원) ()
  • 승인 200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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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난 주말 제주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세미나가 취소되었다. 이유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에 따른 항공기 결항사태 때문이었다. 이 세미나에는 전국의 신문사 논설위원들과 방송국 해설위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특히 지방사 회원들의 항공편 이동이 불가능하거나 시간적으로 맞지 않았고 주제발표를 하는 연사들의 돌아갈 항공편이 확정되지 못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세미나 참석 인원들이 투숙할 예정이었던 호텔은 더 황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오실 손님들을 고스란히 잃은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제발표를 위해 연사들이 고심해서 준비했을 발표 자료도 시의성 있는 발표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하지만 세미나 한 번 못하게 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주말과 연말 성수기를 맞아 항공편 결항으로 불편을 겪을 여행객들과 호텔 등의 손실만이 전부가 아니다. 연말을 맞아 국내로 들어올 유학생들과 그 가족들의 불편도 다가 아니다. 오히려 업무차 출장 다니는 사람들의 발목을 묶고 연말 성수기 항공화물의 적기 수송에 차질이 생긴 것이 더 큰 문제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더 먹기 위한 문제’로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가 타격받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 당시 항공사의 자체 매출 손실은 2천5백30억원이었고 관련 업계 피해액은 1천9백48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은 그 피해액 규모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주로 단거리 노선 위주인 아시아나항공과 달리 대한항공은 대형기와 장거리 노선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항공 자체 추산으로는 하루 손실액이 2백53억원 정도로 예상되고, 건교부에서는 연관 산업의 피해까지 합치면 하루 7백억원 이상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임금수준은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막대한 파급영향도 무시한 채 임금협상 결렬을 이유로 파업을 강행한 것일까? 현재 대한항공 조종사의 초임 연봉은 기장이 1억원에서 1백만원 모자라는 9천9백만원이고, 부기장은 7천5백만원이다. 그리고 평균 연봉은 기장이 1억2천만원, 부기장은 8천8백만원이다. 

   여기에 1달러당 1천35원의 환율을 적용해 대한항공 기장과 미국 주요 항공사 기장의 초임 연봉을 비교해 보면 델타항공 1억1천5백만원, 아메리칸항공 1억1천4백만원, 유에스에어웨이즈 1억1백만원, 대한항공 9천9백만원, 유나이티드항공 9천4백만원, 노스웨스트항공 9천3백만원 등이다. 대한항공 기장의 초임 연봉이 미국 항공사들과 비교해도 중간은 간다는 이야기다. 

대한항공 조종사 초봉은 9천9백만원

   게다가 7천5백만원을 초임 연봉으로 받는 대한항공 부기장은 이들 5개 항공사 부기장과 비교할 때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항공사들의 부기장 초임 연봉을 한화로 환산하면 델타항공은 7천3백만원, 아메리칸항공은 6천8백만원, 유에스에어웨이즈는 6천5백만원, 유나이티드항공과 노스웨스트항공은 각각 5천7백만원을 받는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은 국민정서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는 그래도 할 말이 없지 않겠지만 국민들 눈에는 배부른 노동귀족들의 염치없는 투정이요 행패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총파업은 2000년 노조 출범 이래 이번이 네 번째다. 더구나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가 합법화된 첫해인 올해 25일간이라는 세계 항공업계 사상 최장 기간 파업을 하다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파업을 끝낸 지 5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 여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에 뜨겁게 덴 경험이 있는 건교부는 이번엔 초장부터 긴급조정권 발동을 노동부에 요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노동부는 현재로서는 긴급조정권을 고려할 단계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래저래 귀족노동자들의 염치없는 파업으로 국민 불편은 물론 국민경제가 골병드는 것을 피할 수 없게 생겼다. 

   언젠가 택시를 타니 운전수 양반이 흥분하며 말을 이어갔던 기억이 있다. “연봉 3천만원 이상 되는 사람은 아예 파업이니 뭐니 하는 노동쟁의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이른바 귀족노조에 대한 울분에 찬 성토였다. 아마도 그 택시운전기사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소식을 듣고 또 한 번 이렇게 목청을 돋웠을 것이다. “젠장, 이 썩을 놈의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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