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권력
  • 이윤삼 편집국장 (yslee@sisapress.com)
  • 승인 200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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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의 편지

 
2002년 <시사저널> 기자들은 ‘올해의 인물’로 ‘행동하는 네티즌’을 뽑았다. 그해 겨울 누리꾼들은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의정부의 두 여중생을 추모하며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손가락 행동’에서 ‘발바닥 행동’으로 변신하며 누리꾼의 힘을 직접 보여준 것이었다. 인터넷 언론이 영향력을 발휘하며 전자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논의됐으며, 사이버 정당도 등장했다. 가히 누리꾼들이 현실 세계에 뛰어든 원년으로 꼽을 만했다.

올해도 그 활약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1월18~19일에는 논산훈련소 인분 사건, 교사의 검사 아들 답안 대리 작성 사건이 터져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뉴스의 출발이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또 사회 권력기관과 일정 부분 이해관계를 공유하면서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해오던 기존 언론의 보도 관행을 뚫고 세상에 널리 알린 점이다. 중계자의 역할이 사라지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직후 벌어진 ‘이상미 신드롬’에도 누리꾼은 깊이 개입했다. MBC 등 오프라인 매체가 지원 사격을 했지만 적어도 최초의 확산은 누리꾼이 주도한 것이었다. ‘생산물 개발과 생산에 적극적으로 간여하는 소비자’를 뜻하는 프로슈머(Prosumer)가 이 신드롬을 이끌었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왔다. 누리꾼은 끊임없이 기업이 생산한 상품의 질, 가격, 사후 서비스 여부 등을 꼼꼼히 살펴보며 상품 생산자를 긴장시켜왔다.

반면 누리꾼이 가진 힘의 ‘그늘’도 나타났다. 6월 중순 인터넷을 달군 ‘개똥녀’ 사건이 좋은 예. 인터넷에 공개된 사진을 누가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상당수 누리꾼은 제보자의 주장을 찬찬히 따져보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전광석화 같은 의사소통 구조가 정확성을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빨리 반응할 수 있는 도구를 앞에 두고, 심사숙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계자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바로 그 장점 때문에 부정확한 정보가 빛의 속도로 확산되었다.

황우석 교수 파동을 둘러싼 일부 누리꾼의 행동을 두고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PD수첩>의 취재 과정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의 역할은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소장 학자들이 재검증을 주장하고 나서자 “MBC를 굴복시켰으니 이제 서울대로 가볼까”라고 쓴 한 누리꾼의 심리 상태는 '네카시즘'(네티즌과 매카시즘의 합성어)을 떠올릴 만하다.

물론 반대 주장도 있다. 사이버 공간에는 황우석 사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도, 과잉 애국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오히려 오프라인 매체들이 일부 누리꾼의 목소리를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는 시각이다.

황우석 파동은 언론, 과학, 여성 문제를 포함해 우리 사회가 차분히 짚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겼지만, 누리꾼 권력이라는 또 다른 문제도 곱씹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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