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다시 붙자”…경찰 “덤벼”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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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 ‘2차 전쟁’ 발발…검찰, 개혁단에 검사 30명 배치하고 대공세
 
“기분이 씁쓸하다. 이런 것을 브리핑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지난 12월14일 대전지방검찰청 양재택 차장검사는 브리핑에 앞서 기자들에게 소회를 털어놓았다. 검사의 ‘피의자 면담’ 요청을 경찰이 거부한 데 대한 불편한 감정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충남경찰청 수사과는 지난 12월13일 상습사기혐의로 긴급 체포한 김 아무개씨에 대해 대전지검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대전지검은 피의자가 자진 출석한 점 등을 들어 꼭 구속해야 하는지 따져보겠다며 피의자를 면담하겠다고 경찰에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미 올 들어 열네 차례나 피의자 면담을 실시한 대전지검은 ‘경찰의 도발’로 판단하고 발끈했다. 결국 사태는 차장검사가 해당 경찰관을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히는 데까지 나아갔다.

경찰이 “문제가 있으면 시정하겠다. 검찰의 (해당 경찰관에 대한)조사에 응하겠다”라며 한 발짝 물러서는 바람에 더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은 최근 다시 가열되는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거의 혹한의 추위를 녹이는 수준에 다다랐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검·경 2차 전쟁은 지난 12월5일 열린우리당 ‘검·경 수사권 조정 정책기획단’(기획단·단장 조성래 의원)이 경찰을 수사 주체로 인정하고 검·경의 상호 협력을 명문화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표하자 불붙었다.

경찰이 기선을 제압한 분위기에서 진행 중인 검·경 2차 전쟁은 1차 전쟁 때와 공수가 바뀌었다. 1차 때는 경찰이 검찰에 대공세를 펼쳤다. 반면 검찰은 수세적으로 움직였다. 전면적으로 쟁점화하는 것을 피하면서 시간을 끄는 작전을 펼쳤다. 그것이 뚜렷한 안도 내놓지 않고 그저 경찰의 주장을 반대만 하는 것으로 비쳤다. 경찰이 국회와 여론에 호소하는 방식을 쓴 데 반해 검찰은 청와대만을 바라보았다.

검찰, 청와대 동원해 경찰 압박?

1차전은 경찰의 완승으로 끝났다. 검찰이 기대했던 청와대는 열린우리당의 기세에 두 손을 들었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열린우리당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던 경찰과 달리 검찰은 정보도 없고 전략 기획력도 구사하지 못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정치권의 생리와 움직임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 검찰 인사도 “너무 쉽게 생각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1차전을 거치며 정신이 번쩍 든 검찰은 2차전에서 뒤늦게 대공세를 펼치고 있다. 수사권 조정 논의와 관련해 만들었던 ‘수사정책기획단’을 지난 12월8일 ‘국가 수사 개혁단’(개혁단)으로 개편한 것이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다. 사안을 ‘국가 수사 구조 개혁’이라는 관점으로 끌어올렸고, 인원도 5배 이상 늘렸다. 문성우 청주지검장이 단장을 맡은 개혁단에는 30명 가까운 검사들이 배치되었다. 검찰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검찰은 개혁단의 구체적인 인적 구성과 조직 구조에 대해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개혁단에 참가한 한 검사는 “그동안 검찰이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과 국민들이 경찰의 주장에 그대로 동조하겠느냐는 생각에서 적극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수사 구조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우리 견해를 적극 알리겠다”라고 말했다.

개혁단은 현재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검찰 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달 안에 계획안을 완성해 천정배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할 계획이다. 주목되는 것은, 검찰이 국회 전략의 중요성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개혁단의 한 검사는 국회 전략을 연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열린우리당 기획단에서 확정된 안이 그대로 열린우리당 당론으로 채택되지 않도록 막는 것을 1차 과제로 보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권 조정 1차 논의 때 청와대가 별 힘을 쓰지 못했지만, 기관 간 갈등이 심해지면 마냥 손을 놓고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통치권 차원에서 부담을 느껴 결국 조정에 나서지 않겠냐는 희망 섞인 관측이다. 청와대는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이 검찰 피의자에 대한 호송을 거부하겠다고 했을 때(검·경 1차 전쟁 때)와 경찰이 검찰의 피의자 면담 요청을 거부했을 때(2차 전쟁 때) 경찰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 기관에 대한 청와대의 통제력은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경찰은 지금 두 가지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지난 11월15일 서울 여의도 농민대회 집회에 참가했다가 숨진 고 전용철씨 사건과 관련해 민주노동당과 59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고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허청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경찰, 검찰 직원들의 비리 의혹 수사 준비

경찰은 당시 현장 책임자인 이종우 경무관을 직위 해제하면서 사건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시민·사회 단체들은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공권력에 의한 폭력 살인을 축소·은폐하려는 술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역시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혼수상태인 농민 홍덕표씨의 상태에 따라 허청장 퇴진 요구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홍씨는 농민대회 때 전경에게 구타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수사 중인 거물 브로커 윤상림씨 사건에 대해서는 허준영 경찰청장과 윤시영 수사국장 등 경찰 수뇌부가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윤씨가 검·경·군 등 각계에 로비했다고 하는데 왜 경찰과 관련한 부분만 공개되느냐. 검찰이 경찰만 건드리고 있다”라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윤씨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행태는 비열하기까지 하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원래 크리스마스 전에 경무관 인사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던 경찰은 인사 이후 ‘윤상림 사건’ 불똥이 수뇌부로 튀면 조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해 인사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가 진행될수록 (윤씨의)범행이 추가로 나오고 있다고 밝혀 경찰의 애를 태우고 있다.

경찰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태세다. 반격 카드가 곧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변호사들의 비리와 관련한 대대적인 수사, 검찰의 범죄 정보 수집 요원들이 사설 정보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의혹, 성남 지역 한 건설업체와 검찰 직원들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 등을 전면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고 보고 최대한 빠른 시기에 수사권 조정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한다.

열린우리당 기획단 관계자는 “검찰에서 안이 나오면 일단 기획단이 먼저 심의할 것이다. 앞으로 두 기관이 국회를 주무대로 치열한 줄다리기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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