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정치·윤리 사이
  • 배병삼(영산대· 정치학) ()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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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1902년 천문학자인 기무라(木村) 박사가 세계 최초의 발견을 했다. 예측이 불가능했던 지구의 위도(緯度) 변화 현상을, 1년 주기로 나타나는 ‘Z항(項)’이라는 성분을 가지고 설명해낸 것이다. Z항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 ‘기무라 항’이라고 명명되었고, 1911년 일본 학술원은 그 공적을 기려 ‘상금 3백엔과 직경 3촌(寸)짜리 상패’를 수여하였다. 

일본 사회는 그때까지 과학계를 일상과 동떨어진 ‘막연히 어두운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의 연구와 발명에 대해서는 무지했고 또 무관심했다. 그런데 학술원의 표창에 깜짝 놀란 신문들이 갑자기 기무라 씨를 대단히 뛰어난 사람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학술원의 표창을 긴박하게 보도하는 일을 잊지 않은 도쿄의 각 신문들은 오랜만이라기보다는 최초로 순수한 과학자에 대해서 정객이나 군인, 또는 실업가에 뒤지지 않는 관심과 주의를 일반인들에게 촉구했다.’(나쓰메 소세키, <학자와 명예>)

물론 그 2~3주 전만 하더라도 일본 사회는 박사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몰랐다. 열정적인 신문 보도들로 말미암아 기무라라는 이름은 열흘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일본 전국에 널리 퍼졌다. 세상 사람들은 단순히 신문의 기사를 믿고, 신문은 학술원의 설명을 믿었으며, 또 학술원은 스스로 처신을 잘했다고 믿었다.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였던 나쓰메 소세키는 갑작스러운 과학 열풍의 틈새에 똬리를 튼 정치성과 윤리성에 주목한다. 먼저 ‘일본의 과학은 기무라 박사 한 사람의 과학이 되어서 다른 물리학자·수학자·화학자 들은 하나의 존재 단위로조차 인정받을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우려다. ‘아무리 빈약한 일본이라고는 해도 이정도로 형편없는 찌꺼기들이 모여 과학을 연구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무라 씨에만 집중된 사회적 관심이 실은 그 주변을 더 어둡게 만듦으로써 균형 잡힌 과학 발전을 ‘정치적으로’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것은 또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대중이 과학을 모를 때는 단지 그 무식함이 문제가 될 뿐이지만, 기무라 씨의 이름에만 빛을 비추고 다른 학자들을 여전히 어둠 속에 방치해 둔다면 도덕적 불균형을 발생시킨다. 즉 학술원과 언론이 기무라를 발견한 것 외에도 가치 있는 과학적 성과들에 주의하지 않고, 그저 ‘헛되이 표창의 의식을 축제처럼 보이게 하여 수상자에게 절대적인 우월감을 부여하는 것’은 불공평과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과학을 둘러싼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100년 전 일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일어났던, 과학을 둘러싼 소동과 또 이에 대한 평론을 보면서, 최근 배아 줄기세포를 둘러싼 진위 논쟁에 휩싸인 우리 사회를 상기하게 되는 것은 몹시 착잡하다.
그때의 일본이나 지금의 우리나 대중은 과학(또는 진리)에 무지하고 또 알려 들지도 않는다. 진리 발견과 과학 성취에는 박수치지만 그것은 스포츠에 대한 환호만큼이나 순간적이고 또 피상적이다. 점점 과학의 전문성은 깊어지고 그럴수록 대중과 과학의 사이는 더 벌어진다. 최근 배아 줄기세포를 둘러싸고 생산된 말과 글을 제대로 이해하는 대중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벌어진 틈새에 정치와 언론이 개입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와 언론은 과학(진리)을 이용할지언정 추구하지는 않는다. 한데 배아 줄기세포는 처음부터 정치와 언론에 너무 밀착되어 있었다. 어쩌면 황우석 교수는 한국 땅에서 과학을 수행하기 위해선 정치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리’를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인지 모른다.
또 배아 복제 기술은 원초적으로 생명윤리 시비를 불러일으켰거니와,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언론들이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더욱 정치적 당파성과 보도 윤리상의 흠결을 드러냈던 터다. 게다가 최근에는 연구팀 내부의 직업 윤리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지금 텔레비전에선 황우석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연구팀 내부의 문제와 관련해 “검찰에 정중히 조사를 요청”하고 있다).

최첨단 과학적 주제 뒷면에 정치와 윤리 문제가 도사리고 있고, 또 이 두 영역에 대한 고려야말로 과학 발전의 성패를 가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어리둥절해진다. 세계 최신의 과학 기술에도 ‘옛날옛날 한 옛날’ 강조되었던 사람 됨됨이, 덕성, 인격, 윤리성과 정치성 같은 구닥다리 주제가 얽혀 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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