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올해의 인물' 공해추방운동연합회 의장 崔冽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12.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해추방 못하면 大亡의 2000년대”
 
 “공해추장운동을 시작한 이래 올해처럼 바쁜 해는 없었다.” 공해추방운동연합(이하 공추련)의장 崔冽씨(43)는 올해 2백50여회에 이르는 각종 강연과 세미나를 가졌다. 지난 11월7일부터 한달 간 미국 환경운동 실태를 둘러보고 온 기간을 빼면 거의 매일 환경파괴 현장과 강단에서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강연과 반대시위에 앞장서는 한편으로 방송에도 1백40여회나 출연했다. 그 틈틈이 환경문제에 관한 글을 써 발표했고, 언론에서 환경문제를 보도할 때 자문역을 맡거나 취재팀과 함께 공해현장을 누볐다.

 91년을 그는 “이제 막 이륙하려는 비행기”에 비유했다. 물론 그 비행기는 공해추방운동이다. 지난 3월의 페놀오염 사건, 핵발전소ㆍ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반대투쟁, 골프장 건설 반대운동 그리고 화성 산업폐기물 사건(54~55쪽 91년 10대 환경사건 참조) 등으로 “국민 모두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초조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인식에 비해 조직적 시민운동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당국이나 기업은 “말과는 달리 여전히 환경 보전보다는 개발”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오늘의 ‘풍요’는 환경파괴의 대가

 그는 “이 90년대에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000년대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는 共滅의 연대가 된다”면서 “이것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과학적 진실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공해와 핵이 없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그의 강연은 ‘환경 부흥회’처럼 보인다. 환경파괴를 반대하는 대책위들이 구성될 때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 ‘환경 전도사’가 강연장에서 빼놓지 않는 이야기는 “지난 30년간 우리의 공기와 물, 땅과 먹거리 등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들이 얼마만큼, 어떻게, 왜 파괴되었는가”하는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환경파괴의 현실은 “우리가 이룩한 현재의 ‘풍요’는 물 공기 땅 먹거리를 파괴한 대가이다”로 간추려진다. 지난 30년간 ‘더 많이 더 크게 더 편리하게’를 기치로 내걸고 앞만 보고 내달려온 ‘개발독재’는, 최열씨의 표현을 빌면 “대한민국을 공해민국으로” 또 “세계 공해의 실험장으로” 바꿔놓고 말았다.

 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성장과 개발이란 환경의 오염과 파괴에 다름아니다. 파괴된 환경위에 세워진 ‘풍요의 집’은 곧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저울의 양쪽에 성장과 오염을 올려놓으면 오염쪽이 무거워졌는데도 성장과 풍요에의 욕망은 멈추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강연을 들어보자. 최열씨는 30년 전에 팩시밀리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물 또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고 말한다. 89년 수돗물에서 중금속과 합성세제가 검출됐다. 이때 대통령은 “수돗물만은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이듬해 그 물에서 트리할로메탄이란 발암물질이 나왔으며 올 봄에는 2백50만 대구시민이 ‘독극물 넘버38’ 페놀을 마셨다.

 수돗물만 ‘죽은 것’이 아니다. 전국 3천9백개 하천이 모두 죽었다고 최열씨는 안타까워한다. 그는 작가 金聖東씨와 <한국일보>의 ‘생명기행’을 취재하러 대구 금오강에 갔을 때 큰 곤욕을 치렀다. 염색공단에서 나오는 폐수 농약 비료 가축배설물 생활하수 등으로 금오강은 새까만 색깔이었고 냄새가 코를 찔러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돌을 던져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을 만큼 금오강은 오래전에 강물의 상태를 벗어났다. 물은 영양분이 전혀 없어야 물이다. 그런데 우리의 강물은 자기정화능력을 상실, 영양분이 너무 많아진것(부영양화)이다.

 강물이 부영양화로 죽어가는 것과 함께 땅도 화학비료와 농약 등으로 산성화되고 메말라지고 말았다. 공기는 어떠한가. 서울 하늘엔 이제 겨울엔 ‘런던스모그’가, 여름엔 ‘LA광화학스모그’가 나타난다. 최씨는 “서울은 텐진과 테헤란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공기가 나쁜 도시인데도, 시청앞 환경전광판은 날마다 ‘보통’을 가리킨다.

대기 오염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시민들은 그 ‘환경시계’를 보고 단순한 두통으로 여기게 된다. 미국이나 일본 기준치에 따르면 서울 공기는 ‘나쁨’이다”라고 말한다.
 죽은 물과 흙 그리고 대기에서 키워지는 농산물과 해일처럼 밀려드는 수입농산물이 인체에 끼치는 악영향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다.

최씨는 “발암물질로 넘치는 우리 식탁”이라고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들이 먹는 식품의 70%가 가공식품으로 변했고 가공식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루에 섭취하는 화학물질은 70~70가지, 10g에 이른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 가운데 20.6%가 암으로 죽은 것도 오염된 먹거리와 가공식품 탓”이라고 최씨는 분석한다.

 공해추방운동과 더불어 그는 89년부터 핵발전소 및 핵폐기물처리장 건설 반대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안면도사태’로 돌출된 핵발전소 및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찬반 시비는 올해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열씨는 “핵발전소 건설은 과학 이전에 철학의 문제”라고 못박는다.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핵발전소로 피해를 입을 확률이 별똥별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적다”고 주장하지만 전세계 4백26개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인간의 능력으로 핵을 관리,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핵폐기물인 플루토늄239는 1g으로 1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그 독성은 1백만년이 지나야 청산가리 수준이 된다. “체르노빌 사고가 증언하는데도 당국은 핵은 공해없는 에너지라고 선전한다”고 그는 비판한다. “우리 한 세대가 에너지를 풍족하게 쓰기 위해 후대에게 가공할 위험물질을 안겨주어야 하는가”라며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핵발전소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반대론에 당국은 무릎을 맞대지 않는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핵문제를 다룰 때 환경처나 한전측에서 ”최열이 나오면 참석할 수 없다며 발뺌한 적이 많았다“고 최씨는 말했다.

감옥에서 공해추방운동 결심 ‘독학’

 
공해와 핵추방운동을 벌여온 그의 지난 15년은 외롭고 고단한 것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환경문제를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로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76년 여름 안양교도소에서 일어판 환경서적을 읽을 때, 그리고 감옥에서 나와 환경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설득할 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민주화와 통일이 최대의 과제”라고 핀잔을 주거나 “이렇게 공기가 좋은데 공해는 무슨 공해냐”라고 고개를 돌렸으며 “인구는 많고 자원은 없는데 공해산업이든 뭐든 들여와 우선 잘살고 보아야 한다”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대구에서 유ㆍ소년기를 보내고 춘천으로 옮겨 춘천중고를 졸업한 후 68년 강원대 농화학과에 입학했을 때 그는 신문기자가 꿈이었다. 그러나 이내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71년 학원자율화와 교련반대 등을 외치다가 그해 가을 강제징집당하고 말았다. 74년 제대하고 복학했다. 그해 4월 민청학련사건으로 학생들이 구속, 사형을 언도받은 직후였다. 75년 명동성당에서 구속자 석방과 유신철폐를 요구하다 잡혀들어갔다. 6년형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앞날이 막막했다. 감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에 투신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모두 그 분야에만 몸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급속한 산업화ㆍ도시화의 역기능이 곧 나타날 것인데 전공인 농화학을 살리면서 그 역기능을 바로잡는 방법은 무엇인가 따져본 끝에 공해추방 운동을 택했다. 곧 책을 넣어달라고 했지만 국내에는 공해 관련책이 없었다.

 그가 처음 읽은 환경서적은 “공해는 고통받고 있는 현장이 제일 중요하다”는 저자의 자필 사인이 들어 있는 우이준(동경대ㆍ환경학)의 《공해원론》과 미야모토 겐이치의 《일본의 환경문제》였다. 이 책에서 환경문제는 모든 사회모순의 집약이며, 사회 구조와 제도 그리고 개인의 소비 양식의 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감옥에서 2백여권의 책을 읽으면서 환경운동은 전문성 대중성 결집성 3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각성을 갖게 되었다.

 79년 만 4년만에 교도소문을 나섰지만 공해문제보다는 당장의 정치투쟁이 중요했다. 감옥생활도 정리하지 못한 채 민주청년협의회에 참여했고, 그해 소위 ‘YWCA위장결혼식사건’에 관계했다가 재구속되고 말았다. 그때 대전교도소에는 李富榮 현 민주당 최고위원이 옆방에 수감돼 있어서 환경운동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81년 3월 출옥해 환경문제연구소가 있는 대학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전문가를 모으려 했지만 다들 냉담한 반응이었다.

‘공해문제 대중화’에 주력

 결국 함세웅 신부 권호경 목사 이돈명 변호사 고 성래운 교수 등 민주인사들이 모여 82년 4월1일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열었다. 尹潽善 전 대통령의 도움도 컸다. 하지만 “전두환 시절에 처음 만들어진 재야 단체”인 이 연구소는 발기인들의 면면과 연구소에 드나드는 민주인사들 때문에 출발 때부터 ‘불순단체’로 당국의 주목을 받아야 했다.

 연구소는 82년 안양천 오염실태를 시작으로 공해현장 조사를 시작했으며 유인호 교수(중앙대ㆍ경제학)의 월례 강좌를 개설, 대중들에게 환경에 대한 인식을 불어넣었다. 83년부터 울산과 온산 여천 등지의 공해현장을 찾아다녔다. 공해지역 주민들은 공장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잘살게 되었다”며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 곧 나무가 죽고 소가 쓰러졌으며 주민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농작물이나 양식장 피해보상을 먼저 요구했지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들의 건강문제는 등한시했다.

 최씨는 온산지역에서 30대 후반의 아낙네가 “우리는 살 만큼 살았으니 우리 아이들 좀 살려주이소”라고 울먹이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85년 초에 이같은 실태를 발표했다. 그 파문은 엄청난 것이었고 환경처(당시 환경청)와 공해병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온산병발표’를 기화로 당국의 압력은 더 심해져 자택연금 횟수가 잦았다. 최씨는 “연구소 개설 이후 지금까지 그때, 85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온산지역의 공해현장을 세상에 알리면서 그는 “공해문제를 대중화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공해추방 운동의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현지 조사와 피해 주민 지원, 대중강연에 치중해왔다. 그 무렵에 청년 학생들이 공해추방운동에 참여해 ‘공해추방운동청년협의회’가 만들어졌고 86년 여성들이 중심이 된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88년 위 두 단체와 공해문제연구소가 현재의 공해추방운동연합으로 통합되었다.

 풍요를 향해 치닫는 90년대를 최씨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급행열차”라고 파악한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이 급행열차를 하루빨리 멈추게 해야 하는데 그 브레이크는 정책입안자(통치자)가 밟아야 한다고 최씨는 지적한다. 그러나 당국과 기업은 여전히 ‘표리부동’하다. 최근에도 대기업들은 폐수를 몰래 방류하다가 적발되었고, 골프장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올해 안으로 핵폐기물처리장부지가 결정될 것 같다.

개인 삶의 양식변화 우선돼야

 “환경문제 해결은 일차적으로 공해로 피해받는 주민들이 나서야한다”고 최씨는 말한다. 가만히 있는데 정부나 기업이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이 실천과 싸움이 곧 민주화로 가는 과정”이라고 최씨는 강조한다. 그는 지방자치제가 환경문제 해결에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주민운동만으로는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최씨는 “개인의 삶의 양식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운동은 각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그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이 모두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핵발전소를 건설할 것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당국과 기업, 국민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것,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한 환경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돈 중심의 경쟁사회’도 환경파괴의 본질적 요인이다. 돈을 버는 행위가 곧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한번 올라간 ‘풍요의 계단’에서 내려서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집단적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그는 제안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불평등 구조 아래에서 개인 삶의 양식의 변화를 바랄 수는 없다. 불평은 불평등에서 나온다. 불평등을 서로 비슷한 조건의 평등 구조로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 가장 좋은 방법이 민간 환경운동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