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올해의 표상' “그 많던 꿩·버섯 어디로 갔나”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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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동에서 50년 산 이해주옹 / “비술나무 두 그루만 그 자리에”

 “남산은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준비했던 곳이다. 산기슭에 살면서도 공부한답시고 산꼭대기 한번 오르지 않았던 사람들이 남산골 샌님이라고 어른들은 말했었다”라고 李海注옹(81)은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옹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종로양복점의 두번째 주인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종로구 관철동이지만 45년부터 지금껏 남산 기슭 동네인 회현동 1가 81번지에서 살고 있다. 집에서 남산시립도서관까지는 걸어서 5분이다.

 
이옹은 어릴 적에 남산에 버섯 따러 자주 다녔다. “후암동에서 산을 올라가다 보면 가느다란 국수버섯이 많아 따다가 국이나 찌개를 끓여 먹었다”고 회상했다. 이태원동 토박이들도 어릴 적에 싸리버섯을 많이 캐먹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남산에 버섯이 아주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버섯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봄이 되면 남산을 뒤덮은 소나무 가지 끝마다 새하얀 송홧가루가 묻어나왔는데, 이 가루를 털어내어 전통 한과인 송화다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옹은 또 “양식이 부족할 때는 남산에서 털어내온 송홧가루를 더운 물에 풀어 요기한 적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옹은 남산 기슭으로 이사온 뒤부터 매일 새벽 산행을 했는데 꿩이 무척 많았었다고 한다.
 “전에는 산에 오르노라면 꿩들이 인기척에 놀라 여기서 푸드득 저기서 푸드득거리며 많이 날아다녔다.”
 
그때는 꿩들이 주로 나무 위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산속에 삵괭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없는 개들까지 남산을 배회하며 꿩들을 위협했다. 뜯어먹고 난 꿩이나 비둘기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꿩 보기가 어렵다고 이옹은 말했다.

 그가 어릴 적부터 보아온 나무도 이제는 별로 없다. 그의 기억에는 남산시립도서관 옆에 있는 비술나무 두 그루가 아직도 남은 토종 나무의 전부이다. 이옹은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이 우람한 활엽수를 일제시대부터 보아왔다. 조선총독부는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세우고 지금의 힐튼호텔 자리부터 남산시립도서관까지 계단을 설치했다.

이 일대 산자락은 완전히 파헤쳐졌다. 조선신궁에서 신사참배를 하려면 샘물에 손을 씻어야 했는데 약수가 아니었어도 그 물맛은 좋았다고 이옹은 회상했다. 그는 지금 식물원 화장실이 신사가 있던 자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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