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올해의 인물' 최병모 특별검사 독점 인터뷰
  • 이철현. 최영재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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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ㆍ아쉬움 교차”

지난 12월 16일 옷로비 의혹 사건을 파헤친 최병모 특별검사 사무소는 파장 분위기였다. 최특검도 밖에 나갔다가 <시사저널>과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사무소에 들어왔다. 집무실 책상 위에는 <노장사상의 해체적 독법>(지은이 김형효)과 <여자는 반란을 꿈꾼다>(지은이 전옥경)는 책이 놓여 있었다. <여자는…>은 수사 참고 자료인 듯했고, <노장사상…>은 철학과 문학에 관심이 많은 최특검의 애독서 같았다. 집무실 구석에는 피곤하면 몸을 누이던 간이 침대가 침낭과 함께 놓여 있었다.

 
옷로비 의혹 사건 특별검사팀을 2개월동안 이끌었다. 12월 18일 자정을 기해 특검 임기가 끝나는데, 수사결과에 만족하는가?
수사권 범위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하지만, 필요한 나머지 부문을 수사하지 않느냐고 추궁한다면 마음에 걸린다. 특검법이 이형자가 연정희에게 옷로비를 했다는 사건만 수사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법은 수사권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우리는 법대로 했다.

한나라당과 시민단체는 특검법을 상설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사법 사상 첫 특검으로서 특검법 상설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특검을 설치해야할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에 좋지 않다. 정상적인 조직에서 국가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제한된 수사 영역에서는 필요한 측면이 있다. 삼국 시대에도 상피 제도가 있었다. 담합할 가능성이 있는 직책에 한 가족 구성원을 앉히지 않았다. 이같은 법 조항은 이해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연루된 사건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는가. 검찰 구성원이 연루된 사건에 한해서 특거을 활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옷로비 특검팀이 언론을 기가 막히게 활용했다는 의견이 있다.
나는 특검을 맡기 전까지 기자를 상대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언론을 활용했다기보다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듯하다.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는 지적도 옳지 않다. 기자들이 몰려와 아무개를 소환하느냐라고 물으면, 대답했을 따름이다. 기자들이 사실을 확인하고 물어올 때 거짓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확인해주면 마치 특검이 공식 발표한 것처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온다.

정일순씨에 대한 구속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다음날인 11월16일에 수사 내용을 중간 발표하지 않았나?
그것은 중간 발표가 아니다 11월15일 오후 5시께 법원이 정일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몰려와 영장기각에 대해 한마디 해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언그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할 말이 없다고 했더니 기자들이 ‘검찰에서는 트검이 수사한다고 해도 새로 나올 것이 없다. 증거 없이 (영장을) 청구했으니 영장 기각은 당연하다고 하더라. 법원도 소명이 부족해 기각했다고 말하는데, 특검이 할 말이 없다고 하면 그대로 쓰겠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회의를 거듭한 끝에 특검팀의 의견을 20분 안에 간단하게 설명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날 오후 1시30분에 기자들에게 ‘법원이 위증은 특검의 수사 범위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옷로비 의혹의 실체를 밝히자면 누가 위증을 했는지를 알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위증과 의혹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밀접하게 연과되어 있는 것이라고 판단해 위증 부문이 수사 범위가 아니라는 지적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요지로 설명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그 설명으로는 기사를 쓰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팩트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녹음 테이프ㆍ뜯어낸 라스포사 장부ㆍ사직동팀 최초 보고서(추정)를 간단하게 공개했다. 이 정도가 무슨 중간 발표인가.

특별검사에 임명된 계기가 무엇인가?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임명된 것도 바로 전날 알았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다. 9월 말에 특검법이 통과된 사실조차 몰랐다.

양인석 특검보와는 전부터 아는 사이였나?
생면 부지였다. 주위 법조인들이 함승희 변호사와 양인석 특검보를 추천했다. 수사에 ‘수’자도 모르고 검사와 싸움질만 하던 판사 출신이다 보니 검사 출신 변호사를 찾았다. 고민 끝에 양특검보를 뽑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기가 믹힌 선택이었다.

수사 중간에 특검팀에 내분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는데?
밖으로 드러난 것은 모두 쇼였다. 양특검보와 상의한 후 특검팀에 내분이 있는 것처럼 꾸몄다. 언론이 자꾸 특검팀을 흔들거나 띄우니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사전권은 양특검보에게 맡겼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조사해 보려 했으나 28명이나 되는 인원을 관리하는 업무만도 만만치 않았다.

팀장으로서 이질적인 구성원을 이끌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우리 팀은 전혀 다른 생활을 하던 사람들을 끌어모은 집단이다 국세청ㆍ검찰ㆍ경찰 파견 직원과 변호사ㆍ전직 검찰ㆍ일용직가지 뒤섞여 있었다. 개중엔 조직 사회에 익숙치 않은 이도 있었다. 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언론을 대하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서기관급이나 이사관급 이상의 홍보관이 필요했다.

앞으로 권력형 비리가 발생해 특검이 다시 도입된다면 다시 한번 맡아볼 의향이 있는가?
없다. 이제 퇴장할 나이다. 최근 언론에서 너무 띄우니까 송구하고 곤혹스럽다. 주위에 능력ㆍ도덕성ㆍ업무 처리 자세 면에서 훌륭한 사람이 많다. 제주도 구석에서 작은 사무실 내고 먹고 사는 나를 그렇게 미화할 필요가 없다.

특검을 마친 후 무엇을 할 것인가?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덕수합동법률사무소로 복귀할 예정이다. 서울사무소에서 몇 년 전부터 성루로 올라오라고 하도 성화를 해서 이미 내년 3월에 올라오리고 결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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