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잘 때도 세금 낸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12.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먹고 놀고 쉬는 ‘모든 것’에 과세…40대 직장인, 한 달에 47만원 이상 납세
 
유 아무개씨(40·회사원)는 급여명세서를 펼치다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공제 총액이 59만4천4백20원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유씨는 급여명세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돈을 뗀 항목이  갑근세(27만5천7백40원), 주민세(2만7천5백70원), 고용보험(1만8천9백90원), 의료보험(8만5천1백20원), 국민연금(16만2천원), 사우회비(2만원) 등 일곱 가지나 되었다.

세금이 아닌 의료보험비나 사우회비 등을 빼더라도 유씨가 정부에 낸 세금은 한 달에 30만3천3백10원이나 되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한 달치 월급(3백60만원)보다 많은 돈을 세무서에 바친 것이다.    

 유씨는 은근히 억울한 생각이 들어 총무과에 전화를 걸었다. ‘왜, 이렇게 세금이 많이 나오느냐?’고 따진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뻔했다. “나라에서 떼라는 대로 뗀 것뿐이고, 금액은 급여명세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유씨는 급여명세서를 서랍에 넣고 힘껏 밀쳤다. 그 순간 며칠 전에 회사로 들고 온 재산세 납부고지서가 생각났다. 그는 가방을 뒤져 재산세 납부고지서를 꺼내 보았다. 납부고지서와 함께 그의 인상이 구깃구깃 구겨졌다. 재산세가 무려 40만원이 넘었던 것이다. 

 그는 재산세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궁금했다. 그동안 세금을 내라 하면 내고 더 내라 하면 더 내던 그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그는 국세청 홈페이지와 세금 관련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를 들락거렸다. 그 결과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31평)의 기준시가가 2억원이고, 그 금액의 50%(1억원)가 과세 표준임을 알았다. 
 
과세 과정은 복잡했다. 국세청에서는 기준시가 4천만원 이하 주택에는 그 금액의 0.15%를 재산세로 매기고, 4천만~1억원 주택에는 0.3%를 매긴다. 그리고 1억원 이상 주택에는 0.5%를 매긴다. 그러니까 유씨는 4천만원(×0.15%)에 대해서는 6만원을, 6천만원(0.3%)에 대해서는 18만원을 과세당해 24만원의 재산세를 내게 된 것이다. 거기에 도시계획세(과세 표준의 0.15%)와 지방세 등을 포함한 것이 유씨의 재산세이다.

담뱃값의 73.6%가 세금

 내친 김에 유씨는 자신이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고 다녔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는 자료를 하나하나 챙겨가며 세금 내역을 조사하다가, 바이러스처럼 보이지 않는 세금에 길들여져 있음을 알았다.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거의 모든 물품에 세금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것이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유씨뿐만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누구나 많은 세 부담에 시달린다. 2003년 한국인들의 조세부담률은 20.5%. 국민 1인당 100만원을 벌면 그 가운데 20만5천원을 세금으로 냈다는 말이다. 조세부담률은 매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이다. 1999년 이후 4년 동안 2.7%가 올랐다. 한국인들이 한 해 동안 세금을 모두 얼마나 내는지 유씨의 일상을 통해 들여다본다(도움말:한국조세연구원 전병목 박사).  
 
 
유씨가 하루 중 맨 처음 내는 세금은 3백원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3천원짜리 커피를 사 마시는데, 거기에 약 10%의 부가가치세가 붙어 있는 것이다(부가가치세는 가공하지 않은 식품이나 의료·교육 관련 비용을 빼고는 거의 모든 비용에 다 붙는다). 그는 점심때도 세금을 지불한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5천원짜리 음식을 먹는 순간 부가가치세(5백원)를 내게 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그는 약속 시간이 촉박해서 종로에서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삼성동. 이때 그가 내는 세금은 이용료(1만8백원)의 10%인 1천80원. 다행히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하루에 담배(레종) 한 갑을 피우는 사람은 1천815원의 세금을 낸다.

2천5백원짜리 담배에 붙는 세금의 종류는 모두 여섯 가지. 담배소비세(6백41원), 교육세(3백20.5원), 국민건강증진기금(3백54원), 연초경작농민 안정기금(15원), 폐기물부담금(7원), 부가가치세(2백27원)가 그것이다. 그 금액을 모두 합하면 약 1천8백15원. 2천5백원짜리 담배 한 갑을 사서 피우면 그 가격의  73.6%를 세금으로 무는 셈이다.   

 저녁 퇴근길에 유씨는 후배와 함께 근처 고깃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삼겹살 2인분과 소주 세 병을 나누어 마시고, 고기값 1만6천원과 소주 값 9천원을 지불했다. 그 순간 그가 지불한 세금은 고기값의 10%인 1천6백원과 소주 값에 붙는 세금 1천53원. 소주 값에는 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가 붙는다. 주세는 원가(3백95원)의 72%인 2백84원이고, 교육세는 주세의 30%인 85원이다.

1년에 84일간 번 돈이 세금으로 빠져나가

거기에 10%의 부가가치세를 포함하면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내는 세금은 4백45원이나 된다. 만약 유씨가 병맥주 세 병을 마셨다거나, 양주 1병을 마셨다면 세금은 더 늘어난다. 맥주에는 출고가의 90%에 해당하는 주세가 붙어 있고, 양주에는 72%의 주세가 붙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유씨는 자동차세 고지서를 찾아보았다. 고지서를 보니 1천7백cc 자동차 때문에 지불한 세금이 연간 34만원(cc당 2백원)이나 되었다. 그는 내친 김에 휘발유 소비량과 거기에 딸린 세금을 따져보았다. 차계부를 펼쳐보니 지난 한 달 동안 자동차가 휘발유 값으로 15만4천원을 꿀꺽했다.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천5백원으로 계산하면, 한 달 동안 1백리터가 넘는 휘발유를 쓴 셈이다. 

 그로 인해 그가 지불한 세금은 모두 6만원이 넘는다. 휘발유에도 수많은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우선, 교통세(리터당 5백72원)이 붙는다. 거기에 교육세(교통세의 15%)가 더해지고,  지방주행세(교통세의 14.95%)가 덧붙는다. 그것을 모두 더하면 유씨는 리터당 약 7백43원의 세금을 낸 셈이 된다(한 달에 약 7만4천3백원).

 유씨는 계산기를 꺼내놓고 자신이 과연 지난 한달 동안 얼마만큼의 세금을 냈는지 계산해 보았다. 월급에서 공제되는 갑근세+주민세 30만3천3백10원. 커피를 마시면서 내는 세금 3천9백원(13일×3백원), 점심 식사 뒤 내는 세금 1만원(5백×20), 택시를 타면서 내는 세금 약 7천원(7만원 기준), 자동차세 2만8천3백원(34만원÷12달), 휘발유세 7만4천3백원, 재산세 3만3천3백원, 기타 세금(고속도로 통행비, 찜질방비, 영화 관람비 등에 붙는 간접세) 1만원(10만원 기준)을 합치면 모두 47만1백10원이나 된다(여기에 담배까지 피우면 1천8백15원×30=5만4천4백50원이 더해진다) 얼추 따져보아도 매달 월급(3백60만원)의 14% 이상을 세금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3월 자유기업원은 한국인이 갑근세를 포함한 모든 세금 부담에서 벗어나는 ‘세금 해방일’을 3월25일이라고 발표했다. 1월1일부터 84일 동안 일해서 번 돈은 다 세금으로 빠져나가고, 3월25일부터 버는 돈은 자기 것이라는 뜻이다. 새해에도 세금 해방일은 앞당겨지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절세법을 배우고, 덜 소비한다면 적어도 2~3일은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