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무너져도 희망의 세포는 꿋꿋이 자란다
  • 오윤현 기자 (nosisapress.com.kr)
  • 승인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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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으로 한국 과학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고, 불치병 치료의 꿈도 멀어졌지만 미래를 기다리며 묵묵히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은 많다.
 
황우석 교수 사건이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12월23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조사위)는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고의로 조작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명희 위원장은 황우석 교수가 ‘그 일에 개입했다’고 덧붙였다. 이제 황우석 교수팀의 와해는 불 보듯 뻔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사위의 발표를 보고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영웅’의 갑작스러운 몰락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속도가 붙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지체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근심 탓도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의 존재 여부를 밝히는 일과, 논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연구자들의 ‘자리’ 문제이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지난 12월22일 정부와 <사이언스> 논문 공동 저자들이 소속된 기관에 ‘황교수와 공동 저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이미 논문 조작 혐의로 세계 과학 기술계에서 사망 선고를 받은 이들에게 국내에서 아량을 베푼다면, 한국 과학기술계와 한국 전체의 신뢰는 더욱 크게 추락할 것이다’라는 게 그 이유였다. 거짓말한  연구자를 그대로 두고, 그들로 하여금 또다시 논문을 쓰게 한들 누가 믿겠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 과학계는 논문 조작을 하거나, 조작 논문에 이름을 올린 연구자들에게 엄격했다. 지출한 연구비까지 모두 반납하게 하거나, 소속 연구기관에서 추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번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스물다섯 명의 연구자들도 엄한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생명과학자는 “왜 공동 저자 중에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지 의아하다. 최악의 경우 25명 모두 학계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줄기세포주 생산이 가장 큰 타격

 공동 저자들이 불명예스럽게 퇴장하면 한국의 인간 배아줄기세포(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가장 타격을 크게 입는 분야는 생산 분야가 될 수밖에 없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①원재료(줄기세포주) 생산 ②원재료의 기능성 세포 분화와 그 효능과 안정성 검사 ③면역 문제와 종양 발생 문제 해결이 그것이다. 

그동안 우리 나라는 세 분야 가운데 원재료 생산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만약 황교수팀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을 안 갖고 있고, 지금 이 상태에서 팀이 뿔뿔이 흩어진다면 그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2005년부터 난자 사용을 금하는 생명윤리법이 ‘날’을 세운 채 발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내 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가 뿌리째 뽑힌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② ③번 연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성장 가능성도 크다. 다행히 우리 나라에 전 세계 3백여 배아줄기세포주 가운데 40여 개나 있기 때문이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원재료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배아줄기세포 연구팀이 10여 팀이나 되고, 뛰어난 연구자들도 적지 않다. 

 
배아줄기세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형민 교수(포천중문의대·차바이오텍 대표)는 “한 분야만 망가진 것이다.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가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정교수에 따르면, 현재 그 어떤 나라도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난자 공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에 있는 호세 시벨리우스 교수(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 저자)는 난자 부족 때문에 좌절한 적이 있다. 200 1년, 그는 생명공학회사 ACT에 근무하면서 놀라운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동물 난자에 사람의 체세포를 이식해 줄기세포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공개적으로 사람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1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패한다. 사용한 난자 수(19개)가 적었기 때문이다. 시벨리우스 교수뿐만이 아니다. 지금 세계의 많은 연구자가 난자에 목말라하고 있다.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배아줄기세포주가 모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 <네이처> 기사에 따르면,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팀이 전세계에 존재하는 배아줄기세포주를 조사한 결과, 모두가 동물성 단백질에 오염되어 있었다. 이는 이들 배아줄기세포주로는 사람 임상을 할 수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앞으로 임상에 쓸 배아줄기세포는 모두 새로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은 특정 세포 분화 기술에 관심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사람을 치유하고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해내기 때문이다. 2010년 세계 세포 치료제 시장 규모는 최대 562억 달러로 예상된다. 그 가운데 배아줄기세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52억 달러. 미국 연방 정부가 2005년에만 2천4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캘리포니아 주가 2004년부터 10년간 30억 달러씩 지원하고 나선 것도 배아줄기세포의 무한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EU도 서두르고 있다. 2005년 현재 65만 달러를 지원했고, 영국은 인간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세계 최초로 승인(2004년 8월 뉴캐슬 대학)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호주·이스라엘·일본도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소위 선진국 연구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특정 세포 분화 기술이다. 그 기술이 인간 치료로 가는 가장 큰 난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면역 거부 반응을 제어하는 기술도 중요 기술로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 치료제의 상용화는 10년 더 소요될 전망이다. 배아줄기세포가 워낙 복잡 미묘해서 특정 세포로의 분화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배아줄기세포로 동물을 치료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쥐의 실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쥐의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해낸 것은 1980년 초반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연구자가 쥐의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쥐의 질환을 치료하는 연구를 해왔다. 그러나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것은 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국내에서는 황우석 교수와 정부, 그리고 언론의 분별없는 부풀리기 탓에 배아줄기세포로 금방이라도 환자를 치료할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었다. 1998년 미국의 톰슨 박사가 인간 배아줄기세포주를 확립한 이래, 이제껏 그것을 이용해 사람 임상에 들어간 연구는 단 한 건도 없었다(2006년 1건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 가장 앞선 연구라고 해봐야 배아줄기세포에서 심근세포를 분화 유도한 뒤, 동물 실험에 들어간 정도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국내 연구자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서울대·차병원 등 10여 곳에서 연구 진행

 그러나 아직은 아쉽게도 국내 연구 성과 역시 미미하다. 거의 모든 기술 수준이 미국의 50% 이하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우리 나라는 2002년 줄기세포응용사업단을 만들어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응용사업단 자료에 따르면, 배아줄기세포 연구자들은 서울대·한양대·미즈메디병원·차병원·마리아병원 등 10여 곳에 포진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과 차병원의  정형민 교수팀이다. 박세필 박사팀이 연구에 이용하는 원재료는 인공 수정하고 남은 냉동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 그동안 박박사팀은 그 재료를 기능성 심근세포로 분화하고, 그것을 이용해 쥐의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정형민 교수팀은 좀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뇌졸중과 척수 손상 같은 신경계 질환 치료 연구를 하고 있고, 배아줄기세포를 뼈나 혈액세포로 분화시켜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도 찾고 있다. 또 배아줄기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주입해 원하는 기관으로 분화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정형민 교수는 “모두 15개 팀에서 연구를 진행한다. 그 중에는 ‘맵시’라 불리는 만능성인전구세포를 이용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세포는 태아의 간 조직에서 얻은 성체 줄기세포인데, 능력은 배아줄기세포 버금간다.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조영민 교수(서울대 의대·내과)가 배아줄기세포로부터 췌도세포를 분화하는 연구를 하고 있고, 성노현 교수(서울대·생명과학부)는 배아줄기세포의 초기 분화 조절 인자가 무엇인지 규명하고 있다. 

 
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한용만 박사는 배아줄기세포의 자가 재생산 조절에 의한 분화 연구를 하고 있고, 이영희 교수(충북대 생명과학부)는 배아줄기세포에서 혈액세포를 대량 유도하고, 그 효능을 확인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교수는 “연구 성과가 아직 미미하다. 언제 눈에 띄는 성과를 얻을지 모르는 상태”라며 연구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한양대 박장환 교수(미생물학 교실)와 이상훈 교수(생화학분자생물학 교실)가 각각 배아줄기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해 기능성 신경세포를 제조하는 방법과,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척수장애 치료 연구를 하고 있는 김동욱 교수(연세대 의대·생리학교실)는 “아직은 실험실 단계다. 외국에 비해 성과도 떨어진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황우석 교수 사건은 한국 과학계에 많은 숙제와 교훈을 던져 주었다. 교훈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이제라도 분산된 연구 지원 체계를 하나로 묶고, 황우석 교수에게만 쏠려 있던 관심을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돌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곳곳에 숨어 있던 능력 있는 연구자들이 ‘빛’을 발하고, 정부도 비로소 원하는 연구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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