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 사수냐 기동 타격이냐 ‘진검 대혈전’
  • 고제규 차형석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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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대표 주자들이 돌아왔다. 대권 경쟁의 전초전이 될 2월 전당대회에서 당의장 자리를 두고 격돌할 정동영·김근태 두 진영의 ‘대권 관문 뚫기’ 필승 전략은 무엇인가

 
그들이 돌아왔다.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기 위해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돌아왔다. 주인공은 열린우리당의 대권 주자 김근태(GT) · 정동영(DY). 두 사람은 18개월간 ‘외유’를 마치고 당으로 복귀했다. 그러고는 곧장 다시 전선으로 나선다. 오는 2월18일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두 사람은 진검 승부를 벌인다. 새해 벽두부터 대선 주자가 결전을 벌이는 ‘슈퍼 전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두 주자의 새해 첫 일정은 대조적이다. DY는 원래 신년 산행을 계획했다. 측근들과 청계산을 오르며 전의를 다질 심산이었다. 그러나 돌연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DY는 세몰이를 자제하고 며칠간 잠행을 한 뒤, 1월 중순쯤 신년 구상과 당의장 출마 선언을 할 계획이다. 반면 GT는 자신의 팬클럽인 ‘김근태 친구들’과 함께 경북 포항 호미곶에서 해맞이를 한다. 1월7일에는 전진대회를 겸한 산행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세몰이에 들어갈 작정이다.

두 사람의 행보는 평소 모습과 달라 보인다. ‘몽골 기병론’을 내세우며 특유의 몰아치기에 강했던 DY가 ‘진지전’을 벌이는 반면,  ‘반 박자 느리다’는 평이 따라붙던 GT는 이번에 ‘기동전’을 벌일 태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런 대조적인 행보는 양 진영의 전당대회 목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DY계 목표는 진지를 지키는 ‘수성’ 입장이다.  반면 GT계는 이번 전당대회를 ‘탈환’의 최적 기로 보고 있다. 물론 DY 계열이 있는 그대로 지키겠다는 것은 아니다. 원래는 당의 시스템을 전면 정비하는 ‘리노베이션’을 희망했다. DY 중심의 일사불란한 당 운영을 위해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론 전문가들이 점치듯, DY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GT를 한발 앞선다. 지지율로 보아도 그렇다. 참여정부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지금은 두 사람의 지지도가 동반 하락한 상태이지만, 2004년 12월 DY의 지지율은 10.6%였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고 건 전 총리·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3위였다. 그의 정치력에 따라 얼마든지 지지율 상승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에 비해 GT는 단 한 번도 두 자리 수 지지율에 오른 적이 없다. 지난 1년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정기 지지율 조사에서 가장 높았던 것이 4.7%였다(2004년 12월).

대중적 지지도에 이렇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쪽은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전략에서 차이를 보인다. DY계는 당선보다는 그 이후 당 운영에 무게를 두었다. 일찌감치 당헌 당규 개정에 매달린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핵심은 당의장의 권한 강화이다. 당의장과 원내대표가 권력을 분점하는 현행 투톱 시스템을 당의장 중심의 원톱 시스템으로 개편하고,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회 선거를 분리해 당의장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이 지도부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으려 했다. 기존 방식은 상임중앙위원회 최다 득표자가 당의장을 맡는 것이었다. DY계 의도대로 분리 선거가 되면, 당의장에 낙선한 사람은 지도부가 될 수 없다. 당연히 GT계는 ‘김근태 배제론’이라며 반발했다.

또한 DY계는 전당대회에서 1인 1표제를 주장했다. 대의원 한 사람이 두 표를 행사하는 기존 방식을 1인 1표제로 바꾸면, 대중성에서 앞서는 DY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DY계 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인 1표제를 기준으로 했을 때와 1인 2표제로 했을 때 DY는 전자에서 더블 스코어 이상의 차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시스템 개편론’에 맞서는 GT계 전략은 ‘심판론’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당권파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GT계는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당권을 잡은 당권파(DY계)의 정체성 문제라고 보고 있다. ‘지난 2년간의 열린우리당 모습에 만족하면 DY를 지지하고, 변화를 원하면 GT를 선택하라’는 것이 GT계의 명료한 메시지이다.

지난 12월26일, 전당대회의 게임 룰을 정하는 중앙위원회의를 앞두고, 양쪽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GT계는 “겉으로는 효율성을 제기하지만 DY 1인당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했고, DY계는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맞받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싱겁게 끝났다. GT계의 판정승이었다. 이날 밤 11시까지 계속된 마라톤 회의에서 ‘반DY 연합 전선’이 힘을 발휘했다. 중앙위원회는 DY계가 들고 나온 시스템 개편안 대부분을 부결시켰다. DY계 한 인사는 “원내 전술의 부재이다. 저쪽은 치밀하게 준비해 왔는데, 우리는 준비가 부실했다”라고 말했다. GT계 한 의원은 “DY계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바꾸려 했다. 그쪽의 자충수이다”라고 말했다.

1월 중순에 있을 원내대표 경선도 2월 전대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현재 김한길·배기선 의원 등이 원내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만일 두 사람이 경선을 벌이게 될 경우, 결과와 무관하게 DY계는 울상을 짓고 GT계는 웃음을 짓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한길 의원은 DY계의 대표 주자이고, 배기선 의원은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중립 지대에 속해 있다. GT계는 한때 원혜영 의원 등 계파 후보를 내세워 원내대표부터 정면승부를 걸려 했지만, 그보다는 후보를 내지 않고 ‘3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DY계의 고민이 깊어갔다. 김한길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겨도 역풍이 불고, 져도 역풍이 부는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정치공학적인 구도상 그렇다. 김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2월18일 전당대회에서 DY에게 역풍이 불 수도 있다. DY계가 당의장-원내대표를 ‘싹쓸이’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득표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한길 의원은 계보 정치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당내에서는 이 말을 믿는 이가 거의 없는 듯하다.

싹쓸이 반감을 뚫고 DY가 당의장에 당선 하더라도, 산 넘어 산이다. 지방선거 이후,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당의장-원내대표를 싹쓸이한 상태라면 그 비판의 목소리가 더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한길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배할 경우도 문제다. 김한길 의원의 낙선은 DY 대세론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중앙위원회에서 판정패 한 상황에서, 원내대표 경선마저 DY계가 밀린다면 대세론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오히려 원내 경선에서 반DY 연합 전선이 힘을 받을 경우, 2월18일 전당대회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DY계 한 인사는 “당초 최선의 방안은 원내대표 주자를 우리도 내세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2월 전당대회에서 총력으로 붙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원내대표 경선 결과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구도 때문에, DY계 한 의원은 김한길 의원에게 불출마 의사를 넌지시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출마 의사를 굳힌 김한길 의원이 이 의원에게 면박을 주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파 후보를 내지 않는 GT계는 원내대표 경선에서 반DY 연합 전선을 다시 시험 가동할 계획이다.

한편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49명은 전대를 앞두고 치러지는 원내대표 경선이 과열될 수 있다며, 합의 추대를 제안했다. 하지만 DY -GT계 모두 합의 추대보다는 경선을 주장하고 있다.

진검 승부가 시작된 이상 양 진영의 목표는 승리이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경선’ ‘동반 승리’를 주장하지만, 이번 전당대회가  대선 구도에서 명암을 가르는 전초전 성격이 강하기에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선 DY 쪽은 큰 표 차의 낙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적어도 ‘더블 스코어’ 이상 표 차가 나야 당을 DY 중심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표 차가 적게 신승할 경우, 당선된 후에도 지도력에 타격을 받는다는 우려가 강하다. 이런 우려 때문에 DY계는 당의장- 상임중앙위원 선거를 분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시스템 개편이 물 건너 갔지만, 큰 표 차로 GT를 따돌릴 경우, 내용적으로는 원톱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DY계의 셈법이다. 큰 표 차로 낙승을 하고 그 여세를 몰아 지방선거까지 선전한다면, DY계는 당도 구하고 대선 가도의 확실한 교두보도 확보하는 일거양득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구상이 들어맞을지는 불투명하다. DY계 한 인사는 “1인 2표제에서는 표 차 자체가 크게 날 수가 없다”라고 자체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당원들 사이에, DY-GT 공동 투표 성향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표가 몰릴 경우 한 사람은 낙마하게 되고, 벌써부터 대권 주자 한 사람이 힘을 잃게 되면 열린우리당 대선 전략 자체가 큰 차질을 빚기 때문에 두 표를 한 표씩 나누어주는 동시 투표 성향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GT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33%(DY) 대 27%(GT)로 격차가 6%포인트밖에 나지 않았다..

DY에 비해 만년 2등인 GT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조직과 대중성에서 GT가 DY에 뒤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에, 2등을 해도 본전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기면, 노풍(盧風)에 버금가는 김풍(金風)이 분다고 본다. 실제로 2월 진검 승부설은 지난 여름부터 GT계에서 나돌았다.(<시사저널> 2005년 6월28일자 818 호 참조) 2월에 전당대회가 열리면, DY-GT가 정면으로 붙어야 한다는 요지였다. 이같은 2월 진검 승부설이 처음 불거질 때만 해도 DY계는, ‘말도 안 되는 구도이다’ ‘그런 구도라면 우리는 피한다’라고 말했다. DY로서는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일부 참모들은 DY에게 전당대회에 불출마하고, 차라리 백의종군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GT계가 전반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갖고는 있지만, 고민 또한 만만치 않다. 이번 전당 대회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다. 지방선거 전에 이루어지는 전당대회에서는 예비 후보들의 입김이 세기 마련이다. 자신의 당락을 기준으로 누가 당의장이 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겠느냐를 따지면, GT는 불리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국 어떻게 지지율을 끌어올릴지가 GT계의 숙제로 남는다.

이번 전당대회는 무엇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도 반드시 흥행시켜야 하는 승부수이다. 대권 주자들이 총출동하는 ‘슈퍼 전대’가 국민들에게 ‘스몰 전대’로 외면받는다면, 두 주자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도 침체의 늪을 벗어날 기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발 끈을 고쳐 맨 두 사람의 새해 행보에 열린우리당의 운명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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