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산 풍속화에 서양이 반했다
  • 성우제(자유 기고가) ()
  • 승인 2006.01.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캐나다 왕립 박물관, ‘한반도가 낳은 가장 세계적인 화가’ 김준근 특별전 열어

 
이름 김준근. 호 기산. 생몰연대 미상. 구한말 풍속화가. 김준근에 관해 한국에서는 이 정도 정보밖에 없겠지만, 서양에서 그는 가장 유명한 조선의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다. 1895년에 이미 서구에서 개인전(독일 함부르크 민속박물관)을 열었으며 연구서만 해도 수십 권을 헤아린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독일 뮌헨 민속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영국도서관, 프랑스 기메 국립박물관 등 그의 작품을 수백 점씩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의 면면만 보아도 ‘한반도가 낳은’ 가장 세계적인 화가로 꼽힐 만하다.

기산 김준근이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왕립 온타리오 박물관(ROM:www.rom.on.ca)에서 새로운 면모로 재탄생했다. ROM이 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진행 중인 재건축 프로젝트(르네상스 ROM)를 기념하는 ‘대표 선수’로 선발되어 특별전을 열고 있는 것이다. 제목은 ‘1900년대의 한국:기산의 풍속화’. 

지난 12월26일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어 캐나다 미술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동아시아 갤러리의 특별 전시실에서, ROM이 보유한 기산의 작품 28점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삼성전자 후원으로 이루어진 이 특별전은 오는 9월4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처럼 생생하게 재현된 구한말  풍경

기산은 구한말 부산·인천·원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만난 외국 선교사나 외교관 들이 주문한 작품을 주로 그렸다. 외국인들은 귀국 기념으로 가져갈 작품을 기산에게 의뢰했으며, 그는 종이 위에 구한말의 사회 풍속을 사실적으로 옮겼다.  기산의 작품은 그림 엽서와 같은 구실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연 날리는 모습, 쟁기질 하는 모습 등 구한말의 풍경을 사진처럼 생생하게 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수묵으로 그린 작품도 간혹 눈에 띄지만 작품은 대다수가 화려한 채색화이다.

 
전세계 유명 미술관에 산재한 수천 점에 이르는 기산의 작품 중에서도 이번에 ROM이 공개한 작품은 좀더 특별하다. 우선, 작품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 다른 미술관들이 소장한 작품은 대부분이 15×20cm의 소품이었다. 이와 달리 ROM의 소장품은 71×123cm로 기산의 작품 가운데 가장 크다. 작품 자체가 크다 보니 기산의 장기, 곧 당대의 풍경이 훨씬 선명하게 살아나고 있다.

다음은, 기산의 작품 28점 가운데에 한반도 지도가 들어 있고, 작품들이 무엇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궤도 형태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ROM의 기산 작품은 한국을 캐나다의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ROM 동아시아 담당 수석 학예연구사 클라스 루덴비크 박사와 함께 한국관 및 기산 특별전을 기획한 한희연씨(토론토 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동양미술사)는 “기산의 작품은 조선 사회 모습을 짤막한 설명과 함께 소개하는 슬라이드 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한씨는 기산 특별전의 도록을 함께 제작했으며, 연구 성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기산의 작품이 좀더 각별한 세 번째 이유는, 캐나다 출신인 제임스 스카스 게일(1863~1934)과의 관계 때문이다.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게일은 한국 최초의 서양문학 번역서인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번역한 주인공. 기산은 원산에서 출판된 이 책에 삽화를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천로역정>의 원본도 함께 나와 있다.

기산 특별전 전시장에서 만난 미국인 세실리아 구엘레트씨는 입양한 한국 출신의 딸과 함께 기산의 작품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8세가 된 딸아이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워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지난 12월26일 처음 모습을 드러낸 ROM 동아시아관에서 한국관은, 그 규모는 조금 축소되었으나 ROM 특유의 탁월한 전시 디자인에 힘입어 한국의 문화사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1234년에 발명된 금속활자가 소개되어 있는데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2백년이 앞선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