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에 ‘올인’하라”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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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버거 전 미국 안보보좌관, ‘북한 범죄 국가론’ 펴는 강경파 비판

 
클린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한때 뉴욕 타임스에 의해 ‘핸리 키신저 이래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안보 보좌관’이라는 평까지 얻었던 새뮤얼 버거 전 미국 안보보좌관이 ‘북한 범죄 국가론’으로 대표되는 미국 행정부 내 강경 기류에 일침을 놓았다. ‘지금은 핵 협상에 집중할 때이지, 괜스레 분란거리를 만들어 협상을 어려움에 빠뜨려서는 안 될 때’라는 것이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1월12일, 동아시아재단 산하 동아시아협의회가 ‘미·중 관계와 한반도’라는 주제로 열었던 정례 세미나에서 나왔다.

이 날 세미나에서 버거 씨가 행한 강연 요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미 관계의 현황과 과제를 짚은 것이요, 다른 하나는 미·중 관계를 전망하는 대목이다. 미국 행정부 내 강경파에 대한 버거 씨의 ‘쓴소리’는 강연 전반부에서 나왔다.

버거 씨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로 이어지는 미국 내 북핵 ‘협상파’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으로 강연의 운을 뗐다. 두 사람에 의해 대표되는 미국 정부의 ‘새 접근법’이 지난해 9월 6자 회담에 중대한 진전을 이루게 한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틈이 벌어지는 듯했던 한·미 동맹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미국측 협상 대표로 활약해온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에 대해 ‘부지런하고 성공적인 노력을 펼쳤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행정부 내 강경파에 대한 비판은 바로 그 다음에 나왔다. ‘가장 중대한 안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핵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손상시키는 이슈를 다룰 때라도 6자 회담 내의 이슈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북한, ‘핵 물질 슈퍼마켓’ 될 수도 있다”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민감한 사안임을 감안해 그 일부가 강연 당일 공식 배포한 원고에서는 일부 빠졌다. 하지만 당초의 강연 원고에는 최근 조성된 대북 강경 기류에 대해 훨씬 더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 ‘솔직히 말해 요즘 미국의 대북 정책 결정을 보고 있으면 심히 걱정스럽다(disturbed)’라거나, ‘협상을 어렵게 하거나 손상시키는 다른 이슈를 이 시점에서 부채질하지 말라’ 같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강연이 끝나고 약 30분간 진행된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버거 씨는 현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북한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북한을 국제 경제에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시 행정부가 지난 2002년 가을부터(이때 우라늄 프로그램을 둘러싼 북·미 양측의 설전이 있었다) 지난해 9월 베이징 회담에서의 ‘공동 선언’이라는 진전을 이루기 전까지 약 2년을 완전히 허송세월했다고 몰아세웠다.

한편 그는,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인 안보 정책의 대변자답게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핵무기 그 자체는 물론 핵 물질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북핵 문제 해결이 중요한 이유는, 문제를 풀지 못할 경우 북한이 ‘핵 물질의 슈퍼마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날의 강연에서 또 하나 참석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던 대목은 미·중 관계에 대한 전 미국 국가안보 보좌관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는 ‘현 미국의 정책 기조가 일본을 도와 중국을 봉쇄하려는 것 아니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일본·타이완·인도 들을 키워 중국을 봉쇄하려 든다면 이는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아울러 그는 강연에서, ‘미·중 관계가 어려워지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운신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한·미·일 3국이 모두 ‘윈윈’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지나친 불안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새뮤얼 버거 씨는 현재 경제·안보 문제에 대한 자문에 응하는 국제 컨설팅 회사 스톤브리지 인터내셔널의 회장을 맡고 있다. 미국 하버드 법대 출신인 그는, 클린턴 정부에 합류하기 전에는 오랫동안 법률 회사에 몸담았지만 미국 내에서 ‘정통 안보 인맥’을 잇고 있다. 그는 앤서니 레이크(클린턴 정부 1기 때 국가 안보 보좌관)를 보좌했으며, 레이크는 바로 핸리 키신저의 측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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