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기는 정부 하기 나름
  • 파리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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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조세·육아 지원 정책 ‘순산’…EU 내 출산율 2위로 ‘성큼’
 
클레망 도피넬 프랑스 가족·복지부장관 보좌관(30)은 미혼이라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많이 낸다. 그가 한 달에 내는 세금은 3백 유로가량. 결혼해 아이 셋을 둔 그의 친구는 한 달에 60유로만 내면 된다. 프랑스 정부가 가족 수에 비례해 세금을 덜 걷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세수 감소액은 한 해 1백27억 유로(15조원가량)나 된다.

아이가 많다고 양육비 부담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도피넬 보좌관은 “프랑스 중앙정부는 연간 4백40억 유로(50조원가량)를 아이 수에 비례해서 가족과 미혼모에게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도피넬 씨 친구는 아이 셋을 둔 덕에 생활비까지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살 집이 없는 가구를 위해 해마다 75억 유로를 맞춤형 개인주택 지원금으로 추가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많이 낳는, 프랑스로서는 마뜩지 않은 결과도 빚어진다. 이 때문에 앞으로 프랑스의 인종 구성이 바뀔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온다. 

아무튼 프랑스 정부가 1990년대부터 막대한 재정 자금을 쏟아 부으며 일관되게 추진한 출산 장려책이 결실을 맺고 있다. 프랑스가 젊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생아 수가 눈에 띄게 늘면서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프랑스 아기는 80만7천4백명으로 2004년(79만7천4백명)보다 1만명가량 늘었다. 지난 20년 동안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2004년의 경우도 신생아 수가 2003년보다 3천4백명가량 늘어났다. 신생아가 꾸준히 늘다보니 총인구도 증가했다. 올해 1월1일 프랑스 총인구는 6천2백90만명으로 지난 1년 동안 36만7천6백명이 늘어났다. 이 가운데 신규 이민자 수는 채 10만명을 넘지 않았다. 자연 증가분(신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수치)이 27만명을 넘었던 것이다.

가족 수에 따라 세금 부과…무자식 부부 ‘불이익’

프랑스 출산율은 지난해 여성 1인당 1.94명까치 치솟았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 다음으로 높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는 낙태와 피임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아직까지 출산율이 다른 EU 회원국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EU 평균 출산율은 1.5명에 불과하다. 출산율이 2004년 1.16명까지 떨어진 한국 현실을 감안하면 부러운 수치다.

 
프랑스를 부러워하기는 저출산으로 고민하고 있는 EU 회원국들도 마찬가지다. 이웃 나라 독일은 출산율이 1.34명(2003년 조사)에 불과하고 영국은 1.79명(2004년 조사)에 그쳤다. 프랑스 출산 정책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 공신은 프랑스 가족·복지부다. 파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정부 기관은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가족·복지부는 출산 장려·사회적 불평등 해소·남녀 불평등 해소·가족 결속·사회 결속을 5대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최우선 정책 목표는 출산율 유지다. 출산 장려라는 정책 목표를 이루기 위해 3대 원칙을 설정했다. 가족 수에 따라 세제 혜택(가족주의)을, 소득과 관계없이 세제 혜택(보편주의)을, 미혼모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별도 지원하는(사회통합) 것이다.

구체적인 실현 방안으로 가장 먼저 손꼽는 것이 재정 지출 확대다. 프랑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가족에게는 아이 수에 따라 매달 양육비를 지급하는가 하면 세금 부담액을 크게 줄여준다. 중앙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탁아소와 유치원 시설을 지속적으로 늘렸다. 프랑스 탁아소와 유치원 시설은 거의 국·공립이고 민간이 설립한 곳은 없다. 아이 부모는 소득 수준에 맞춰 유·무료 탁아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내년에는 출산율 2.0명 넘어설 듯

자녀를 두고 출장이나 외출해야 할 때에는 보모를 부를 수 있다. 보모 수당은 정부가 지불한다. 보모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 보모로 취업하려면 어린이보호부가 실시하는 60시간 교육을 받고 국가 공인 보모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9월 학기가 시작할 때 학기 지원금 명목으로 학생 한 명당 2백80유로가 나온다.
직장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 힘쓸 수 있도록 모성 보호 관련 법규도 잘 갖춰져 있다.

 
직장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8주 동안 출산휴가를 다녀올 수 있는데 봉급은 정부가 지급한다. 기업은 아무런 경제적 부담이 없으므로 출산휴가를 가려는 여성에게 불이익을 줄 이유가 없다. 지난 2002년부터는 남성에게도 출산휴가로 2주를 부여하고 있다. 도피넬 가족·복지부장관 보좌관은 “새 아이를 얻은 프랑스 남성 70%가 출산휴가를 받는다. 앞으로 이 비율은 늘어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프랑스 가족 정책은 중앙 정부가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지만 사회보험·지방자치단체(3만8천 개)·협회(탁아소관리협회나 가족협회)·기업·유럽연합도 든든한 지원군단이다. 탁아소관리협회를 비롯한 가족 관련 협회들은 1901년부터 프랑스 가족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업은 지난 2002년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해 탁아 시설을 늘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는 자금 공여를 포함해 회원국의 가족 정책을 간접적으로 돕고 있다. 

프랑스는 탁아시설 확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전 국민의 25%가 아직 탁아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시설과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이용료 일부를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탁아소 한 명당 하루 60유로를 내야 하는데 66%를 국가가 부담하지만 나머지 34%를 이용자가 내야 한다. 소득원이 없는 최하위 계층에게는 부담이 되는 액수다. 아이가 3세가 되면 유치원에 입학한다. 입학료나 수업료가 전액 면제되는 프랑스 유치원은 유아 교육과 함께 무료 탁아소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도피넬 보좌관은 “프랑스 인구 정책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 만족할 단계는 아니다. 인구 감소를 막으려면 여성 1인당 출산율을 2.1명까지 올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프랑스 출산율이 2007년쯤 2.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프랑스는 인위적으로 출산을 장려해 저출산·고령화라는 문제를 해결한 최초의 국가가 된다.

 
한국 정부는 이런 프랑스가 부러울 만도 하다. 당장 2007~2010년 추진할 ‘저출산·사회안전망 개혁 방안’에 소요될 예산 30조5천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4년에 걸쳐 지출할 저출산 대책 예산(사회안전망 예산 제외)은 2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출산 장려 예산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설령 20조원을 한 해에 쏟아 부어도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벌써부터 소득공제 혜택을 줄여 재원을 마련하려는 한국 정부는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출산 대책에 소요되는 엄청난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증세 없이는 저출산 대책도 없다’는 국민적 합의부터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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