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개’가 되기를 거부하다
  • 오다기리 히로무 (저널리스트 · 팔레스타인 전문가) ()
  • 승인 2006.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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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현지 르포/주민들, 하마스 선택해 ‘독립 국가 수립’ 의지 강력 표출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가 창설한 팔레스타인의 집권 여당 파타. 이 아성에 선거로 도전한 하마스는 국제 사회에 ‘테러 조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외부에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기이한 존재로 부각되어 왔지만, 그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2월5일 세계 언론에 소개된 하마스 간부 알-자하르를 예로 들어 보자. 그는 터틀넥 상의에 자켓을 즐겨 입고 외과 의사로 오래 일해온 인물이다.

하마스 승리 사실을 보도하면서 언론들은 ‘(집권 여당) 파타가 부패해 하마스가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라는 시각을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나는 이 논조에 짜증이 났다.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에 의한 ‘점령’ 문제였다. 그런데 어느새 팔레스타인의 내정 문제로 쟁점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파타의 10년 아성이 무너진 까닭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은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점령을 종결하지 않은 탓에 국가가 되지 못했던 이 ‘지역’은, 콘크리트나 검문소로 사방이 둘러싸인 채 항복을 강요당하고 있다. 해외에서 물자 반입하거나 반출할 때도 이스라엘의 허가가 필요하다.

팔레스타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치 정부 예산의 30~40%를 차지하는 국제 사회의 지원이 필수 불가결하다. 그 때문에 이번 선거에 앞서 유럽 주요국과 미국은 하마스가 이기면 그것을 단절하거나 대폭 삭감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상화(normalization)'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거론할 때 자주 쓰는 말인데, ‘위험 분자들을 순종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쓰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적당히 돈을 주고 경제적으로 안정시켜 주면 증오가 줄어들겠지’ 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의도는 빗나갔다. 결과가 ‘정상화 거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번 하마스 승리의 배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지난 1월25일 팔레스타인의 국회에 해당하는 ‘협의회’ 선거 당일, 예루살렘 인근 검문소를 찾았던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11월 하순에도 같은 곳을 취재했다. 당시에는 쓰이지 않았던, ‘터미널’이라고 부르는 현대적 검문소가 가동되고 있었다. 불과 1개월 반 사이에 큰 가건물 형태로 된 검문소는 철거된 것이다.

크림 빛깔의 새 건물을 짓기 위해 미국 자금이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세계은행을 통해 이스라엘 정부의 신형 터미널 건설 자금의 거의 절반을 팔레스타인에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염출한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를 일으키지 않으면  임금 수준이 높은 이스라엘에서의 취업도 포함한 경제 지원이 쉬워진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이 날은 선거 당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였던 탓에 이스라엘의 치안 담당자나 경비병은 터미널 건물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입구의 창밖에서 촬영 허가를 요구하면 금속 울타리로 만든 회전문 위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영어로 ‘건물 내부에서 촬영 할동은 할 수 없다’는 내용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스라엘을 담당하는 직원의 안전을 고려해, 그들이 팔레스타인인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장치가 개발되었다는 것은 통설로 되어 있다.

이런 지경이 될 때까지도 파타는 지지를 받아왔다. 아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사태는 아직 개선될 수 있다’는 소원이 ‘현실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므로 파타는 지난 10년 동안 살아남은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의향에 맞추어 파타가 충견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경제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팔레스타인은 토지도 경제시스템도 잃어버렸다.

그러니 이같은 사태를 ‘후방 지원’해오던 파타가 지지를 잃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파타를) 대체할 수 있는 정당도 없고 강경책을 취하는 당파가 정권을 노리면 일상 생활도 위험해진다’고 생각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파타를 버리는 것을 주저해왔던 것이다.

 
최근 들어 점령 체제가 강화되면서 팔레스타인의 경제 활동은 더욱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 ‘경제 지원’이라는 ‘마약’ 없이는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하마스의 약진이 의미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 대다수가 ‘노(NO)’라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나 다름 없다.

‘가자 지역 철수’라는 이름으로, 점령지를 점거했던 이스라엘인 거주 지역을 일부 철거하고 이스라엘군을 재편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절대적 우위에 서게 되었다. ‘이스라엘에 의한 이스라엘’을 위한 ‘부분 철수’를 국제 사회는 ‘평화로 가는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이 성공을 토대로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는 국경선의 고정을 서둘렀다.

그러나 올해 1월4일, 이를 진두지휘하던 샤론 총리가 쓰러졌다. 그가 정치적 생명을 잃은 후 이스라엘의 큰 변화는 ‘샤론 노선’을 계승할지 여부에 달려 있다. 오는 3월 말 이스라엘에서 진행되는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승리해도 팔레스타인과의  국경선 획정 노선에 관해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남은 ‘쓰레기 같은’ 좁은 땅에서 팔레스타인은 독립을 향해 움직여왔고 그와 때를 맞추어 하마스가 등장한 것이다.

미국·유럽, 자금 원조 완전 중단은 못할 듯

나는 미국이 주도해온 팔레스타인 정책 노선에는 ‘팔레스타인은 저항하지 못한다’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군사력 면에서 이스라엘과 압도적인 차이가 있는 탓에 대다수 팔레스타인인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국제 사회의 개입’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유럽과 미국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금 원조를 전면적으로 끊어버릴 수 있을까. 이 또한 간단치 않다. 노골적으로 원조액을 삭감하면  이슬람 사회가 강하게 반발할 뿐 아니라 자기네 나라 국민들부터의 지지마저 떨어질 수 있다.

선거 후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장기간 정전 가능성을 시사하는 한편, 정규 팔레스타인군의 설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하마스가 민주주의 테두리 안에서 미국·유럽 각국에  지속적으로 안티 테제를 던져 나가면 불리한 국면을 타개할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말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간접적으로 파타를 지원하기 위해 선거 막바지 무렵에 2천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지금의 하마스는 이런 악조건에서도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는 민주적 투표 과정을 거쳐  팔레스타인의 여당으로 우뚝 섰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인은 국가 수립을 향한 확실한 의사 표시를 국제 사회에 던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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