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유선 사업도 넘본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2.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 성장 전략' 보고서 입수...컨버전스추진본부 구성하고 홈 마켓 시장 공략 노려
 
무선통신 시장의 최강자 SK텔레콤이 유선 사업까지 넘보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SK텔레콤 대외비 보고서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유선 영역인 홈 마켓 시장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U비즈본부 산하 기획팀이 작성한 ‘U-프로젝트 TF 보고’에서는 ‘당사(SK텔레콤)는 H/M(홈마켓)에 진입함에 있어 미보유 R&C(자원과 역량)를 확보하고 양강(KT와 SK텔레콤)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consolidation(합병)을 주도하고 각 영역 메이저 플레이어와 전략적 제휴 구도를 형성해야할 것’이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5월 말 작성된 이 보고서에 따라 U비즈본부는 유선통신 업체(케이블TV 방송사와 초고속통신회사)를 매수·합병(M&A)하거나 전략적 제휴 계약을 맺어 통신 시장 전 영역에서 유선 통신 시장의 절대 강자인 KT와 맞서는 방안을 찾았다. 이를 위해 관련 업체들을 접촉했다. 케이블TV 방송사들은 지난해 SK텔레콤과 사업 제휴라는 낮은 수준의 협력에서부터 합병이라는 높은 단계의 제휴까지 논의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3월 U비즈본부를 구성했다. U비즈본부에는 SK텔레콤이 보유한 자원과 역량을 재평가하고 현재 핵심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신규 업종을 발굴하라는 특명이 주어졌다. 기획팀·사업팀·개발팀·디지털홈 개발팀으로 지난해 꾸려진 이 조직은 올 1월21일 컨버전스추진본부로 재편되었다. 재편 전 SK텔레콤 U비즈본부장을 맡았던 SK CNC 주형철 상무는 “(통신 분야는) 시장과 기술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환경·경쟁 조건에 맞게 미래 성장 전략을 짜야하는 것은 통신 업체가 당연히 수행해야 할 핵심 과제다. 우리도 성장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매수·합병, 제휴, 제품 개발같은 갖가지 방안의 전략적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전략 보고서를 작성했다”라고 말했다.

2차 운영위원회 토의 자료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홈 마켓 시장을 정의하고 시장 구조를 분석한 내용과 함께 SK텔레콤의 전략 방향을 담고 있다. SK텔레콤이 이렇게 몸부림치는 것에는 물론 절박한 사정이 있다. 핵심 사업인 휴대전화 서비스 시장이 성장 시장에서 성숙 시장으로 바뀌면서 성장세가 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통신과 방송이 융합하고 유무선 통신이 하나로 합쳐지는 등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무선 통신 영역에 한정한 사업 구조로는 성장은 고사하고 기존 경쟁에서도 뒤처지리라는 위기의식이 SK텔레콤으로 하여금 유선 사업 진출까지 검토하게 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초까지 유선·방송·복합 네트워크·광대역 컨버전스 네트워크(BcN)를 각각 따로 추진했다. 하지만 마스터플랜이나 큰 그림이 없이 추진하다 보니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지는 이슈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U비즈본부는 이런 개별 사업을 홈 마켓이라는 개념으로 통합해 종합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부터 초고속 인터넷 업체 등 인수 검토

SK텔레콤이 유선 사업에 진출하려는 지난해 유무선이 통합하는 형태로 통신 환경이 바뀌는 것에 대응하려는 차원이다. 그런 목적에서 SK텔레콤은 초고속 인터넷 업체인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인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고 핵심 사업과의 시너지에 대해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현실화하지 못했다. 또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KT 메가패스나 파워콤과 경쟁해 경쟁 우위를 확보할 뾰족한 방안이 없었다. 

 
유·무선 통합과 함께 통신과 방송이 융합하는 것에 대응하고자 SK텔레콤은 복수 케이블방송사업자(MSO)를 인수하는 것도 검토했다. 3대 케이블TV방송사인 태광·C&M·CJ 가운데 한 곳과 QRIX·강남케이블·드림시티·아름방송 등 수도권 주요 케이블방송사를 함께 인수하면 SK텔레콤은 초고속 인터넷·방송·유선 전화 서비스(TPS)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나중에 무선 통신 역량까지 결합하면 단박에 KT와 맞서는 통신 강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케이블 방송사의 인수 작업도 불발에 그쳤다. 인수 가격이 초고속 인터넷 업체 못지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초 C&M이 경기방송을 인수할 때 가구당 63만원을 쳐 총 1천8백30억원을 냈다. 태광은 21개 지역 케이블 방송사를 거느리고 가입자 수가 2백60만명에 이른다. 가입자가 2백60만명이나 되는 태광의 인수 금액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조7천억원에 이른다. 또 SK텔레콤를 비롯한 통신 업체는 케이블 방송사 지분을 보유하는 데 법적 제약이 있었고 규제 환경 또한 워낙 불확실해 위험도가 컸다.

SK텔레콤은 디지털 홈·무선 랜(WLAN)·광대역 컨버전스 네트워크로 구성된 컨버전스 영역에서도 유선 인프라를 갖지 못해 비즈니스 모델이 취약했다. 콘텐츠 사업도 전략이 미흡하고 협상력이 취약하다 보니 시장 진입이 여의치 않았다.

터줏대감 KT, 촉각 곤두세워

U비즈본부는 지금까지 겪었던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홈 마켓이라는 개념으로 통합한 전략을 수립하고자 했다. 갖가지 재화·서비스가 디지털화하고 광대역 네트워크가 가정에 보급되면서 가정은 컨버전스가 구현되는 핵심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교육·음악·영상·의료·출판 시장이 디지털화하면서 가정 안으로 침투하고 있다. U비즈본부는 컨버전스가 이루어지는 미래 시장인 가정을 홈 마켓으로 규정했다. 2010년 홈 마켓 시장 규모를 21조~23조 원으로 커지리라고 예측했다. 유선 통신과 방송 시장은 13조원이고 컨버전스 영역은 8조~19조 원으로 전망했다.

U비즈본부는 홈 마켓을 미래 성장 시장으로 판단하고 시장 접근 전략을 수립하고자 했다. 우선 SK텔레콤은 TPS(초고속 인터넷·방송·전화 일체 서비스)를 통해 홈 마켓에 진입한 뒤 나중에 컨버전스 영역으로 확장해 성장을 추구하고 핵심 사업과의 컨버전스에 대비한다는 단계별 미션을 수립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SK텔레콤은 부족한 콘텐츠·유선 접속망·가구 가입자를 확보하고자 유선 통신·방송 영역에서 합병 전략을 수립하고 합병이 이루어지면 KT와 양강 구도를 만든다. 또 방송·콘텐츠를 비롯한 영역별 주요 사업자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해 KT를 고립시킨다는 전략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현실화하지 못했다. U비즈본부가 결성되기 전에 겪었던 시행착오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경영적 판단을 내려야 할 만큼 투자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대형 통신 업체가 방송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정부 규제도 풀리지 않았다.

매수·합병이 여의치 않자 U비즈본부는 주로 MSO와 접촉하면서 사업 제휴를 모색했다. MSO가 필요한 통신 솔루션과 콘텐츠를 SK텔레콤이 제공하고 SK텔레콤이 필요한 유선 노드는 MSO가 제공하는 형태로 사업 단위에서 제한적으로 협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핵심 사업으로 육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주형철 전 U비즈본부장은 “디지털 액자·홈 네트워크·멜론(음원 서비스)처럼 제한적으로 사업화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수·합병이나 기업 차원의 전략적 제휴를 실현시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U비즈본부가 당초 기대보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SK텔레콤은 지난 1월21일 대규모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U비즈본부가 추진한 디지털 액자·홈 네트워크·멜론을 사업부나 마케팅 부서로 이관하고 나머지 기획 업무와 기술 개발 부문을 따로 모아 컨버전스추진본부를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이우승 디지털홈개발팀장을 빼고, 본부장은 물론 기획팀·사업팀·개발팀을 이끌었던 팀장급을 갈았다.

이주식 초대 컨버전스추진본부장(상무)은 “미래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갖가지 사업을 추진했으나 기대보다 성과가 미흡했다. 그러다 보니 큰 그림을 다시 그리고자 팀이 재편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상무는 U비즈본부로부터 브리핑도 받지 않고 있다. 선입견을 갖지 않고 백지 위에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팀장급이 대폭 물갈이되었고 팀원 상당수가 바뀌는 바람에 이 팀이 가동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또 지금까지 제약 조건으로 작용했던 주변 여건도 변한 것이 별로 없다. 따라서 조만간 SK텔레콤의 유선 사업 전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KT는 SK텔레콤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T 고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유선 사업에 진출한다는 것은 KT에게 큰 위협이다. 현금이 풍부하고 무선 통신 서비스 경험을 갖춘 SK텔레콤은 시장 진입과 함께 KT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이 유선 사업에 진출하려면 넘어야할 난관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SK텔레콤이 신규 사업을 구상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나오는 것이 유선 사업 진출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컨버전스 환경에서 유선망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과연 언제 유선 사업에 뛰어들까. 그때가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으나, 언젠가 유선 통신 시장에 진입한다는 그 자체는 그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