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한 ‘토종 신약’ 줄줄이 나온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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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염 치료제 등 99가지, 신물질 탐색·임상 진행 중, 국제 시장 겨냥해 미국·유럽 등지서도 연구

 
동아제약은 요즘 흥분의 도가니다. 이 회사의 ‘흥분제’는 지난 1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 자이데나는 동아제약이 8년을 공들여 개발한 첫 신약이자 세계에서 네 번째로 출시한 발기부전 치료제다. 자이데나 PM(제품 매니저) 박유정씨는 “우리 회사의 첫 신약인 만큼 관심과 기대가 남다르다. 전 직원이 자이데나의 향방에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있다”라고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쟁쟁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선점하고 있어 이들과 경쟁하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출발이 좋다. 자이데나는 출시 한 달 만에 20억원어치나 팔려 나갔다. 약사와 환자들의 문의 전화도 쇄도하고 있다. 박유정씨는 “경쟁 제품에 비해 가격이 30~40% 싼데다 부작용이 적은 토종 신약이어서 시장에서 더 신뢰하는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발기부전 치료제의 ‘맏형’ 격인 비아그라는 10여 년에 걸쳐 개발되었는데 자이데나는 개발 기간을 8년으로 단축했다. 투자 기간과 비용이 적게 든 만큼 값도 저렴하게 책정했다.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거친 제품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제 막 시장에 얼굴을 내민 터라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런 기세라면 자이데나만으로 올 한 해 2백억~3백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동아제약은 기대하고 있다. 자이데나는 전립선비대증, 폐동맥고혈압 등에도 우수한 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장차 더 큰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기대도 모은다.

신약 때문에 들떠 있는 국내 제약사는 동아제약만이 아니다. 올해를 기점으로 국산 신약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는 한둘이 아니다.

유한양행 레바넥스, 연간 수백억원 매출 기대

지금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허가받은 국산 신약은 모두 10종(0쪽 표 참조). 이 가운데 자이데나와 ‘레바넥스’가 올해 신약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2~3년 안에 나올 국산 신약도 줄지어 서 있다. 선플라주·팩티브를 비롯해 기존에 출시된 신약들도 올해 적응증을 넓히고 수출을 늘려 국내외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겠다고 벼르고 있다.

자이데나에 이어 올해 다크호스로 떠오를 국산 신약은 유한양행의 레바넥스. 유한양행이 15년간 4백억여 원을 투자해 개발한 신약이다. 차세대 소화성 궤양 신약으로 불리는 레바넥스는 국내 시장도 크거니와 장차 세계 거대 시장을 노린 ‘블록버스터’다. 이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십이지장궤양 적응증에 대한 시판 허가를 지난해 이미 취득했다. 십이지장궤양보다 더 큰 시장인 위염과 위궤양 시장까지 함께 노리기 위해 허가를 받고도 시판을 미루고 있다. 현재 진행하는 위염 및 위궤양에 대한 제3상 임상(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이 마무리되는 대로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레바넥스가 십이지장궤양뿐 아니라 위염과 위궤양 등에도 적용될 경우, 유한양행은 이 약만으로 연간 수백억원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소화성 궤양 치료제의 경우 국내 시장 규모만 연간 3천억원이 넘고, 세계 시장 규모는 2백50억 달러(약 24조원)에 이른다. 특히 레바넥스는 기존 경쟁 약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어 세계 시장에서도 어깨를 겨눌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레바넥스는 다른 약에 비해 치유율과 내약성이 우수할 뿐 아니라 약효 발현이 빠르다. 또 음식물 섭취와 관련 없이 식전에도 복용할 수 있어 편리하고, 위산은 억제하되 위 점막을 보호하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혁신적인 약이다”라고 자랑했다.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신약’으로 발돋움할 제품 많아

국산 신약의 세계 진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LG생명과학이 개발한 항생제 팩티브다. 팩티브는 국내 개발 의약품 가운데 최초로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글로벌 신약. 2004년 9월 미국 시장에 발매한 이후 꾸준한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세계 곳곳에서 약효를 인정받고 있다. LG생명과학 관계자는 “2005년 말 기준으로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팩티브는 7개국에서 허가를 받았다. 올해 말이면 중국·러시아·브라질 등에서도 발매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일본에도 기술 수출 계약을 완료하고 허가 등록을 진행하고 있다. LG생명과학은 2010년에는 팩티브로 인한 매출이 1천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에서 발생하는 매출 대부분이 로열티 수입이어서 매출액은 곧 이익으로 직결된다. 이 약 개발에 LG생명과학이 투자한 돈은 5백억원 남짓이다.

국산 신약 열 가지 가운데 자이데나·레바넥스·팩티브를 제외하면 블록버스터급 약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다수가 국내 시장에서조차 변변한 대접을 못 받아 연 매출 30억 원을 넘지 못했다. 잘 나가는 감기약 하나가 연 매출 60억원 이상인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적응증이 한정되어 있어 시장 규모가 적은 데다 외국산 신약에 밀렸던 탓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이들도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겠다는 각오다. SK케미칼이 개발한 선플라주는 현재 위암에 국한된 적응증을 폐암 등으로 확대하기 위해 추가 임상을 벌이고 있다. 동화약품의 항암제 밀리칸주와 종근당의 캄토벨주도 적응증을 확대 연구하는 동시에 세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내년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 출시될 국산 신약은 더 많다. LG생명과학은 국제 규격에 맞추어 서방형 인성장 호르몬(서서히 방출되는 인간 성장 호르몬)을 개발해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기존의 성장 호르몬은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데 비해 이 제품은 일주일에 한 번만 주사해도 약효가 지속되는 새로운 개념의 치료제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한 임상 2상 시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었고, 현재 마지막 단계인 3상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어 내년께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전망이다.

녹십자는 골다공증 치료제와 유전자 재조합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두 치료제 모두 현재 제3상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된 녹십자의 골다공증 치료제는 손상된 뼈를 재형성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골다공증 치료제는 예방 및 진행을 늦추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보다 개발 속도가 빠른 혈우병 치료제는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SK(주)에서 개발중인 간질 치료제와 우울증 치료제도 글로벌 신약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 FDA 허가를 받기 위해 임상 2상에 있다. 

신약 개발 업체에 ‘세제 지원’해야

하지만 국내 제약 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신약 개발에 더 분발해야 한다. 적잖은 국내 제약사들이 선전하고는 있지만, 다국적 제약사 수준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딸린 기사 참조). 세계적으로 전임상(동물을 사용한 임상 시험)을 포함해 개발 중이거나 허가신청 중인 신약은 5만5천여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신물질 탐색부터 임상 3상까지 진행 중인 품목이 35개 기업에서 99가지 정도다(식약청 2005년 집계). 올해 국내에서 출시될 신약도 대부분 다국적 제약사들의 제품이다(표 참조). 세계 12대 제약 소비국이라는 시장 지위에도 한참 뒤떨어진 수준인 것이다.

국내 제약사 대다수는 위험이 뒤따르는 신약 개발보다는 수입 약이나 카피 약에 기대어 왔다. 미국 의약연구제조자협회의 2005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1개의 신물질이 신약으로 이어질 확률은 1만분의 1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에는 연간 1조원 이상의 R&D(연구개발) 투자와 10년 이상의 개발비가 투입된다. 국내 제약사에게 신약 개발은 난공불락의 고지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약 개발 업체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세제 지원과 같은 인센티브를 준다면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도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여재천 사무국장은 “평균치로 산정해 보면 신약 하나가 성공할 때 국내외 시장에서 연간 1천7백억원 매출과 2백60여억원 이익이 발생한다. 잘 만든 신약 하나가 국가의 효자 상품이 될 수 있다. ‘신약개발진흥촉진법’ 등을 제정해 제약 산업을 수출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차세대 성장 동력 발굴에 목마른 한국의 처지에서 국산 신약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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