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예술이 맞나요?”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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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는 미술관’팀, <명륜동에서 찾다>전 열어…동네 골목·담벼락 곳곳에 작품

 
“거, 내가 좀 칠해 봐도 돼?” 설치 미술 작가 이순종씨가 담벼락에 페인트칠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할머니가 망설이다가 말을 건넸다. “한번 해보세요.” “내 맘대로?” “그럼요.”

지난 2월15일 오후, 성균관대 뒤편에 자리 잡은 명륜3동 동네는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막바지 작업으로 부산스러웠다. 이곳에서 2월16일부터 3월12일까지 <명륜동에서 찾다>전이 열린다. 동네 전체를 미술관으로 꾸미는 일종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다.

‘미술관 유람’은 바코드 문양으로 도배한 마을버스를 타면서 시작된다. 버스 리노베이션은 설치 작가 양주혜씨 작품으로, 버스 광고판의 시각적 횡포를 고발하는 뜻을 담고 있다. 마을 중간쯤에서 내린 ‘관객’들은 동네 곳곳을 ‘그냥’ 헤매고 다니면 된다. 골목과 계단, 담벼락과 길바닥 등에는 조각가 안규철씨(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비롯한 미술가 19명의 작품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기억·정체성·풍경·시나리오·소통이라는 다섯 주제에 동네 모습과 주민들의 사연을 담았다.

“도대체 뭘 감상하란 말이야.” 동네를 둘러본 ‘관람객’이 지나가면서 투덜댔다. ‘이것도 예술 맞나요?’ 이는 전시를 기획한 ‘접는 미술관’의 홈페이지(www.collapsiblem.org )에 떠 있는 불만 중 하나다.

동네 입구에서 입장료 내면 지도 한 장 내줘

 
일반적인 미술 전시회를 상상하며 명륜동에 갔다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생각할 듯하다. 당연하다. <명륜동에서 찾다>전은 미술(관)에 대한 기존 상상을 전복시키는 전시이므로. 또 이 전시가 일반적인 공공 미술과 다른 점은 작품 전체가 쌍방향적으로 기획·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동네와 주민들은 단순한 공간이나 관객이 아닌 작품이자 주인공으로 참여한다.

“그냥 보면 볼 것이 없다. 하지만 동네 깊숙이 들어가면서 놀라운 광경들을 목격할 수 있다. 관객들이 기억을 환기하고, 서울에 이런 광경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 전시가 제값을 한 것이다.” 전시 기획자 최소연씨(39)의 말이다.

 
<명륜동에서 찾다>전은 미술관 프로젝트 집단 ‘접는 미술관’ 팀이 저지르는 올해 첫 사고다. 최소연씨의 지난해 2학기 성균관대 미술학과 강의가 출발점이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평범한 동네를 살아 있는 미술관(또는 박물관. 원래 미술관과 박물관은 같은 개념이며 영어 명칭도 같다)으로 꾸며보자는 제안에 동료 미술가들과 학생들이 동참하면서 일이 커졌다. 기획이 전시로 마무리되기까지는 6개월 정도가 걸렸다. 그 사이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네 번의 워크숍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도 주민 상당수가 이들의 실험 미술 프로젝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긴 최소연씨의 작업은 미술 동네 안에서도 생소하다. 화가 겸 설치 미술 작가로 활동하던 최씨가 미술을 넘어서 ‘미술관’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은 5년 전 뉴욕에서 국제 레지던스 과정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드나들며 그들의 기획 방식이나 마케팅 방식에 딴죽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술관 사진을 찍고 그 부분을 오려내어 접거나, 소장품을 패러디하는 식의 기획전을 시작했다.”

 
그녀가 주축인 접는 미술관 팀은 지금까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메트로폴리탄 미술관·휘트니 미술관·자연사 박물관과 한국의 삼성미술관 리움·해이리·인사동 쌈지길,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등을 ‘접었다’. 몇몇 미술관은 이들의 작업에 호응했지만 그렇지 않는 곳도 많아서, 2004년 말 루브르 앞에서 전시할 때는 거의 매일 경찰에 잡혀가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접는 미술관은 미술계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고, 현재 세계 곳곳의 미술가와 큐레이터 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명륜동에서 찾다>전은 미술관을 접고 다니던 이들이 드디어 진짜 미술관, ‘사람들이 살고 수많은 상점이 입점해 있으며 각종 네러티브가 숨어 있는 살아 있는 미술관’을 찾았다는 선포식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이곳도 ‘미술관’인 만큼 유료다. 돈을 내면 작품 지도를 한 장 받은 뒤, 동네 주민인 도슨트(자원 봉사 안내원)로부터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동네 출입하는 데는 돈을 받지 않는다.  문의 02-54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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