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숨통 조이는 개방압력
  • 金在日 기자 ()
  • 승인 1989.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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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訪美 계기로 본 韓⋅美 경제관계의 오늘과 내일

멀리 갈 것도 없다. 京畿道 安城邑에서 동북쪽으로 국도를 타고 20여킬로 들어가면 1백여가구 전체가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일죽면 신내리 지내마을에 도착한다.
  영근 알곡이 꽉찬 황금빛 들판과 이파리가 거의 떨어진 채 포도송이만 대롱대롱 달린 앙상한 포도밭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들판의 풍성함과 과수원이 초라함이 엇갈린다.
  포도밭에 들어서면 술냄새가 코를 찌른다. 군데군데 버려진 포도무더기와 하냥 가지에 달려 있는 포도송이들의 썩는 냄새다.
  예년 이맘 때 같으면 3분의 2 정도는 따냈을 텐데 겨우 1할 정도 거두었을까 말까 하다는 포도밭 주인 崔秉吉(51)씨의 말이다.
 

 버려지는 포도송이들 : 崔씨는 포도밭 2천3백평을 가지고 있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포도알에 금이 간 열과를 계약회사에서 양조용으로 2백만원어치 사갔으나 올해는 겨우 30만원어치만 수매했을 뿐이다. 포도주 수입이 내년부터 완전 자유화됨에 따라 계약회사가 양조용 포도 수매를 대폭 줄인 것이다.
  양조용으로 나가야하는 포도까지 시장에 출하되니 넘치는 물량으로 포도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출하물량을 조절하다보니 수확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올해는 장마에 이은 노균병과 흰가루병 때문에 포도잎이 미리 떨어져 포도알이 까맣게 영글지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작년 시장출하 가격은 1관 5천원이었는데 올해는 3천5백원으로 떨어졌다.
  “다노레트 품종을 많이 재배하는 이 마을의 경우 양조용 포도를 사가지 않기 때문에 양으로는 반절, 가격으로는 3분의 1정도를 내버리는 셈이다. 인건비와 농약값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다”고 崔씨는 허탈해 했다.
  안성 원예조합 일죽 지소장 金相玉(52)씨는 “일죽면 조합원 2백50가구로부터 매년 6백톤씨 사거던 계약회사가 올해는 30톤으로 수매량을 줄였다. 더구나 수매가격은 킬로당 9백원에서 2백원으로 떨어졌다”고 포도농사의 실정을 밝혔다.
  2∼3년동안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포도재배농민 대부분이 포도농사를 포기할 것이라며 마땅한 대체작물이 있으면 당장에라도 폐원할 사람이 많다고 金씨는 말했다.
  몇 년 전만해도 막연하게 느껴지던 미국의 수입 개방압력은 이렇듯 한국농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농업형태를 변경시킬 정도로 세차게 밀어 닥치고 있는 것이다.
  어디 농촌 뿐인가. 문구류, 봉제완구에서부터 냉장고, 컬러TV 등 가전제품과 승용차, 골프채에 이르기까지 공산품 시장개방으로 외제 사치품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와 과소비 성향을 부추기고 국민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흡사 ‘압력솥’을 연상케 하듯 미국의 한국에 대한 개방압력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 9월 초순과 중순 시장개방을 재촉하기 위해 로버트 모스배커 상무장관과 댄 퀘일 부통령이 각각 한국을 방문했고 이달초 칼라 힐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같은 목적으로 방한했다.    盧泰愚대통령의 방미와 관련해서도 시장개방에 대한 한⋅미양국의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늘어나는 對美흑자 : 이 판국에 또 무슨 양보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우리쪽에 있는 반면 시장개방과 보호주의 강화를 요구하는 미국 조야의 논리와 불만 또한 만만치 않다. 미 국무성 공식 간행물은 ‘미국은 해외원조를 통해 50∼60년대 한국경제에 크게 기여했으며 자금과 기술공급원으로서 그 경제발전에 촉매역할을 해왔으나 현재의 양국 경제관계는 커다란 무역불균형이 그 기조를 이루고 있다’며 한국이 미국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더많이 시장개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얼마전 폐쇄된 공장앞에서 데모하던 미국의 한 중년 노동자는 TV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한국에 종군해서 한국 국민의 목숨을 지켰다. 이제 한국의 수출품 때문에 실직자가 됐다. 살려줬더니 거꾸로 나를 죽이고 있다.”
  한⋅미 무역마찰의 시작은 1억6천3백만달러의 對美 무역흑자를 낸 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흑자폭이 커지면서 개방압력을 비롯한 양국간 무역마찰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의 대외무역이 늘어난 시기와 미국경제력이 정체 및 무역적자의 심각성이 논이 된 시기가 일치한 점도 통상마찰과 관련,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됐다는 측면도 있다.
  좀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미국이 제조업이 차츰 쇠락, 공산품 수출보다 농업국가⋅서비스국가로 변모해가고 있다는데 이른다. 이와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세계경제문제는 미국이 가장 큰 농업국이라는 사실로부터 기인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개방압력 지나치다’ : 아무리 그렇더라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언제까지 이렇게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전에 우선 개방압력이 정당한지와 우리쪽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짚어보기 위해서 한⋅미 경제관계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양국의 상호 무역규모는 60년도의 1억5천만달러에서 99년 3백40억달러로 늘어났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가장 큰 수출시장이자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입대상국이었다. 미국쪽에서 보면 한국은 7번째로 큰 수출시장이고 6번째로 큰 수입 대상국이다.
  상공부 통계에 따르면 대미 수출의존도는 65년 35%에서 70년 47%까지 올라가 최고치를 기록했고 80년에는 다시 26% 수준으로 내려갔다. 현재 한국은 수출의 3분의 1과 수입의 4분의 1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면 미국에 대한 수출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얼마만큼 기여했는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60년대 중반부터 펼친 수출 드라이브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미국이 한국의 가장 큰 수출시장이었다는 사실은 한국경제 발전에 대한 미국시장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한다.
  65년 한국의 국민총생산액(GNP)중 대미수출이 차지했던 비중은 1.6%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후 그 비율은 점차 늘어나 85년이래 작년까지 12% 이상의 수준에 이르렀다.
  수출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전제조업체 종업원의 약 40%를 차지한다고 볼 때, 미국시장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35%만 잡는다 해도 한국근로자의 14% 이상이 대미수출에 의해 고용혜택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수출이 한국 경제성장에 기여한 몫이 크다. 그러나 이른바 ‘종속 속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한국경제의 대미 일변도관계에서 일어나게 된 한국사회의 모순과 경제적 파행성을 지적하는 논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격다짐식의 개방압력은 옳지 않음에 틀림없다.
  산업연구원(KIET)의 金廷洙박사는 “과한 점이 많다”면서 “누구한테도 남의 시장을 열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더구나 301조 보복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金박사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이해는 된다고 말했다. 87년의 경우 한국은 1백83억달러 어치의 상품을 미국에 팔았는데, 미국이 87억달러어치밖에 한국에 못 팔았다면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노력은 당연하다는것.
  성균관대의 李大根교수는 미국의 개방압력에 대해 ‘지나치다’며 좀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우리는 농업부문과 전자⋅통신⋅특수중간재 등 첨단산업분야를 보호해야 한다. 어차피 자유무역주의가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승인받은 것은 아니다. 미국 스스로도 철강 등 특수분야를 보호하고 있지 않느냐”고 李교수는 말했다.
 

‘개방하면 2000년대 축산기반 붕괴’ : 미국은 그렇다치고 한국정부는 왜 계속 밀려왔는가? 우리측은 처음에는 버티는 듯 하다가 끝내는 싱겁게 내주어 버리는 관행을 되풀이해 왔다.
  한국에 대한 개방압력의 강화는 상당부분 정치적인 문재와 관련이 있다. 우리정부는 빈약한 권력의 정통성을 경제성장으로 보완하려고 했고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과장되게 했다. 이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필요 이상으로 우리경제를 경계하게 만들었던 점이 없지 않다.
  의회민주주의 파행성도 한가지 이유로 지적 될 수 있다. 과거의 무력하기만 한 국회는 일방적으로 행정부에 밀려 버팀목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부의 수입협상전략과 정직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쇠고기수입만 하더라도 선거 등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당초 스케쥴을 변경시키곤 함으로써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어려움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미국은 한국에 대해 통신시장, 지적소요권, 농산물 시장 개방요구에 그치지 않고 국내 경제정책에 대한 개입과 아울러 내수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일본에 대해 반도체시장 20%를 보장하라고 한 것처럼 일정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해줄 것을 강요할 것으로도 보인다.
  지난 7월 현대 우리나라의 상품시장 자유화율은 95.5%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공산품은 현재 98.7%로 거의 완전자유화 단계에 도달했고 농산물의 경우, 현재의 76.1%에서 90년 80.3%, 91년에는 84.9%로 올라가게 된다.
  시장개방이 될 경우 관련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대책을 세울 때다. 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결과가 아직은 없다. 개방 협상의 주무부처인 상공부는 ‘개방이 되더라도 국내산업에 별 영향이 없다’고 말하는 반면 업계측은 본능적으로 짙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쇠고기 수입과 관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 許信行박사는 최근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이 쇠고기 수입을 완전자유화할 경우 젖소외에 韓牛를 비롯한 肥肉牛의 사육은 95년께 끝장이 나고 2000년대 초반에는 소 사육이 경제적기반이 완전히 붕괴된다고 전망한 것이다.
  영세농가가 65%를 차지하는 우리 농촌의 경우 토지, 건물 다음으로 3번째 자산목록에 해당될 만큼 비중이 큰 것이 소 사육이다. 따라서 쇠고기 시장의 완전 개방이 농민에 줄 타격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한편 서울 농대의 姜泰淳박사팀은 쌀⋅콩⋅쇠고기⋅돼지고기 등 4개 농산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국내 농산물시장이 완전 개방될 경우 경지규모가 큰 농민의 실질소득은 최고 54%까지 감소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농가 평균소득 37% 감소를 가져올 것이며 현재도 38% 수준에 불과한 식량자급기반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산품수출 이득을 농업투자로 : 유통산업의 경우 정부는 3단계로 대외개방을 추진할 계획이다. 의약품과 화장품도매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각각 올해와 내년에 전면 허용하며 91년에는 소매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선별적으로 허용해나갈 방침이다.
  유통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93년부터 대폭 허용할 계획이다.
  뉴코아 백화점 張光俊 총무부장은 유통업이 완전 개방될 경우 자본력과 노우하우가 월등히 앞선 미국⋅일본업체가 국내 유통업계를 지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외국 업체가 1백억 내지 2백억원의 자본을 가지고 들어올텐데 중소 백화점들이 당해낼 도리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 소비자들은 아직도 외제 선호도가 높다. 국내백화점이 현대식 경영기법을 도입한지 겨우 10년인데 비해 선진국은 3백년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노우하우 면에서도 상대가 안돼 많은 중소 백화점들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張부장은 전망했다.
  한⋅미 양국간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통신시장개방 문제의 경우, 미국의 요구대로 완전 개방될 때 기술축적이 아직 미진한 국내 제조업체는 기술면에서 미국업체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무선분야의 기술이 낙후돼 있어 이분야의 시장이 미국에 의해 거의 독식될 우려마저 있다.
  이러한 국내사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방화는 거역할 수 없는 국제경제사회의 큰 흐름이다. ‘생산의 국제화’란 측면에서 볼 때도 한⋅미 경제관계는 앞으로 더욱 밀접해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정부⋅기업⋅소비자가 미국의 압력에 어떻게 지혜롭게 맞서, 우리 페이스에 맞춰 개방하느냐에 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하고 기업의 새 시장개척 노력과 함께 기술개발 투자,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강조한다.
  협상담당자들은 탁상행정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농촌을 비롯한 관련분야에 뛰어들어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협상상대국과 정면대결할 뿐아니라 정직하게 모든 사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림으로써 개방화시대에 대비케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공업화과정에서 피해를 받았고 수입개방에 의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는 농민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
  공산품 수출에 따른 이득의 일부를 조세정책을 통해 농촌개발⋅농업투자에 써야하고 농산물 수입⋅분배⋅처분권을 농민에 주어야한다는 소리가 높다. 이것이 개방화시대에 고통을 분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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