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斷극복의 역사적 전망 밝혀줘
  • 權寧珉(서울대교수.국문학) ()
  • 승인 1989.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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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소설의 성과를 민족분단의 역사에 대한 문학적 재인식이라는 주제의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리는 조정래의 대하 장편≪태백산맥≫을 손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그 규모이 면에 있어서나 성격과 지향점에 있어서 기왕의 분단문학이 안고 있던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우선 ≪태백산맥≫은 이념형 소설로서의 역사적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우리 소설 가운데에는 6⋅25전쟁과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문제삼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윤홍길의 ≪장마≫, 김원일의 ≪노을≫,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문순태의 ≪철쭉제≫ 등이 바로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념문제를 심정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방식은 그 폭이 좁고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이념적 집단을 가족구조의 단위로 다시 해체시켜 개별화시키지 않고서는 문제의 해결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백산맥≫의 경우는 소설의 등장인물이 가족단위가 아니라 계층안위로 나타난다, 해방 직후부어 6⋅25전쟁까지의 시대상황을 이른바 ‘여순반란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총체적으로 그려놓고 있는 이 소설에는, 사건의 주동적인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좌익세력의 계층형성이 역사적 상상력에 의거하여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중도적 입장의 민간인들이 중간적 토착세력으로 등장하고, 반란사건을 평정하기 위한 토벌군이 하나의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대립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소설적 시각에 필요한 것이며 또한 이들 세력간의 갈등과 대립이 집단화된 이념의 갈등과 대립으로 표상되고 있기 때문에, 이념문제에 대한 소설적 도전이 가능해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설 ≪태백산맥≫이 보여주고 있는 작가 의식의 치열성은 우리 시대의 금기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의 실체 규명에 가장 전진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지리산 빨치산 운동으로 요약되고 있는 개방성을 기초로 하여 객관적으로 규명하고자 한 시도는 은폐된 역사의 장면을 소설적으로 복원하는데에 성공하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인물들의 집단적 속성을 이념성에 대한 해명에 의거하여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사회내부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적 모순을 분석하면서 그 모순으로부터의 탈출의 과정이 이념적 갈등의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설적 구상은 이야기의방대한 내용을 일관된 긴장구조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힘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태백산맥≫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매력은, 이 작품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분단상황에 대한 인식과 함께 분단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전망을 결코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념의 실체를 민족사의 내부구조를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이 소설이 민족의 허리로 상징되는 ≪태백산맥≫이라는 제목으로 분단의 허리를 잇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감동적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상당부분의 인물들에게 이미 역사적으로 반민족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지만, 작가는 오히려 이들에게 민족사적인 존재 이유를 부여한다. 그 속에 담긴 민족적 고뇌가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에 그대로 투여되는 것이라면, 분단의 비극을 누가 누구에게 단죄할 수 있을 것인가?
 작가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서 ≪태백산맥≫의 잘려나간 허리를 이어놓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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