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지역 유동적 경기 아닐 수도…”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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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인터뷰] 퇴임하는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

 
지천명의 나이에 변신을 하자니 두렵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래로부터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자신이 일가견이 있다고도 했다. 여권의 끈질긴 징발 노력 끝에 정치판으로 끌려 나오게 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54)은 인생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 앞에서 잠시 망연한 듯했지만 특유의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개각 발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둔 3월2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장관 접견실에서 그를 만났다.  

참여정부 최장수 장관이자 정통부 최장수 장관으로 명예롭게 은퇴하게 된 것을 축하드린다.

다 직원들이 잘 따라준 덕분이다. 지난 3년간 정통부를 회사처럼 운영했다. 목표를 정하고, 실적 챙기고, 월간·연간 전략회의도 빠짐없이 열었다. 부하 1백~2백 명 있는 데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못한다고 발뺌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떤 때는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황당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은 다 되더라. 

이를테면 부임 직후에는 (인터넷 이용자에게 보내지는)스팸 메일이 1인당 평균 50통씩 왔다. 이를 2004년까지 반으로 줄이자고 했더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2005년에는 이를 또 반으로 줄여 15통까지 줄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6.9통으로 줄었다. 올해는 평균 4통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이는 정통부 혼자 한 일이 아니다. 포털 등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체 사장 출신으로서 공무원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한데.  

정통부에 처음 올 때만 해도 나도 남들처럼 공무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술수가 많지 않을까, 뭐 그런. 그런데 와서 보니 정반대로 사람들이 너무 순수했다. 기업체에 비해 엘리트도 더 촘촘하게 모여 있었다. 고시를 통과한 중앙 공무원이면 사실상 우리 나라 상위 10~20%에 드는 엘리트들 아닌가.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을 벌이면 집속력이 빠르고 추진력도 아주 좋았다. 

단 공직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마케팅 감각은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소비자인 국민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배려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직원들을 현장에 가라고 독려하고 마케팅 학습도 시켰다. 디지털 TV(DTV) 전송 방식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는 내가 직접 나서 언론노조와 시민단체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하니까 간부들도 줄줄이 현장을 찾기 시작하더라.

장관께서는 ‘숙아유쟁(熟芽遺爭·싹을 키웠지만 쟁점은 남아 있다)’이라는 사자성어를 직접 지어 선보인 바 있다. 정통부를 떠나는 지금 심정이 꼭 그럴 것 같다.

통신-방송 융합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가장 아쉽다. 이 문제는 정치·문화적인 쟁점까지 얽혀 있어 풀기가 쉽지 않았다. 방송의 공익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고 산업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는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조정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번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 정보통신 분야가 참여정부 경제 정책 중 가장 성공한 분야로 꼽혔다. 

영광이다. 참여정부 3주년 기념으로 경향신문이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일을 잘한 장관(24%)으로 꼽혀 기분이 좋았는데 그때보다 더 기쁘다. 정통부에 와서 정말 많은 일을 벌였다. 취임 초부터 추진한 IT 839 전략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덕분에 올해는 이를 업그레이드시킨 u-IT 839 전략을 선보일 수 있었고,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휴대 인터넷(와이브로) 서비스도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올해는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백만원대 국민 로봇도 출시된다.

재임 기간 하드웨어 쪽에 너무 치중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내가 취임할 당시 급선무는 소득 2만 달러 시대로 이행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기술(소프트웨어)이 누구 것인지는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기술을 사다 쓰더라도 이를 이용해 휴대전화·텔레비전 같은 하드웨어를 만들어 수출하는 일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환율 영향도 있지만, 어쨌거나 2008년이면 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접어든다. 지난해 ‘소프트웨어 도약 원년’을 선포했고, 이번 u-IT 839 전략에서는 소프트웨어 부문을 많이 강화했다. 기업이든 국가든 대소 완급의 조절과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이 중요하다. 미리 만들었다가 망하는 경우도 많다. 기술이 좋아도 소비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 기업은 망하는 것이다.

 
‘타임 투 마켓’은 본인에게도 적용되는 판단인가? 정치에 나설 때가 무르익었다고 본 것인가?

내가 무슨. 나는 타고난 기술자고 경영자이다. 어쩌다 보니 그냥 떠밀려서 나가는 셈이다. 이것도 시대의 부름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어떻게 보면 변신을 강요받고 있어 괴롭다. 지천명의 나이에 또 다시 변신을 해야 한다는 게 어렵고 고민이 많다. 정말로 해야 하는 일인지 확신도 아직 안 서고. 집사람도 걱정이 태산이다.

외부 강요에 의한 변신은 처음 아닌가?

공직에 올 때도 외부의 강요를 받은 셈이다. 당일 오전에 전화받고, 오후 3시에 와서 임명장을 받았다. 그때는 장관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왔다. (삼성전자에서) 비서도 데려오지 않고 나 혼자 ‘낙하산’으로 왔다. 와서 보니 정통부에 아는 사람이라곤 딱 한 명 있더라. DTV 문제 때문에 삼성전자에 드나들던 모 과장이었다.

여권으로부터 공식 제안을 받은 것이 지난 주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비공식 제안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받은 것으로 안다.

언론에서는 그렇게들 보도했지만 말로 대충 (제안)받은 것이야 받았다고 할 수 있나. 더욱이 장관 재임 중에는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앞으로도 2주 이상 장관직을 수행해야 하는데 다른 언급은 자제할 수밖에 없다.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진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수행하고, 후임 정통부 장관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현직을 수행하게 된다).

자서전이 곧 출간되는 것으로 안다. 집필도 이미 마무리되었다고 들었다. 출마를 앞두고 자서전을 내는 것은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다. 혹시 몇 달 전부터 출마를 준비해 온 것 아닌가?

그런 오해를 받기 싫어 출간 시점을 늦출까 고민 중이다. 자서전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 내가 강연을 많이 다니는 편인데, 강연 나갈 때마다 나한테 어릴 적 얘기부터 공부 비법, 출세 비법 같은 것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도체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도 궁금해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책을 직접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돌이켜보면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던 1993년 한 해 동안 공무원들을 상대로 스물 한 번 강연을 했다. 그때부터 강연 기록이 쌓여 있어 정리만 하면 되었다. 보충할 내용은 지난해 여름 휴가 때 밤을 새워 정리했다. 출장 다닐 때 비행기 안에서도 틈틈이 글을 썼다.

출간 시점을 계속 늦추다간 대선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억측을 살 수도 있다.

(손을 내저으며) 무슨 그런 곤란한 말씀을.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정통부 3년 동안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다른 일 해보라는 제안까지 받게 되었다. 용도 폐기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이번에 출마하려고 아들 국적 회복도 추진한 것 아닌가?

아들이 한국에 정착하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손녀도 여기 와서 낳았다. 남들은 원정출산 나가는데 아들은 한국에 일부러 들어와 딸을 낳았다. 장관 청문회 때도 밝혔지만 나의 국가관을 의심하면 곤란하다. 나는 국가를 위해 일해 온 사람이다.

국적을 회복하고 나면 군대에도 가는 건가?
당연하다. 그런데 국적 회복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지난 주 <시사저널>이 경기도지사 후보 간에 가상 대결을 벌여보니 진장관이 김문수 의원(한나라당)에게 더블 스코어로 패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니 나갈 엄두가 나겠는가?(웃음) 기업에서 시장 점유율을 얼마만큼 올리자 하면 바로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답이 나오는데 정치는 그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라 답답한 점이 있다. 어찌되었든 장관 재임 중에는 출마 여부나 출마 지역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게 부적절한 것 같다.

출마지가 경기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약간의 유동성이 있다. 제안은 경기도로 받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지금 할 수 없다.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제까지 늘 그랬다. 반도체 공장 문닫을지 모른다고 걱정할 때 삼성전자에 들어가 8년 만에 세계 1위 기업으로 만들었고,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올 것을 예감하고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을 자원했다. 

정통부에 와서도 신바람을 일으켰다. 지난 3년간 내가 가장 잘한 일은 ‘3년을 견딘 일’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이 기간 IT가 전국민의 공감을 받았고 전세계가 한국을 IT 강국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본인의 경쟁력이 어디 있다고 보는가?

신바람을 일으키는 일은 내가 잘하는 편이다. 어디를 가도 열심히 하겠다. 신바람을 일으키겠다. 어디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만 파악하면 일의 우선 순위를 육감적으로 잘 알아내 목표를 정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내 강점이다. 경영 능력은 어디서든 통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일하게 만드는 것이 경영이다. 목표를 정하고, 대화를 통해 동기를 부여하고, 잘한 것을 잘했다고 평가해 주고. 이런 과정을 통해 직원들이 갖고 있는 잠재 능력을 제대로 드러내게끔 하는 것이 CEO의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고 경영자로서 보여준 그간의 리더십이 정치에서도 통할 것이라 보는 건가?

경영자에는 관리자형 경영자가 있고, 창조적 경영자가 있다. 창조적 경영자는 고객의 필요를 잘 알고 충족시켜 주는 사람이다. 갈등이 생기는 것은 서로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경영자는 이를 잘 파악하고 상대방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줄 안다.

의 이해 관계는 단순한 편이다. 이윤만 추구하면 되니까. 그렇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빈부 격차 등 다양한 이익 집단의 이해 상충이 일어난다. 창조적 경영자라면 이런 갈등이 일어나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해결할 솔루션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지사가 아닌 서울시장으로 출마하게 되면 강금실 전 장관과 충돌하게 된다. 참여정부 초기를 함께한 각료로서 강 전 장관을 평가한다면?

곤란한 질문인데…. (잠시 생각하다)참신한 지도자 형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초기 강장관과 대화도 많이 했다.

삼성이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결정하자 장관은 “이건희 회장이 빌 게이츠보다 위대하다”고 말했다. 8천억원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보나?

나는 그 일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이회장이 결단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나중에 나도 소외 계층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금이 필요하면 거기에 요청해볼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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