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편성권, 역시 세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3.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향력 2위 꼽혀…부서는 재정정책기획관, 관료는 신철식 실장 ‘최강’
 
기획예산처는 가정주부와 같다. 나라 살림살이를 꾸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의 최대 고민은 국세청이 거둔 세금을 어느 곳에 쓸지를 정하는 것이다. 기획예산처가 정부 예산을 배정하는 권한을 갖다 보니 일부 정부 부처는 재정경제부보다 기획예산처 눈치를 더 본다. <시사저널>의 이번 조사에서도 기획처는 경제 부처 열 곳 가운데 두 번째로 영향력이 큰 부처로 뽑혔다.

전체 경제 부처 실·국장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순위에서도 정해방 기획예산처 재정운용실장이 3위에 올랐다. 김용민 재경부 세제실장과 임용록 금융정책국장에 이어 비(非)재경부 인사로서 세 손가락 안에 든 이는 정실장이 유일하다. 국가 예산 편성을 총괄하는 기획예산처가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 대상자들은 기획예산처 내부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부서로 재정운영실이 아니라 재정전략실 산하 재정정책기획관을 꼽았다. 재정정책기획관은 재정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다. 재정이 국가 경제 운영 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반영한 듯하다. 재정정책기획관을 맡고 있는 배국환 국장은 기획예산처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위에도 올랐다.

정책홍보관리실과 균형발전재정기획관은 영향력 있는 부서 2·3위에 올랐다. 참여정부가 국토의 균형 발전을 중시하다 보니 덩달아 균형발전재정기획관 위상도 올라가고 있다. 균형발전재정기획관은 박재영 부이사관이 맡고 있다. 박재영 기획관은 3급이라 그런지 직책에 비해 영향력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홍보관리실은 국회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조사 대상인 국회의원 보좌관과 상임위원으로부터 표를 많이 받아 2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신철식 정책홍보관실장(1급)이 기획예산처 내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신실장은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장남으로 이른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신실장은 2004년 기획예산처에서 실시한 ‘칭찬하고 싶은 직원’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92년 음반을 냈고 고구려 전통 무술인 장백권의 고수로서 전통무학회를 설립하는 등 보수적인 관료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튀는’ 공무원으로 통한다. 신실장은 최근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정부 부처 1급 이상 고위 공무원 6백43명 가운데 재산 총액 1위를 차지한 재력가이기도 하다.

영향력 2위에 오른 배국환 재정정책기획관(2급)은 재정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배국장은 기획예산처 고위 공무원 가운데 드물게 서울대 상대 출신이 아니다. 그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22회로 공직에 발을 들였다. 줄곧 예산 관련 업무를 해왔고 지난해 6월부터 재정정책기획관을 맡고 있다.  

재정운용실은 영향력 있는 부서 순위에 끼이지 못했다. 정해방 재정운용실장(1급)이 영향력 있는 인물 3위에 턱걸이했을 뿐이다. 예산 편성권을 쥔 재정운용실장이 기획예산처 내부에서는 ‘찬밥 신세’인 셈이다. 하지만 다른 부처 공무원들은 정실장 눈치를 보기 바쁘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정실장이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재정경제원 예산과장을 지냈던 한 재경부 고위 관료는 “당시 예산 주무 과장으로서 3천억 원쯤은 임의대로 배정할 수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과장의 재량 범위가 그 정도라면 실장은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일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