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 덕에 언론 통제 ‘해빙’되나
  • 베이징 · 이상국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6.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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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간 뒤 이례적으로 복간 허용…자유 세력 도전 막으려 감시 계속할 듯
 
최근 중국의 언론 탄압 문제가 중국 안팎에서 다시금 주목되고 있다. 사건은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중선부)가 지난 1월24일 중국공산청년단(공청단)의 중앙 기관지 중국청년보의 부록으로 나오는 주간지 <빙디엔(氷點)>에 대해 무기한 정간 결정을 내린 것에서 출발했다. 그 뒤 중국청년보 당위원회가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빙디엔>을 3월1일자로 복간키로 결정함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여전히 논란이 들끓고 있는, 현재진행형 사안이다.

그동안 <빙디엔>은 기존의 다른 언론 매체와는 달리 종종 사회적으로 민감한 내용이나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회 현안을 다루어왔다. 이러한 <빙디엔>의 독특한 편집 방향은 지난해 들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를테면 지난해 5월 타이완의 발전상을 다룬 타이완 작가 롱응타이(龍應臺)의 글 ‘그대가 아마도 모르고 있을 타이완’, 같은 해 6월 ‘항일 전쟁’ 기간 중 국민당 군대의 활약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핑힝관(平型關) 전투’ 이야기, 역시 같은해 12월 중국 당국이 거론 자체를 금지했던 중국 전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을 추모하는 후치리(胡啓立)의 글 ‘내 마음속의 야오방’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빙디엔>은 ‘싱가포르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문화는 무엇인가’ 등 중국인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이라 할 내용의 글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 때문에 <빙디엔>을 읽기 위해 중국청년보를 정기 구독한다는 사람들조차 잇따를 정도였다.
 하지만 <빙디엔>의 ‘이단 행위’는 결국 중국 당국의 신경을 건드려 철퇴를 맞았다. 빌미를 제공한 것은 지난 1월11일 위안웨이스 교수의 글 ‘현대화와 역사 교과서’의 게재 사건. 위안 교수는 이 논문에서 ‘중국이 1900년 발생한 의화단 사건에서 외국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반문명·반인륜적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교과서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교과서는 정치 선전물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또 위안 교수는 아편 전쟁과 의화단의 난에 대한 중국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었다며 ‘중국의 청소년들은 아직도 계속 늑대의 젖을 먹으며 자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논문이 게재되자 중선부 열독 평가 소조(中宣部閱評小組)로 불리는 중국 언론 검열 당국은 곧바로 이 논문에 대한 심사에 들어갔다. 이 열독평가소조는 주로 전직 편집 기자들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매일 중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이나 잡지를 검토·평가하는 일을 한다. 이들은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배열, 글자체, 사진 등 기술적인 문제까지도 평가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될 경우, 중선부에 의견을 달아 올린다.

현 언론 상황, 과거보다 크게 후퇴

이 평가에서 위안 교수의 표현은 중국 공산당을 ‘늑대’로, 공산당의 교육 이념을 ‘늑대의 젖’으로 빗댄 것으로 지적되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2월16일 정례 브리핑에서 ‘<빙디엔>이 게재한 글은 역사적 사실을 엄중히 위배해 중국 인민의 감정을 손상시켰고 중국청년보의 이미지도 훼손시켰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중앙선전부는 <빙디엔>에 대해 무기한 정간을 내렸다. 또 각 언론 매체에는 <빙디엔>의 정간 사실에 대해 보도하거나 논평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럼에도 <빙디엔> 정간 소식은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다.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 그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 편집장을 지낸 후지웨이(胡績偉)는 당국의 언론 검열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현재의 언론 상황이 “자오즈양(趙紫陽)과 후야오방 전 총서기 시대에 비해 현저히 후퇴했다”라며 “반독재의 통일 전선을  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까지 주장했다. 또 마오쩌둥(毛澤東) 시절 당 총서기 비서를 지낸  개혁파 리루이(李銳) 등 10여 명은 ‘빙디엔 사건에 대한 연합 성명’을 발표해 이 주간지의 정간은 공산당의 통제와 언론 자유 요구들 사이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오직 전체주의적 체제만이 대중을 무지 속에 가두어 놓을 수가 있다는 망상 때문에 뉴스 검열을 원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라며 중국 당국을 비판했다. 

서명자들은 또 “대중으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박탈해 이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말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변화에 재앙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청년보를 구독해온 독자들 사이에서도 <빙디엔> 정간에 항의해 구독을 끊겠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같은 반발과 항의에 부딪치자 중국청년보 당위원회는 2월16일 <빙디엔>을 정간한 지 한달여 만에 복간하기로 결정하고, 항의 운동을 주동했던 리다퉁(李大同) <빙디엔> 편집장 등 간부 두 명에 대해 면직 처분과 함께  신문연구소에 대기 발령하는 선에서 소동을 마무리 지었다.

언제까지 감시·탄압 체제 유지할지 의문

사실 중국의 언론 통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최근 들어서만 지난 1월 정부의 비리를 지속적으로 다룬 베이징의 일간지 신징바오(新京?)의 편집부 국장이 해임되었고, 2월 귀저우(貴州) 성의 일간지 `비지에 데일리'의 기자  리위안룽이 체제 전복 혐의로 체포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밖에 2004년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폐간된 저명 학술지 <전략과 관리(戰略輿管理)>를 비롯해 <환구경제보도(環球經濟導報)>,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 <남방주말(南方周末)>, <서옥(書屋)>, <방법(方法)> 등 상당수 정기 간행물이 정간 또는 폐간 조처를 당했다.

중국 당국은 인터넷에 대한 통제도 계속 하고 있다. 지난 2월 베이징 시 신문판공실은 ‘중국 노동자(www.zggr.org)’, ‘노동자·농민·군인(工農兵) BBS(www.gcdr.com.cn/bbs)’, ‘공산당인(共産黨人)(www.gcdr.com.cn)’ 등 세 곳의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 조치했다. 이 사이트들은 노동자들이 주로 참여하는 좌파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인터넷 등에 대한 이같은 언론 통제는 중국 공산당이 ‘집권당’으로서 합법성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또한 언론 통제는 개혁·개방 이후 사회 다원화와 함께 새로이 등장한 자유주의 세력의 성장과 도전을 막고, 여전히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신좌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번 <빙디엔> 사건은 중국의 언론 통제가 언제까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점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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